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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Jan 23. 2019

[초단편소설] 나의 아들이라며 울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겠소.

이보오. 이제 그만 우시오. 내 손을 잡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눈물이 흐른다오. 무엇이 그리 슬프단 말이오.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겠소. 당신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듣고서 내가 당신의 엄마인 걸 알았소. 당신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걸 보니 우리는 좋았던 기억이 많았나보오. 그리고 난 꽤 괜찮은 엄마였나보오.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오. 


그만 미안해 하시오. 이곳에서 지내는 것은 꽤 괜찮다오. 다른 곳에서 지내던 기억이 남지는 않았소만, 그래도 지금 괜찮다고 느끼면 괜찮은 것 아니겠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밥도 주고, 대소변 보는 것도 도와준다오. 운동도 시켜주고,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게 시간도 마련해 준다오. 내가 어릴 때랑 비교해보자면 이건 엄청난 호사라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기억은 해질녘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엄마가 대문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오. 엄마는 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손을 흔들었소. 나도 잠깐 손을 흔들고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소. 나의 키는 엄마의 허리께 밖에 오지 않았소. 엄마는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겠소. 


며칠 전 거울을 보다가 잠깐 슬펐소. 내가 기억하고 있는건 어린 날의 나인데, 지금 보고 있는 거울 속의 나는 그 때의 나의 엄마보다 나이가 몇배는 더 많아 보였기 때문이오. 기억이 나지 않아, 내 삶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잘 살아왔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얼마만큼의 기쁨이, 얼마만큼의 슬픔이 있었을까. 


거울로 보는 내 모습과 컨디션으로 봤을 때 나의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을거라는 느낌이 온다오. 여기 자주 오지 마시오. 그때 또 와도 난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소. 지금 이 생각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소. 그럼 당신은 또 얼마나 슬프겠소.


그런데 창밖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된게 또 뭐가 대수인가 싶소. 우리 언젠가는 모두 끝을 맞이할 수 밖에 없지 않소. 태어나고, 살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의 전부니까 말이오.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들은 그 사람들과 함께 땅에 묻혔소. 나는 조금 일찍 기억만 먼저 묻은 것 뿐이오. 별 것 아니라오. 기억이란 사라지게 마련이오.


당신은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 재미있게 사시오. 나는 예전에 재미있게 살았소? 부디 그랬기를 바라오. 이렇게 기억이 안나다 보니 순간에 영원이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오.


지금의 나는 잊고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만 가져가 주시오. 우리 함께 웃었던 그때의 나와 함께 가시오. 추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간직하지 마시오. 그 아름답던 순간만 영원히 간직해주오. 


더 이상 나는 신경쓰지 마시오.

잘 지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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