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일들이 벌어지고 정리되고 다시 불거지는 동안 요양 병원에 모신 외할머니의 건강이 빠르게 악화되었다. 엄마와 함께 지낼 땐 5년, 10년까지도 더 사실 거라 생각할 만큼 정정하던 분이었기에 마음이 안 좋았다. 외할머니의 안위를 맡은 이모에게서 사진과 함께 걱정스러운 메시지가 왔다. 곧 찾아뵙겠다고 답장했다. 사촌 동생이 떠올랐다.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아 안부를 물으며 제안하자 흔쾌히 승낙했다. 아기를 봐야 하는 동생의 비는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했다.
그사이 또 괴로운 일이 생겨났다. 변호사를 선임해 상속 포기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요구되는 서류는 많지 않았고 절차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외삼촌 둘, 이모에게는 그러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변호사 측에서 전송한 안내 서류를 잘 읽어 보면 모두 나와 있는 내용을 몇 번이고 내게 물었다. 두세 번은 알려 주었지만 한창 생업을 하는 도중 메시지가 오면 짜증스러웠다. 상속 포기는 고인이 돌아가신 후 정해진 기간 안에 신청이 완료되어야 한다는 걸 안 이모는 재촉하기 바빴다. 정작 서류 준비는 늦어지고 잘못되어 다시 발송해야 했다. 외국에 사는 외삼촌은 정도가 더했다.
다만 그뿐이었으면 감정이 폭발하지는 않았으리라. 뾰족한 태도와 말투가 마음 한구석을 득득 긁어 댔다. 안 그래도 너덜너덜한 정신이 갉아먹혔다. 정신과 약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병행했지만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배려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성의 끈을 느슨히 놓아 버리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당연히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숙한 대처임을 알았지만 달리 해소할 만한, 기댈 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높은 파고에 무력하게 휩쓸리기보단 악착같이 헤엄쳐 나가는 길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