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단 ‘오이소박이’부터 만들기

딸아이 축하 선물로

by 도시락 한방현숙
갑자기 ‘오이소박이’

동네 반찬가게에서 한 팩에 5,000원씩 하는 오이소박이와 파김치를 샀다. 물론 나의 입맛을 위한 맞춤형 구입이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딸아이 모두에게 인기가 있어 금세 동나 버렸다. 김치를 담근 기억이 오래전 있긴 한데, 성공과 실패를 몇 번 오가고 난 후(게다가 고맙게도 김장까지 챙겨주시는 이모와 어머님 덕분에)부터는 거의 김치 걱정 없이 지내온 듯하다.

상큼하기까지 한 오이소박이 맛과 맛나게 먹는 아이들 모습에 갑자기 김치를 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사실, '오이소박이쯤이야, 뭐' 하는 생각과 함께) 오이와 쪽파 값도 만만치 않아, 소량은 그냥 사 먹는 게 더 이익일 수 있는 식생활을 하고 있지만, 졸업과 함께 타지 생활을 정리한 후 집에 돌아온 둘째를 생각하니 망설이는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원하는 자격증 취득에 이어, 병원 최종 면접에 합격하여 곧 출근을 앞둔 98년생 둘째에게 보내는 엄마의 선물, ‘오이소박이’ 김치인 것으로 급하게 의미를 담았다.

재료를 사러 가고, 다듬고, 버무려 김치를 담그는 일이 무엇보다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기에, 3월 내내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면 바로 쓰러져 기절하듯이 잠드는 일이 다반사이기에, 퇴근 후 김치를 담근다는 것은 엄마의 정성을 드러내는 데 손색이 없는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생각했다.

축하 선물로!

서류전형 통과에 함께 기뻐하고, 면접시험을 본 후 자신 없다는 둘째와 같이 마음을 졸이고 있던 터라, 합격 통보 전화는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웠다. 사회에 발을 딛는 첫출발이 계획대로 진행되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남에게 내세울 만한 조건(고액 연봉, 대기업 등)은 아니더라도 둘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응원하는 마음만 보태기로 했다. 세상에 내 마음에 쏙 들기만 하는 직장이 몇이나 있을까? 일단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그 기쁨으로 나머지 것들도 감수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믿기에 박수부터 쳐 주기로 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레시피(내가 가장 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를 골라 필요한 재료를 확인했다. 냉장고에 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재료를 확인하니 자신감이 더 생겼다.

♡ 아삭한 오이맛을 위해 끓는 소금물을 부어 절였다.
♡ 양념에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넣는 찹쌀풀이나 밀가루풀 대신 찬밥을 물과 함께 갈아 넣어 일을 덜었다.
♡ 적당한 크기의 오이에 열십자로 모양을 낼 때, 한쪽 방향이 아닌 양쪽으로 나눠 칼질을 하니 먹기가 더 편했다.
♡ 양파도 갈아 넣고 부추와 함께 무도 쫑쫑 썰어 넣으니 훨씬 시원한 맛이 났다.
오이를 소금물에 박박 씻은 후 동네 반찬가게 사장님이 하듯이 양쪽으로 나눠 칼질을 하여 쌍방향 열십자 모양을 내었다.
팔팔 끓는 소금물(오이가 잠길 만큼의 물 + 소금 1컵)을 부어 1시간 가량 절였다. 절이고 나니 색깔이 노르스름해지고 탄력이 생겼다.
오이 12개 분량 양념=고춧가루(10) + 액젓(6)+마늘(1)+새우젓(2)+양파 간 것(4) +설탕(4)+ 생강가루(1)+밥풀(4) = 1큰술 기준
양념에 쫑쫑 썬 부추, 쪽파와 무를 넣어 버무려 완성한 속을 오이에 야무지게 꼭꼭 채워 넣었다.
짜잔~~비주얼로도 손색 없는 뚝딱 요리, 엄마표 '오이소박이' 완성!

월요일도 역시나 떡실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요일에 구입한 재료들을 쳐다만 보며 하루를 묵힌 후, 화요일 늦은 저녁시간에 김치를 담갔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내일 아침 출근으로 늦은 집안일이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인 날이나 용기를 내어 김치를 담갔다. 상큼한 오이 내음으로 피곤함을 달래고, 제법 묵직한 김치통을 옮기며 뿌듯한 미소까지 지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가족, 모두 한 입씩 먹으면 없어질 소량이고, 꼭 둘째만 먹는 것도 아닌 김치지만, 둘째를 위한 축하 선물이라 제목을 붙이고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뭐 '오이소박이'가 대수라고... 하시는 생전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찡긋 웃음으로 화답했다. '오이소박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라면을 끓여 먹으며 '대박'이라고 치켜주는 딸들의 칭송을 즐기기로 했다. 오늘도 뚝딱! 따라 하기 요리- 대성공이다. ㅎ ㅎ

‘오이소박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