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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Dec 05. 2024

결항을 막아라, 공항의 제설작업

우리 주변 과학 이야기

2024년 11월 28~29일, 첫눈이 혈기왕성한 청년기의 활기처럼 듬뿍 내렸다.


지인은 눈길을 헤치고 인천공항으로 가다가 인천대교 위에서 결항 통보를 받았다. 새벽에 자동차로 힘들게 왔는데, 결국 비행기는 못 뜬다고...  결국 11월 28일에만 인천공항에서는 308편이 결항되었고 276편이 지연운항 됐다.


여행자는 맥이 빠졌겠지만, 내겐 공항관계자들의 고충도 충분히 읽혔다. 수도권도 마비가 될 정도의 큰 눈이었지만, 그럼에도 항공기의 결항 등은 여파가 큰 결정이기 때문에 피치 못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는 내려지지 않는다. 눈 예보만 있다고 며칠 전에 결항을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2016년 1월 제주도 폭설, ⓒ 전영식


8년 전인 2016년 1월 23일 제주공항에는 32년 만의 폭설(18cm)과 강한 바람(윈드시어)이 불어, 23일 오후부터 25일 정오까지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지됐다. 필자를 포함한 제주에 갇혔던 7-8만 명의 체류객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데에 3일이 걸렸다. 32년 만의 폭설이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항공 교통의 특성 탓이다. 차는 눈이 왔으니 천천히 운전할 테고 사고가 난다고 해도 한 두 사람 다치고 말지만, 비행기는 미끄러져 활주로를 벗어나거나 이착륙에 실패하면, 수백 명이 사상할 수 있는 대형사고가 난다. 공항은 넓기 때문에 작업시간이 걸리지만 항공기의 이착륙에 지장이 없도록 신속하게 작업해야 한다. 하지만 세심한 제설작업이 필수적이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눈이 제설용량을 초과하게 되면 안전을 위해  결항이 불가피하다.


항공기는 고가의 정밀장비임으로 염화계 제설제(염화나트륨, 염화칼슘)를 뿌리면 녹이 나서 다 망가진다. 따라서 부식성이 없는 제설제(친환경적이라고도 읽고 비싸다고 보면 틀림없다)를 써야 한다. 항공기 역시 얼음이 쌓이면 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방빙작업을 해야 한다. 게다가 공항의 설비들은 고가의 장비가 많고 공항의 이동경로 등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눈이 많이 왔다고 아무나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다. 이러한 작업들이 겹치면서 평소에도 타이트한 운항일정이 연쇄적으로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활주로 라인과 표시가 보이지 않으면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적설량 0.5cm면 라인이 보이지 않아 작업을 시작하는데, 다른 조건들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어떤 자연재해 대비도 항공운항엔 중요하지만 눈이 오면 그 대비가 더욱 중요하다. 결항을 막기 위한 공항의 제설작업 내용을 알아보자



공항 제설 작업의 원칙


공항의 제설작업은 세밀한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이착륙 활주로(Runaway) → 유도로 (Taxiway)→ 계류장(Apron) 순으로 작업을 한다. 인천공항의 경우, 활주로와 유도로가 포함되는 기동지역(Maneuvering Area)을 3개 지역으로 나누고 계류장 지역은 2개 지역으로 나누어 1차, 2차로 우선순위를 두어 작업한다. 지역별로는 기동지역은 전 지역, 계류장 지역은 주기장 유도선 및 도입/도출선 주변 15m까지 제설작업을 한다.


또 강설 혹은 마찰력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장비의 종류와 수를 조정한다. 1단계는 강설개시 ~ 24시간 신적설량 5cm 미만 또는 신적설량 2.5cm/hr, 2단계는 5~20cm, 3.5cm/hr, 3단계는 20cm 이상, 5cm/hr, 폭설로 인한 재난예상 시이다.


1단계 적설 제거


제1단계는 눈의 물리적 제거 단계이다. 강설이 내려 쌓이면 눈을 기동구역 밖으로 밀어낸다. 이때 제설패드를 부착한 제설차와 송풍기를 이용한다. 활주로의 경우, 여러 대가 사선으로 대열을 이루어 선두차가 밀어낸 눈은 뒤차가 좀 더 옆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활주로 끝까지 밀어낸다. 가장자리에 쌓인 눈은 송풍기로 활주로 밖으로 날려 보낸다.


활주로 제설작업 대형, 출처: 인천국제공항공사

활주로 밖으로 밀어낸 눈더미도 항공기 운항에 지장이 없도로 거리별로 높이를 다르게 하여 쌓도록 되어 있으며 공항장비의 작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적채해야 한다.


필요시 제설제 살포차량이 뒤를 따르면서 제설제를 뿌리고, 그 후미에는 제설작업의 결과로 노면이 얼마나 마찰력을 확보했는지 확인하는 마찰측정 장비가 뒤따르게 된다. Runway Friction Tester라 불리는 특수차량을 사용하는데, 최소한 0.09 miu 이상의 마찰계수가 확보되어야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게 된다. 눈이 다져져 있거나 얼음으로 덮여 있는 경우, 착륙 시 활주거리가 늘어남으로 항공기운항교범(Aeroplane Flight Manual)에는 0.4 이상 ~ 0.25 이하의 5단계로 code를 정해 항공기에 전달하도록 되어 있다. 활주로 내에서 마찰계수의 측정 위치도 매뉴얼에 정해져 있는데 여러 곳을 반복측정하여 통계값을 산출한다.


일체식 활주로 제설차(Snow Plow), 위키미디어: Brussels Airport from Belgium
분사식 제설장비(고압 송풍기, Snow Blower), 위키미디어: MassDOT


2단계 : 결빙 방지


공항도 도로와 마찬가지로 눈이 쌓여 다져지지 않도록 화학적 제설제를 살포한다. 흔히 공항에는 친환경 제설제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이다. 우리가 도로에 뿌리는 염화나트륨(소금)이나 염화칼슘은 가격이 싸지만 금속 부식성(화칼슘이 소금보다 금속부식성이 더 크다)이 있다. 따라서 제설제가 많이 뿌려진 구간을 운행한 차량은 빨리 부식된다. 차야 약간 고장 나도 큰 문제는 없지만, 항공기 및 공항 시설들은 고가의 장비이고 안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식성을 최소화한 제설제를 사용하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사용하는 제설제는 액상제설제로는 초산칼륨을, 고상제설제로는 요소(Urea, CO(NH2)2)+개미산염(Sodium Formate, KHCO2)을 사용한다. 노면의 온도가 하루 중에도 들쭉날쭉 하므로 여러 제설제를 섞어서 사용한다.


초산칼륨은 흔히 초산카리, 아세트산칼륨(Potassium acetete)으로 불리고 CH2COOK의 화학식을 갖는다.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는 흡습성이 좋고 항공기나 식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자연상태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생분해된다. 다만 가격이 비싸고(톤당 200만 원 vs. 염화칼슘 30만 원) 용해열이 염화칼슘보다 작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요소나 개미산염도 가격은 비싸지만 금속부식성 때문에 사용되는 제설제이다.


액상살포기(Spreader), 위키미디어: Thomas Nugent


우리가 일반적으로 제설제라고 부르는 물질들은 크게 눈과 얼음을 녹이고, 다시 얼지 않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기본적으로 물질 중의 성분이 H2O가 결빙하는 것을 방해하여 어는점을 떨어 뜨는 것인데, 소금이 들어간 바닷물이 민물보다 얼기가 어려운 것과 같은 원리이다. 제설제가 녹아들어 가면서 열을 발생하는데 이 열도 제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녹아들어 가려면 물이 필요한데 이에 물질의 흡습성이 중요하다. 대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러한 성질들이 물질마다 다르고 가장 효과적인 제설반응이 일어나는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섞어서 사용하면 된다. 아래 그림에서는 위에서부터 요소(Urea), 소금(염화나트륨, Sodium chloride), 칼슘 마그네슘 에세테이트(Calcium Magnesium Acetete), 염화마그네슘(Magnesium Chloride), 글리세롤(Glycerol),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 염화칼슘(Calcium Chloride), 초산칼륨(Potassium Acetate)과 프로필렌글리콜(Proplylene Glycol)의 농도와 공융점(Eutectic Point)이 설명되어 있다.


제빙제와 방빙제의 종류, 출처: c&en  2015


3단계  마무리작업


활주로는 일반도로보다 높은 정밀도를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장비가 사용된다.

스위퍼(Sweeper)눈, 잔설, 먼지 등을 청소하며 활주로 표면을 마무리하는 장비로 대형 브러시와 흡입 기능이 있어 활주로에 남은 잔설을 말끔히 제거한다.  다기능 제설차(Multi-functional Snow Remover)는 차 한 대에 스노 플로우, 블로어, 스위퍼 기능을 통합하여 활주로와 유도로에서 신속하게 작업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장비이다. 넓은 지역보다는 한정된 지역의 빠른 제설작업이 목적이다.


스위퍼(Sweeper), 위키미디어: Travis Edwards
다기능 제설차, 위키미디어: Reise 


항공기 디아이싱(Deicing) 작업


디아이싱(제방빙) 작업은 눈이 내리는 날 이륙 전 항공기의 날개와 동체에 쌓인 눈을 제거하는 작업을 말한다. 날개에 얼음이 붙으면 공기 흐름이 달라져서 비행기를 공중에 뜨게 하는 양력(lift force)을 충분히 얻을 수 없고 보조익·승강타·방향타 등 조종 관련 부위가 얼면 조종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어 이륙 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사례:  미국 에어플로리다 90편 추락사고 - 총 78명 사망, 1982.1.13)


게이트에서 승객을 태운 뒤 디아이싱 패드라고 불리는 공항 내의 지정된 지역으로 토잉이나 자력을 통해 이동(단, 비행기는 후진을 못한다)한 뒤, 그곳에서 엔진을 끄고 디아이싱을 진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항의 지상요원이 사다리차에 탑승해 항공기 주위를 돌며 제빙액을 분사해 날개와 동체 표면의 눈과 얼음을 제거하고, 방빙제를 뿌려 이륙 전까지 추가적으로 눈이 쌓이거나 얼음이 얼지 않도록 방지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 작업은 항공기당 15~20분 이상이 걸린다.  이륙 후에는 날개 앞에 내장된 항공기 자체의 방빙 장치를 작동시켜 결빙을 막는다.


이때 사용되는 제빙액은 유독성 물질이기 때문에, 엔진을 통해 빨려 들어갈 경우 객실에 유독 가스가 유입되면 안되기 때문에 작업 중 항공기는 반드시 엔진을 정지하고 객실을 밀폐해야 한다. 제빙액은 폐기물관리법상 특정폐기물로 분류되므로 제방빙장은 특별한 배수/회수시설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번의 디아이싱 작업으로 유효시간인 Holdover Time(HOT)이 기온과 기상상태에 따라 2분~22분 밖에 없기 때문에 승객을 모두 태우고 활주로 끝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이륙을 못하면 다시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인천공항의 제방빙장은 33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방빙제로는 예전에는 프로필렌 글리콜을 사용했으나 요즘에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적은 모노프로필렌글리콜(MPG, Mono Propylene Glycol)과 물을 혼합해서 사용한다. 뿌리는 것도 문제지만 뿌린 후 바닥에 잔류된 방빙제를 기준치 이상으로 수거하여야 하는데, 이 회수 시설에는 거액의 예산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런 시설이 없는 작은 공항은 눈이 오거나 중간에 눈 예보가 있다면 결항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


디아이싱 작업, 위키미디어: Leo-setä
Korean Air  B-777 HL7751, 디아이싱 작업, Wikimedia commons:  Aleksandr Markin


기상상황과 공항상태와 무관하게 일정대로 여행을 가고 싶으면 차나 배로 가면 된다. 개인공항에 전용기도 좋은 선택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공항을 운영하는 전문가의 말을 믿고 따르라. 그들도 자기의 일을 성실히 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다. 큰소리를 내거나 우긴다고 못 뜨는 비행기가 뜨지는 못한다.


이번 결항사태는 기록적인 폭설과 시설용량을 초과한 항공기 제설수요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제설작업은 해야할  장소와 시점이 있고 공항노면상태도 시시각각 변한다. 과학적 방법으로 제설을 하고 그 과학적 결괏값을 판단해서 최종결정하게 된다. 당신이 미쳐 승강장에 못 들어갔을 수도 있고 비행기에 탔어도 디아이싱작업을 위해 하염없이 대기할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 준비를 다 마쳤어도 활주로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수시간씩 기다리거나 다시 내릴 수도 있다. 성질부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항당국을 믿고 항공사의 안내에 따르면 된다.

전문가를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니.


참고문헌


1. Periodic Graphics: Deicers And Antifreeze, Chemical & Engineering New, Vol. 93, Issue 2, 2015.1.15,

2. 언제나 파일럿, 정인웅, 루아크, 2022.5

3. 2024-2025 인천공항 제설작업계획(Airside)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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