brunch
매거진 Q 파일

기억의 미로 ⑩ 깨어남 (최종회)

by 재원


그 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방송을 교회 구성원 상당수가 본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세 자매가 어떤 마음일지, 자신들의 혼란스러운 기억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홀리 라모나(8편 참조)처럼 끝내 오기억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로 가족과 연을 끊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R_01.jpg


내가 다루는 세상의 문제들이 방송 직후 빠르게 해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미 문제가 곪아 터지고 나서야 방송국이 관심을 갖기 때문이고, 어떤 사건이든 해결되고 상처가 아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일종의 바톤 달리기다.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꼭 다뤄야 할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이나 제보가 있고, 그걸 이어받아 취재와 제작을 통해 세상에 알리는 내가 있고, 뒤이어 수사기관이나 입법기관이 바톤을 받아 조사나 처벌, 제도 개선 등 다음 단계의 해결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바톤 달리기를 하며 지내던 이듬해 설 연휴...



나는 이윤회 원장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전송받았다. 이윤회 원장과 세 자매들이었다. 설을 맞아 차례를 지내러 모였다가 세 자매의 엄마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얼굴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이 사라지고 다들 밝게 웃고 있었다.


“덕분에 저희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더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예전 인터뷰 때 나는 세 자매에게 성폭력 기억을 회상해 내기 전에 아버지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 왔는지 물었다. 그들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신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온 살갑고 친구 같은 아빠였다고.


어쩌면 부모가 이십여 년 자식들을 돌보며 주었던 관심과 애정, 그것은 오기억으로 혼탁해진 무의식 어딘가에서도 조용히 빛을 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R_03.jpg


먼저 깨어난 것은 세 자매 중 첫째 유정씨였다.


유정씨는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내용을 처음에는 의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십 수 명의 청년들이 모두 작은 증거 하나 제시하지 못했으며, 교회에 빠져든 이후에 갑작스레 떠오른 기억이 전부였다는 것을 방송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


방송을 다시 보면서는 권사나 장로가 했던 말들을 조금 의심하게 되었다. 하늘문 교회에는 레즈비언 교인이 둘 있었다. 교회 권사와 장로는 “너희의 동성애는 가족 성폭행을 당해서 생긴 병”이라고 가르쳤다. 유정씨도 폐쇄적인 교회 안에서 집단 최면에 잠겨 있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한발 물러나서 보니 그 말이 황당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떠오른 작은 질문들이 의심이 되고, 그것이 일으킨 각성은 거짓된 기억을 조금씩 풍화시켰다. 몇 달에 걸쳐 천천히 기억이 정화됐다. 첫째와 둘째가 그렇게 깨어났고, 셋째도 머지않아 언니들을 따라 본래의 자신을 되찾게 되었다.


R_04.jpg


오기억으로 가족과 갈라서게 된 피해자들 일부가 그렇게 깨어났다. 하지만 하늘문 교회의 피해자는 20명에 달했고, 그중 방송을 보고 깨어난 이들은 대여섯에 불과했다. 조금씩 이탈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구미영 권사나 강문석 장로 등이 사회에 발붙이고 있는 한 피해는 이어질 것이었다.


방송 이후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가 이 사건을 알고 연락을 해 왔다. 인간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로 교회의 악인들을 처벌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던 내 우려를 그가 씻어주었다.


그는 바톤을 이어받아 1년여 끈질기게 수사했다. 그리고 2021년 구미영, 강문석, 박희 세 사람을 무고죄로 기소했다. 이들이 이윤회 원장이나 김범진 선교사 등을 부당한 형사 처벌을 받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 기소의 논리였다.


나는 여러 차례 이어진 재판에 참석해 법정 공방을 지켜보았다. 검찰공무원이었던 강문석 장로는 유명 로펌의 비싼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개중에는 고등검찰청 검사장과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거물 전관도 있었다.


하루는 피고석의 강문석이 참관하던 나를 지목하며, 증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내보내달라고 판사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판사는 강문석의 황당한 요청을 거부했다.


R_05.jpg


다시 2년의 시간이 흐른 2023년 11월, 긴 공방 끝에 1심 선고일이 결정되었다. 그날 하늘문 교회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두루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에 모였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떨리는 마음으로 최종 선고를 들었다.


판결문은 82페이지에 달했다. 판사가 판결의 요지를 읽을 때 피고들도, 피해자들도 모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주문이 읽혔다.


“...위와 같은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 구미영, 강문석을 각 징역 4년, 그리고 피고인 박희를 징역 3년에 처합니다.”


검찰의 구형을 뛰어넘는 유죄 선고였다. 교회의 청년들을 구해내기에 충분한 시간만큼의 유죄였다. 죄인들이 즉시 끌려들어 갔다. 뒤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현장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은 모처럼 웃고 울었다.


R_06.jpg


본 사건의 핵심을 꿰뚫는 판결문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취약한 20~30대의 교인들을 상대로 수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일상적 고민을 고백하도록 하고 이를 모두 죄악시하여 교인들을 통제하고, 나아가 유도, 압박, 강요하여 고소사실을 만들어냈고, 이는 피해자들의 평생의 삶과 가정의 평안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피고인들은 피해자를 친부와 외삼촌으로부터 유아 때부터 몸서리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한 성폭행을 당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도 친부, 외삼촌과 성적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고소를 당한 친부와 외삼촌은 자신의 세 딸과 조카를 오로지 성욕 충족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 극악무도한 자로 만들었다.


... 피해자들은 이후 고소사실이 허위임을 깨달았으나 아버지 이윤회와 사이에 생긴 불신과 정신적 고통, 훼손된 명예는 평생토록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OOO은 여전히 외삼촌 김범진으로부터 성폭행을 주장하고 있는 바, 그 피해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범행을 부인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고 있는 바, 반성의 여지를 전혀 찾을 수 없다.”


R_07.jpg



에필로그


여기에서 끝났다면 이 사건은 ‘정의가 실현된 드문 미담’이 되었으리라. 그랬다면 나 역시 무려 열 편에 이르는 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수많은 사람이 애써 세워놓은 질서는 누군가의 무심한 발길질에 무너지곤 한다.


형량을 줄이려는 교회 측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시작됐다. 일 년이 넘는 긴 공판이 이어진 후 2025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놀라운 결론을 낸다. 구미영, 강문석, 박희 모두 "무죄"라는 것이었다.


셋은 즉시 풀려났다.


R_08.jpg


2심이 무죄를 선고한 논지는 이러하다.


성폭행 증언은 오기억 때문에 일어난 허위가 맞고, 구미영, 강문석, 박희의 암시와 유도 때문에 오기억이 만들어진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이 오기억을 고의로 주입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피해자들을 괴롭히려고 고소 사실을 억지로 꾸며냈어야 무고죄가 성립하는데 구미영, 강문석, 박희는 교인들의 성폭행 증언을 진짜라고 믿어서 고소를 진행했을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 — 는 것이다.


100 퍼센트 확실하지 않으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봐야 한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있다. 다수의 죄인을 잘 처벌하는 것보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 올바른 원칙이 투박하고 무성의하며 과중한 업무에 치이는 재판관과 만나면 종종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유용한 탈출구를 선물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나는 그알을 만들면서 이런 이유로 풀려나는 범죄자들을 꽤 자주 봐왔다.


R_09.jpg


구미영 권사와 강문석 장로는 기독교단에서 금지하는 신비주의 사역을 해왔다. 자기들이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천국 열쇠를 들고 있다는 주장은 명백하게 반성경적인 이단 교리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교단에서 출교 되었으며, 하늘문 교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산교회의 기도회도 폐쇄된 바 있다. (4편 참조)


그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이윤회 원장과 김범진 선교사다. 딸들이나 조카를 구해내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문 교회의 리더들이 정식 목회를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


한번 사이비로 낙인찍히면 제대로 된 교회를 열거나 참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구미영이나 강문석 입장에서 앙심을 품고 이윤회 원장과 김범진 선교사를 공격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런 정황은 1심 판결문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구미영이나 강문석에게 정말 100% 고의가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그건 본인들만 알 것이다. 온갖 정황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입증하지 않으면 무죄라면 오기억 같은 다소 신비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상과 이단 종교가 결합된 특이한 범죄는 결국 신의 장난쯤으로 치부될 것이다.


R_10.jpg


구미영 권사와 강문석 장로, 그리고 박희 집사는 다시 사회에 나와서 우리 사이사이 어딘가 숨어있다. 그들을 따르는 중간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여전히 오기억에서 깨어나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가족의 연을 끊고 그들을 호위하고 있다.


외롭고 불안한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확실한 권위와 통제를 갈구한다. 그런 심리적 욕구를 악용하는 사기꾼들이 도처에 있다. 스스로 신을 참칭하는 악인들은 불안한 사람들의 정신을 꿰어다 제물로 바치며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한다.


이 꼴을 지켜보는 내 마음보다 수천 배는 고통스러울 사람들이 있다. 세 자매와 가족들, 아직 조카가 하늘문 교회에 포섭되어 있는 김범진 선교사, 그리고 아직 오기억에 잠긴 딸과 아들을 둔 부모들이다. 부디 최종심에서 슬기로운 판단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






<기억의 미로> 총 10편을 마무리합니다.


① 세 자매

② 가계저주

③ 불자국

④ 하늘문 교회

⑤ 연극

⑥ 정화

⑦ 이중맹검

⑧ 진실유도제

⑨ 신의 장난

⑩ 깨어남 (최종회)





이 글은 제가 취재했던 실화입니다.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대, 지역을 바꾸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사 자료와 판결문, 직접 취재한 경험과 사실에 기초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픽션이 들어갔음을 밝힙니다.
Q 파일 : 세상의 숨겨진 이면과 우리가 놓친 진실에 대해 씁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의 미로 ⑨ 신의 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