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Oct 14. 2019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

7. 지속성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동아리 창단 계획을 구상하다.

Photo by �� Claudio Schwarz | @purzlbaum on Unsplash


※  독서 모임의 진정한 가치는 모임 안에서 어떠한 가치 있는 생각들이 오고 갔느냐일 것입니다. 그러나 곡식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토양을 만들고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듯, 독서 모임 그 자체도 바로 그러한 지적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토양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독서 모임 가이드」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생각이나 경험들을 중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이러한 글을 쓴 까닭은 독서 모임을 새롭게 만드는 분에게는 여러 모임의 형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함에 있으며, 독서 모임 진행하거나 참여하고 계신 분은 자신과 같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공감을 하고 저처럼 자신의 독서 모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의도는 이러한 몇 년간의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가치 있는 사고를 위한 독서 모임」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이나 느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좋은 독서 모임을 만드는 방법보다도 좋은 독서 모임이 되기 위해 어떤 사고를 했는지를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독서뿐 아니라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이야기는 연재 중에 계속 수정되며 추가될 수 있습니다.)


1부 이야기 -「1. 독서 모임을 접하다.」https://brunch.co.kr/@wringkle/115

2부 이야기 - 「2. 독서 모임을 만들다.」https://brunch.co.kr/@wringkle/122

3부 이야기 - 「3. 발췌와 발제의 기준을 세우다.」https://brunch.co.kr/@wringkle/131

4부 이야기 - 「4. 안정적인 장소를 얻다.」https://brunch.co.kr/@wringkle/135

5부 이야기 - 「5. 양적으로 성장하다.」 https://brunch.co.kr/@wringkle/138

6부 이야기 - 「6. 새로운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다.」 https://brunch.co.kr/@wringkle/142




《학기 중 진행한 「총 균 쇠」 모임에 관한 일지, 제레드 다이아몬드》


이러한 방식으로 학기 중에 대략 3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 「총 균 쇠」 모임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물론 몇 가지 문제도 있었는데, 대체로 출결 관리와 관련된 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매일 아침 8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지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 시험 기간이 겹쳤을 때 참여 인원이 급속도로 줄어든다는 점, 시험 이후에도 분위기를 다시 다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 모임의 마지막쯤에 가서는 나태해진다는 점 등이 그러했다. 그런데도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대체로 매일 참여 인원이 5~6명 정도를 웃도는 수준이었고 모든 사람이 낙오 없이 꾸준히 참여하여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다 읽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모임을 그 긴 3~4개월 동안 어떻게 매일 이끌어 나갈 수 있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떤 비용도 받지 않고 매일 아침 이러한 일을 자발적으로 해내기란 사실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러한 모임이 모임의 참여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모임을 운영하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자발적인 일들이 그렇듯 무엇보다 자신이 재밌어야 하고 스스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 일은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고, 혼자서는 읽기 어려웠을 책을 꾸준히 읽게 했고, 모임에 책임을 졌기 때문에 누가 오든 간에 꾸준히 준비해야 했으며, 비록 어떤 우연한 사정으로 혼자만 있는 날이라고 하더라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나'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때로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거나 우연히 다들 지각이라도 하는 날이면, 인간인지라 불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이 있었다. 그럴 때일수록 이 일을 포기하는 것보다 계속할 때 얻는 이익이 더 많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이것이 모임을 통한 개인의 성공이라면, 독서 모임이라는 시스템 측면에서의 성공은 이 시스템을 마지막까지 유지하여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책의 마무리를 같이 보는 것이다. 이럴 때, 성공적으로 끝을 내려면 우선은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자신에게 이익이 될 측면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모임을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만 여기며 모임을 진행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일뿐더러,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거나 공감한다고 해서 결코 나와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따라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부터 내 지적 성장과 규칙적인 삶에 (하지 않는 것에 비하여) 상당히 기여한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임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리더는 좀 더 자신에게 가혹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관인엄기寬人嚴己,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까닭은 그래야만 리더로서 떳떳하게 모임을 이끌어 나가거나 참여자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각이나 결석을 하면서 타인에게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엄격함은 집단의 리더라는 지위에서뿐 아니라 학습을 하는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 모임에서 늦거나 결석하지 않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할 때, 신뢰뿐 아니라 맡은 일에 대한 탁월함 마저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과 모임의 성공에 힘입어 방학 중에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비슷한 형태의 아침 모임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기도 하고 많은 학생이 권력의 속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기에,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계보학적 접근법이라는 지식의 접근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힘으로써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라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물들이 어떤 정신이나 관념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혜안을 갖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1기에서 진행한 「총 균 쇠」라는 책이 인류의 문명 발달의 기원과 흐름에 대한 추적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문명 속에서 만들어진 제도나 사물들에 내재한 정신의 흐름에 대한 추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생각해보면 이 둘이 아예 관계가 없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기 모임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니, 1기 「총 균 쇠」 모임 때 참여했던 인원들 대부분이 2기에도 함께 하기를 원했고 거기에 더하여 새로운 인원이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감시와 처벌' 역시 큰 틀에서는 「총 균 쇠」 모임과 다르지 않았고 벌금제 등의 세세한 부분만이 보완이 되었을 뿐이었다. 다만, 이 책은 아무래도 「총 균 쇠」보다는 문장이 장황한 점이 있고 우리 선조와는 조금은 다른 프랑스나 유럽의 문화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책은 1기 도서보다는 얇았지만, 더 쉽지는 않았다. 이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영역본을 참고했다.     

책이 더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모임에 참여해줬다. 이때에는 참여하는 인원이 더 많고 굳이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방학이었기 때문에, 아침 8시까지 학교에 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도적으로는 벌금제도를 더 깐깐히 했는데, 지각이나 결석, 혹은 홈페이지에 기록물 미작성으로 인한 벌금이 꽤 모이게 되었다.     

기록물 작성 방식도 처음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쓰였는데 방법적으로는 브레인스토밍이나 민토 피라미드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하거나 A4 용지 한 장에 수기로 정리하고 사진을 찍어 업로드, 개요 짜는 방식으로 계층 구분을 하여 정리하기도 했다. 내용으로는 쉽게는 읽은 부분을 요약정리하거나 토론 가운데 나온 질문 일부를 복기하거나 못다 한 생각을 추가하여 글로 기록하는 것, 혹은 그날의 모임에 대한 감상평을 기록, 혹은 보충 자료를 인터넷이나 다른 책으로 찾아 입력하는 식으로 다채로워졌다. 또한, 댓글 기능을 통해 이따금 추가적인 논의나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독서 후 다양한 형태로 작성된 개인 기록물》


게시물은 대체로 한 게시물에서 '수정' 버튼을 눌러 추가하거나 혹은 댓글로 매일 글을 이어나가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그 까닭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글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물론 양이 많거나 혹은 별도로 구분해서 게시해야 할 글, 또는 모임이 끝난 후 독서 후기나 기타 구분할 필요가 있는 글은 양해를 구하고 별도의 게시글로 작성했지만, 대체로는 하나의 게시글에 이어 적는 것을 다른 이들도 선호했다. (아마 지금 이런 모임을 다시 하라고 한다면 브런치의 매거진 기능을 활용하거나 카카오톡의 게시판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토록 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이끌어가기 위해선 참여자들이 글을 작성하고자 하는 자발적 의지가 중요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매일 작성을 요구하기란 힘든 일이었기에 글 미작성 시 사소한 페널티로 벌금을 걷게 한 것도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글을 남기도록 하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돈은 이후에 친목이라는 목적뿐 아니라 모임의 연속성을 위하여 정말 중요한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추억을 아직도 잊지 않는다. 그때는 모임이 모두 끝나고 모임에 관한 소회와 함께 벌금으로 모인 돈도 털어버릴 겸 회식을 하기로 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특별한 것을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소풍 겸해서 연안 부두의 횟집 센터로 향했다. 술 한잔을 기울이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서, 본격적으로 그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앞으로의 내 생각을 전했다. 이 모임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독서 소모임을 넘어서 연속성이 강한 동아리에 관한 구상을 이들에게 전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가 역사가 제법 되는 종합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등록된 독서 동아리는 없어. 그나마 소모임으로 운영되는 곳들도 있지만, 연속성이 없을뿐더러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쉽게 무너지지. 독서를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이들을 위하여 나는 지금의 모임들을 연속성 있는 동아리로 만들고 싶어. 누구든지 참여하여 우리가 느낀 '가치 있는 생각의 공유'라는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토론의 장소로 말이야. 독서와 토론이 재미있고 유익할뿐더러, 지식인 양성이라는 사회적 가치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아마 이런 식으로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에게 동아리에 대한 필요성을 말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처럼 우리가 하는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시스템화하여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동아리로 만들게 됨에 따라 공간을 지원받게 되면 더욱 안정적인 형태의 독서 모임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 동아리를 통하여 독서 모임을 운영할 수 있는 운영 주체들을 계속 양성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말하며 동아리의 차별점을 어필해 나갔다.     

당장 내가 없으면 사라져 버릴 소모임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모임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서 아무 때나 지적인 모임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현재로서는 그 시스템을 지속적인 학생 참여가 가능한 학교에 두는 것이 최선인 듯했다.     

모임을 성황리에 마치고 모두가 충분히 독서 모임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었기에 이들은 나의 의견에 동조했고 다음 날부터 동아리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착수했다.     

"어쩔 수 없이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조직해야 하지만, 적어도 기존의 동아리의 형태를 넘어서는 자격을 갖추길 바라. 우리가 떠난 이후에도 친목이 중심이 되거나 우리가 가진 지금의 좋은 가치를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거지. 그래서 나는 우리 모임이 세 가지 자격을 갖추길 바라는데, 첫째는 모임의 친밀감이나 소속감을 주고 여러 참여자가 동시에 성장하여 단순히 참여자가 아닌 그 자신이 운영 주체로서 활동하는 동아리로서의 자격, 둘째는 학생뿐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동아리에서 운영할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 가능한 동호회로서의 자격, 마지막으로 단순히 친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에 관하여 자발적인 노력과 연구를 하는 연구 스터디로서의 자격을 함께 갖추길 원하는 거지."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동아리,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들어가 또래 집단만을 받아들이는 기존 형태의 동아리가 아닌 '가치 있는 생각의 공유'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계승하고 누구나 참여 가능한 모임이라는 성격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선 30여 명 이상 회원을 확보해야 했고 이들로부터 서명을 받아야만 했다. 이를 위하여 지금까지 격주마다 진행했던 독서 모임과 「총 균 쇠」와 감시와 처벌을 진행했던 회원제 중심의 아침 모임, 그리고 장소를 제공하며 함께 독서 관련 사업을 계획한 생활 도서관의 일부 임원진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독서 동아리로 실질적으로 활동하게 될 학생들이었다.     

동아리로 승인받기 위한 다음 단계는 1년 이상 어떤 모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고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에 관하여 동아리 연합회에 제출 및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자료를 작성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동아리 단계가 되면 동아리 조직에 대한 체계가 필요한데 이 점에 대해서 기존에는 거의 혼자 다 해왔기 때문에 부서를 어떻게 나누냐 하는 점이었다. 기존의 동아리는 나이를 중심으로 집행부를 이미 경험한 선배 집단과 집행부, 그리고 신입생으로 조직을 구성했지만, 그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한 우리 모임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를뿐더러 현재의 회원 구성에도 적절치 않았다. 그리고 조직 안에서 하나의 교육이나 프로그램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형태의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조직 구조 형태를 참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회장, 부회장, 회계를 넣고 그 밑에는 진행할 프로그램 단위의 조직과 기록물 관리부를 임의로 만들었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동아리가 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고 한동안 계속 운영이 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였던 점은 각각의 독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집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잘 알지 못하고 동아리 회원으로 모집을 한 게 아니라 프로그램 참여자로 모집을 했기 때문에 독서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은 있을지언정, 동아리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그저 자신이 구성원의 일부라고 느끼기보다 프로그램에 대한 서비스를 받는다는 인식 정도로 여겼다는 점이다. 이것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업이라면 그러한 생각도 이해할 수 있으나, 친목과 더불어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앞으로의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멘토가 자발적으로 생겨나야만 유지될 수 있는 '동아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구조는 향후 동아리 존폐의 기로를 만들 수밖에 없는 체계였다. 여하튼 그때에는 일단 동아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기보다는 만들고 나서 임원과 회원 간의 협업을 통해 수정해 나갈 것으로 믿었다.      


《초기 모임의 조직도 - 초기 조직의 형태는 이러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나는 동아리가 되면 회장이나 임원의 자격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 까닭은 동아리의 회장은 재학생이 되어야 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을 어기고 내가 회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동아리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나 업무, 또는 금전적 지원에 관하여 졸업생으로서 관여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동아리를 만들기로 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회장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한 친구를 임시로 회장으로 두고 계획을 짰으며, 그 형태가 마무리되자 정식 투표를 거쳐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가 투표를 거쳐 동아리의 초대 회장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에게 전권을 위임했는데, 그 까닭은 그 역시 그만의 생각의 있었고 그 친구라면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왔으니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아리를 만들 당시 내가 생각했던 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점들이 점차 눈에 뜨였고 다른 개국 공신(?)들과의 잦은 충돌도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점은 당시에는 시간이 지나면 잘 해결될 문제로 보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나, 이러한 충돌과 반목이 앞으로 발생할 여러 문제의 원인이 되고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동아리를 떠나게 된 한 가지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한참 뒤의 이야기이다.     

동아리의 구색이 갖춰지고 우리는 동아리 정식 등록 이전에 1년간의 유예기간 거친다는 의미의 임시등록을 위하여 동아리 연합회 회의에 참석했다. 동아리 연합회의 임원들은 우리의 발표를 들어보고 이것이 학교 내의 동아리에 적합한지, 이와 유사한 동아리가 이미 존재하는지 여부 등을 판단하고 동아리 연합회 소속의 정식 동아리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했다. 동아리를 만드는 절차가 이처럼 복잡한 까닭은 현재 학교 내에 존재하는 동아리의 숫자가 100여 개 가까이 되고 그중에 일부는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으며, 비슷한 동아리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정식 동아리가 되면 학교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공간적, 재정적 혜택이 있으므로 이들은 동아리 선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들 앞에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고 질문을 받았다.     

그중 한 사람은 무례할 정도로 도발적인 어조로 내게, "이거 독서 스터디 그룹과 별 차이 없잖아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따지면, 영어나 일본어와 같은 학습 동아리나 토론 동아리들도 비슷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았지만, 질문이 들어왔으니 그에 대해 이렇게 답변을 했었다.      

"그러한 의문이 든다는 점 이해합니다. 그러나 학교 안에 독서 동아리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조금 하다가 사라질 스터디 그룹보다 학생들이 지속해서 토론할 수 있는 전통 있는 모임을 정식화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동아리로 만들면 참여자들은 모임에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니 좋고, 학교나 동아리로서는 그런 독서 토론 모임을 다채롭게 양성할 수 있으니 좋을 것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될 텐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스터디 모임에서 지속해서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아리 형태가 되면 협업을 통해 각각의 프로그램을 수월하게 지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독서 스터디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동아리 형태에서는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을 역설하고 싶었다. 실제로 동아리가 되고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친목 활동, 재정적 여유에 따른 프로그램의 다변화, 동아리 공간 활용을 통한 시청각 모임 진행 등 동아리가 아니었다면 하기 어려운 일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제는 모임의 소유자가 나 개인으로부터 집단의 구성원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수많은 난관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은 아직 쉽게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니 어쩌면 구성원들이 토론을 통해 현명하게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만 믿었던 것 같다. 여하튼 우리는 동아리 연합회에서 발표를 마치고 하루 이틀 정도를 기다렸다. 앞서 말한 바처럼, 학교 안에 제대로 된 독서 관련 동아리가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가 안 되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터디 그룹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라고 반문한 한 사람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이전 11화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