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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Oct 18. 2019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

8. 난관에 빠지다.

Photo by �� Claudio Schwarz | @purzlbaum on Unsplash


※  독서 모임의 진정한 가치는 모임 안에서 어떠한 가치 있는 생각들이 오고 갔느냐일 것입니다. 그러나 곡식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토양을 만들고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듯, 독서 모임 그 자체도 바로 그러한 지적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토양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독서 모임 가이드」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생각이나 경험들을 중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이러한 글을 쓴 까닭은 독서 모임을 새롭게 만드는 분에게는 여러 모임의 형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함에 있으며, 독서 모임 진행하거나 참여하고 계신 분은 자신과 같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공감을 하고 저처럼 자신의 독서 모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의도는 이러한 몇 년간의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가치 있는 사고를 위한 독서 모임」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이나 느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좋은 독서 모임을 만드는 방법보다도 좋은 독서 모임이 되기 위해 어떤 사고를 했는지를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독서뿐 아니라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참고로 이야기는 오래 전의 일을 기억에 의존하여 쓰고 있기에 연재 중에 계속 수정되며 추가될 수 있습니다.


1부 이야기 -「1. 독서 모임을 접하다.」https://brunch.co.kr/@wringkle/115

2부 이야기 - 「2. 독서 모임을 만들다.」https://brunch.co.kr/@wringkle/122

3부 이야기 - 「3. 발췌와 발제의 기준을 세우다.」https://brunch.co.kr/@wringkle/131

4부 이야기 - 「4. 안정적인 장소를 얻다.」https://brunch.co.kr/@wringkle/135

5부 이야기 - 「5. 양적으로 성장하다.」 https://brunch.co.kr/@wringkle/138

6부 이야기 - 「6. 새로운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다.」 https://brunch.co.kr/@wringkle/142

7부 이야기 - 「7. 지속성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동아리 창단 계획을 구상하다.」https://brunch.co.kr/@wringkle/146




시간이 지나자 회장이 된 후배로부터 정식으로 동아리 인가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연락을 받고 나니 지속 가능한 모임으로서의 첫걸음을 디뎠다는 생각에 온종일 즐거웠다. 물론 그렇게 동아리가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무언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각각의 프로그램들은 잘 운영이 되고 있었고 도서관으로부터의 도서 지원이나 참여자들의 회비를 통해 재정 안정성도 좋은 편이었기에 공간이라도 얻거나 혹은 동아리 지원금으로부터 나오는 게 있기 전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초기에는 귀찮은 일들이 늘어났는데,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집회나 행사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정 투명성을 위하여 동아리 통장을 개설하는 일이나, 정기회의 등을 해야 하는 일, 여러 보고서나 기록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측면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나마 초기부터 단체 설립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해서 많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특히 발제문이나 회의록, 회계 보고서 등의 기타 기록물에 대한 관리는 예전부터 비교적 철저히 해왔는데, 동아리가 되면서 모두에게 공유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러한 공유 방법은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조금씩 변화했는데 초기에는 내 개인 NAS에 공유하다가 동아리 방이 생기고 컴퓨터를 갖게 되면서 오프라인으로는 동아리 컴퓨터로, 온라인으로는 홈페이지 게시판과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공유하였다. 회의록이나 발제는 양식을 만들어 점차 관리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일목요연하고 누구나 쉽게 작성할 수 있도록 하며 관계 부서에 제출 시 다시 작성해야 하는 비효율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기록물 관리 요령

① 연계 기관에 바로 제출 가능한 양식으로 만들어 둘 것
② 회원 모두가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공유 폴더를 만들 것


발제 양식 관리

1. 파일 확장자 - 한글 파일로 포팅
2. 편집 용지 - 왼쪽, 오른쪽 각각 20.0mm 나머지는 기본 설정(위쪽 20/머리말 15, 꼬리말 15/아래쪽 15)을 따름
3. 글자 모양 - 글자는 신명조로 하고 자간은 160%(기본), 나머지는 기본 설정을 따름.
4. 글자 모양 - 발제는 굵은 글씨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발췌자의 의도에 맞게 이탤릭이나 굵게 설정.
5. 맞춤법 검사하여 오타 수정
6. 인용 출처 및 페이지 기재
    - 같은 책에서 발췌할 경우 페이지만 기록 /
    - 다른 책에서 발췌할 경우 <저자, 서명, 출판사, 페이지 순> / 계속해서 발췌할 경우 서명과 페이지만 기재 예시) <홍성열, 범죄 심리학, 학지사, 273p>
    - 페이지를 찾기 어려운 경우 '中' 등으로 표시하거나 기재하지 않음.
7. 첫 장에 저자 약력 및 책 소개 기입할 것
    - 직접 소개한 글이 있으면 그것을 적고 그렇지 않으면 출판사, 온라인 서점, 위키 백과 등을 참조하되 되도록 2장을 넘지 않을 것
8. 편집 시 순서 - 고정 단어만 10포인트 굵게

    도서명:
    저자명:
    모임 일시:
    발제 및 발췌자:
    편집:
    저자 소개:
    책 소개:
    발제 및 발췌 작성

9. 발췌 시 줄 띄어쓰기
같은 글의 발췌에서 다음 발췌로 넘어갈 때에는 한 줄 띄어쓰기 / 참조할 다른 글의 발췌로 넘어갈 경우 두 줄 띄어쓰기.
발췌가 끝나고 발제로 넘어갈 경우 한 줄 띄어쓰기 / 발제에서 그다음 발췌로 넘어갈 경우 두 줄 띄어쓰기.

10. 완료된 파일은 파일명 앞에 완료라고 붙임.
    - 예시)『완료 44. 소녀들의 심리학 - 레이첼 시먼스(9월 28일 일요일 3시)』


독서 동아리 정기 회의록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노력이 지속 가능한 모임으로 만들 원동력이 될 것이었기에 번거롭더라도 이러한 방식에 관해 다들 공감하고 동참해주었다. 동아리가 되고 나서 임원들이 고생하였는데, 그 까닭은 아직은 기반이 탄탄하지 않고 동아리 중심 체제라기보다 분산된 각각의 독서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던 터라 회원으로 있는 사람들조차도 동아리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에는 개별 프로그램을 마치 스터디 그룹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동아리 활동에는 협조하지 않았다. 동아리 중심으로 모집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고 차차 그들을 동아리 회원으로 포섭하기로 했다. 이러한 까닭에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참여하면 무조건 동아리 회원이 된다고 말하기보다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관심이 있으면 동아리에 가입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으로 진행했다.

동아리가 되고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임원진이 형성된 이후에는 나는 행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동아리 산하의 여러 모임 중 한 모임의 '모임장'으로만 활동하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제는 내 소유의 모임도 아닐뿐더러 이들 역시 나름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통해 그들이 이끌어 나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여 되도록 말하는 것을 자제했다. 이 단계에서는 거의 조언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들과의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터라, 창립자로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의도적으로 삼간 것도 있었다.

동아리가 되고서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점은 정식 인가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동아리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의욕 있는 동아리 연합회 회장이, 유명무실한 동아리들을 적극적으로 조사하였다. 그리고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동아리의 공간을 회수하거나 안 쓰는 공간을 찾아서 공간이 필요한 단체에 나눠주었다.

그중에 우리가 선택한 공간은 크기는 다른 곳보다 작은 편이었지만 입지가 상당히 좋았다. 우선 같은 건물 안에 생활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도서관과 연계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할 때, 이동하기가 쉬웠다. 이동 거리는 엄청난 장점이었는데, 회원들의 장소 이동이 쉽다는 측면뿐 아니라 여러 시청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모니터나 오디오 등, 필요한 기자재를 옮기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장소를 얻은 이후로 단순한 독서 모임을 벗어나 영화 모임이나 혹은 다른 실험적인 모임을 진행하는 데 이바지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와 더불어 여러 모임을 같은 시간에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점점 가입자가 늘어나게 되면서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독서 프로그램도 동시에 늘어났는데, 동아리 공간의 사용 시간대가 겹쳐 한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이럴 때 가까운 거리에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있다는 것은 두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할 좋은 기회였다. 그뿐 아니라 만약 다른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도 동아리 방을 회원들이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공간의 입지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매점이나 식당 또한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모임이 끝나거나 시작 전에 빨리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회원 간의 친목이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식사나 회식의 자리도 필요한데, 그러한 측면에서 학생 식당은 정말 좋은 친목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상권분석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인구 유입량이나 유동 인구에 관한 것인데, 학교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차지하는 후문에서 가깝고 학내에서 가장 큰길 옆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등은 회원들이 자주 공간을 들를 수 있다는 것과 신규 회원 모집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많은 경우 동아리를 모아놓은 공간이 캠퍼스의 가장 구석에 밀집되어 있거나 혹은 유동 인구가 비교적 적은 공간 주변에 있었는데, 우리 공간은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은 지나쳐야만 하는 길 위에 있었다. 공간의 크기가 작다는 게 아쉽긴 했으나 주변에 활용할 수 있는 보조 공간이 많았고 아직 가입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 협소에 따른 문제는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씨앗이 자랄 토대는 만들었으니 이제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은 이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 다만 초기에 내가 이 동아리를 설립하고자 한 목적과 방향을 잊지 않았으면 싶었다. 이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까닭은 내가 떠나고도 여러 독서 모임들이 활성화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 것이고 학생들에게도 내가 겪었던 독서 생활과 토론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모임들이 동아리가 되어서도 계속 유지가 되어야 하며, 또한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프로그램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모임장'이 꾸준히 양성되어야 했다. 각 모임이 계속 유지가 되기 위해선 모임장들은 그들의 후임자를 양성할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또한, 참여자들은 회원으로 가입한 이상 자신들이 앞으로 모임의 운영자로서 활약하게 될 것을 예상하여야만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모임 운영에 관한 지식과 더불어 모임 안에서 경험이 쌓여야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임이나 사업은 초기의 디테일이 가장 중요하며, 전체의 방향이나 성격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 까닭은 초반에는 사업이나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어 계획을 수정하기가 쉬운 편이나 시간이 가면서 참여자가 늘게 되면 그에 따른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발생하거나 초기 설정을 비판 없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서 모임의 주도권이 내 손을 떠나게 되면서(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면서) 지속 가능한 모임 운영을 위한 '모임장' 양성에 관한 세부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저 나의 이러한 뜻을 알고 있을 테니 '알아서 잘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이들은 독서 모임을 일종의 콘텐츠로 보고 서비스를 잘 제공하면 알아서 동아리의 회원 수도 늘어나고 자발적으로 모임을 운영해보겠다고 손을 들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적 성장이라는 것 외에 눈에 띄는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 감투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모임의 모집 형태는 기존과 같았다. 말하자면, 동아리 차원에서 모집한 것이 아니라 기존처럼 각각의 독서 모임 단위에서 참여 인원을 모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인원 가운데에서 동아리 가입 의사가 있는 사람을 다시 받아서 동아리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문제는 이러면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아도 개별적인 독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으니 그저 독서 모임과 관련된 서비스를 받고 끝내거나 혹은 모임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동아리 차원으로 뻗어 나가지 않고 그저 작은 모임 차원에서 형성될 뿐이었다. 이는 동아리를 가입 절차를 받게 함으로써,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도 동아리에 구속되는 것이 싫은 사람은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낳은 결과였다. 참여자들에게 의무 조건 없이 자율성만을 주고선, '독서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고 유대감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동아리에 들고 싶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독서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동아리에서 줄 수 있는 매력이라곤 현재로선 공간 활용이나 서가에 비치된 책을 볼 수 있는 정도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은 각각의 독서 프로그램을 마치 '그룹 스터디'정도로 생각하고 만족스럽게 모임에 참여했어도 따로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나마 모임장이 설득을 해서 회원으로 맞이하는 몇 명이 전부였다.

이러한 과정 중에 간혹 회장과 일부 모임장 간에 언쟁이 벌어졌다. 회장으로서는 동아리 소속 하에 있는 각각의 독서 프로그램임에도 마치 별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을 정비하여 동아리 시스템 안에서 통제를 받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아리 설립 이전부터 개별 모임에 헌신해온 모임장으로서는 기존에 계속 잘 해오던 모임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듣고 보면 둘 다 일리가 있었다. 동아리 회장으로서는 각각의 모임들이 동아리 소속 아래에 있게 되었으니 운영과 참여 인원에 대한 관리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각 모임의 색깔이 분명하며 심지어 동아리 차원에서 행정적인 지원이 아직 제대로 되고 있지도 않고 심지어 인원 모집도 모임장이 모두 노력해서 만들어 가고 있는데, 자기가 볼 때는 더 안 좋은 방향과 제도로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더구나 회장은 모임을 운영해본 적이 없어서 모임장들이 공통으로 겪거나 내부 사정을 고려해야만 하는 애로 사항조차 통제를 가하려 하거나 무 자르듯 해결하려고 한 점도 있었다. 반면에 모임장으로서는 야경국가처럼 도서 구매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지원이나 프로그램 운영이나 진행에 관한 가이드라인,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만을 제시해주고 나머지는 진행자의 역량에 따른 자율권을 주었기에 막상 간섭받게 되자 큰 반발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역량에 따른 자율권은 특정 모임의 소유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러한 반발은 그러한 소유권을 동아리에 귀속시키게 되면서 생길 수 있는 심리적 반발이기도 했다. 물론 모임장은 그 모임이 필자처럼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는 모임을 열심히 가꿔나가는 데 따라 생기는 주인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 임원진 간에 분쟁이 있을 수는 있었다. 생각이 각자 다르므로 어떤 집단이든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이에 대해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내 경우에는 손자병법이었다. 손자병법에서는 장수가 병사를 움직이는 3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데, 첫째는 명분, 둘째는 위엄, 셋째는 감동이다. 가장 좋은 것은 감동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명분의 경우에는 모두를 납득시키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대개는 장수의 위엄을 세워 병사를 따르게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상과 벌을 주든, 이익을 공유하든, 두려움을 주거나 하는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그에게는 명분이나 위엄, 감동이 있었을까?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위엄을 세우려면 이익을 공유하거나 두려움으로 따르게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텐데, 일단 이익을 공유할 게 당장으로선 없는 동아리 모임에다가 또래 간의 분쟁에서는 그러한 위엄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초대 회장이기는 했지만, 창립자인 내가 있는 상황에서는 회장으로서 위엄도 보여주기 어려웠다. (더구나 모임장과의 나이가 같았다) 그렇다면 힘들더라도 명분이나 감동을 줄 방법을 활용해야만 했다. 아마도 동아리 집단에서는 토론을 통하여 양보와 타협을 하거나 압도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이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방법이 명분도 잡고 감동을 줄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 없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주장만 한다면, 분쟁을 계속 격화될 것이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헌신하는 친구들은 떠나가거나 열정을 포기하게 될 게 분명했다.

그때까지도 학생들이 알아서 하겠지 싶었던 것도 있고 슬슬 다른 목표를 위하여 동아리 생활을 정리하고자 했던 시기였기에 지켜만 보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뿌리를 단단히 만들고 건강한 독서 동아리로 만들기도 전에 붕괴할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둘 다 이해가 갔지만, 동아리의 핵심은 각각의 독서 프로그램이었다. 나로서는 독서 프로그램은 동아리의 목적이었으며 모임이 잘 되려면 계속 리더를 양성해 나가야만 했다. 동아리는 그러한 인재풀 집단이 친목과 협업을 통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공동체이며 각 프로그램의 운영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행정기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목적을 벗어나면 동아리는 결국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게 뻔했다.

어쩌면 나는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모임장으로 참여해본 입장인지라 모임장의 고충이나 입장을 더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 학기 혹은 그 이상의 기간에 프로그램을 어떤 경제적 이득도 없이 운영하다 보면 여러 고충이 생긴다. 특히 참여자들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의지가 약해져 참여율이 저조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 자르듯 잘라버리는 것도 프로그램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전체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한 권의 책을 몇 개월간 진행하는 모임의 경우 새로운 사람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발적 프로그램이 모임장에게 이득이 될 만한 참가비를 충분히 받고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학점이 걸려 있거나 어떤 강한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설계된 독서 모임은 구조 면에서 보자면, 개신교 교회의 본 예배를 제외한 여러 예배 모임과 유사하다. 각각의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자발성이 중요하며 이들에게 큰 페널티를 줄 수 없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모임장에게 ‘경제적 차원에서 보상을 하면 잘할 것인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그것 역시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단위에서는 현실적으로 경제적 보상이 쉽지 않을뿐더러,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자칫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유대감이나 소속감을 주는 일이 되기보다 시간제 아르바이트 그 이상이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보상 이상으로 내적인 보상이 있는 게 경험상 좋았는데, 그 내적인 보상은 자신이 운영하는 모임에 대한 만족감과도 연관되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만족감이 큰 모임이라고 한다면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여러 의견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모임이다. 소통이 잘 되는 모임을 하고 나면 긴밀한 유대감이 생기거나 혹은 정신적·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동아리 차원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하나 이상의 모임을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중요했고 모임장의 자율성과 주인의식을 존중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중요했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를 보면 '가능한 세상 중 가장 좋은 세상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고민하는 캉디드가 자신의 정원을 묵묵히 가꾸어나가는 노인을 보면서 큰 감동을 얻는 장면이 있다. 가능한 세상 중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세상을 위하여 여러 경험을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하지만, 적어도 저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위치에서 노인처럼 아름답게 가꿔 나가려 노력한다면 그러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볼테르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본다. 내가 볼 때 독서 모임의 모임장들도 이와 같았다. 이들은 황무지에서 밭을 갈고 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러 꽃을 피우기 위해 때로는 기쁨의 시기를, 또 때로는 고충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모임을 운영해본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잘 운영되길 바랄 것이다. 중간에 엎는다는 것은 자신의 경력뿐만 아니라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임이 잘 안 되는 시기가 있더라도 모임장이 의지가 있다면 대체로 이 시기만 넘기면 웬만하면 잘 해결이 된다. 이러한 상태는 마치 이따금 찾아올 수 있는 고독이나 우울과도 같다. 우울함이 오는 시기에는 시간이 흐르면 그 기분이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임을 알면서도 괴로움을 이기지 못할 수 있듯, 모임장은 이따금 그런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분에 모임을 잘 가꾸어나가지 못할 수 있다. 이럴 때 그것을 빼앗는 조치나 뭔가 그러한 느낌을 행동을 한다면 황무지를 개간하던 모임장의 모든 노력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동아리 회장이 이러한 점을 이해해준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는 모임장으로서 독서 모임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으므로 이러한 고충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해결 방법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볼 때, 모임장을 옹호하는 듯한 장문의 메시지를 써서 보냈다. 너무 오래되어 글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분명 그가 볼 때는 서로 간의 감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진 상태에서 한쪽을 편애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메시지를 보내고 한참이 지나자 그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은 나로서는 제법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자기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원망과 더불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라는 식의 엄격한 답변이었다. 읽다 보니 조금은 화도 났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정도로 완고하며 계획이 있는데 타이른다고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았다. 또한, 이미 독서 모임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정리하려던 상황이었고 때마침 약속으로 바쁜 길을 가고 있었던지라, 그 답변에 그저 "그래? 알겠다."라고 마무리했다.

나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회장으로서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그것을 존중했다. 그러나 존중한다고 해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그는 나와 다른 노선을 걷고 있었다. 가령, 학습이나 토론 공간으로서의 동아리방의 활용보다 휴식 공간으로써 활용을 우선한다는 규정 등은 내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동아리라는 조직의 특성상 휴식 공간이라고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든 쉬러 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더구나 학교 내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은 많았으며 프로그램 단위로 진행되는 모임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하나의 독서 프로그램으로 사람을 이 공간으로 유도한 뒤에 차츰 동아리에 머물다 갈 시간이 많도록 여러 유인 요소를 집어넣는 게 옳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휴식 공간이 학술 공간에 앞서야 한다는 측면에 대해서 완고했다. 이는 초기 동아리 설립 취지나 공간 획득 의지에 관한 애초 생각과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고 한 해가 또 지났다. 그때는 이미 이립(而立)을 세우고도 남았을 나이였던지라, 동아리가 아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독서 모임에만 계속 헌신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미래나 직업에 관하여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시기였고 재학생들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에 관하여 괜한 자격지심이 생기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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