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사철'의 부활을 꿈꾸며
[결문] '문사철'은 계속 연재됩니다!
- '문사철'의 부활을 꿈꾸며
1.
어릴적 꿈은 '고고학자'였다.
중년이 된 지금 가끔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무슨 원대함이나 간절함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실은 그 또래 다른 친구들이 '과학자'가 꿈이었던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태권V를 보고 나중에 커서 그런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 '과학자 김박사'가 되고 싶었던 어느 친구가 있었던 것처럼, 아직 공룡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공룡을 발굴하고 싶었거나, 취학 전 TV에 들어갈 듯 빠져들어 보던 마징가에 나오는 기계수와 전투수 악당들을 '발굴'하고 싶어서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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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던 19세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의 '고고학자'들을 만났을 때는 이미 내 꿈은 더 이상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장편 추리소설에 처음 맛들인, 꿈 따위는 아랑곳 없던 사춘기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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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 우연히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를 알게 되었고 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따라 고대 미케네 문명을 발굴한 독일 상인 하인리히 슐리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잠시 뛰었다. 그러나 역시 스무살의 나는 '고고학자'를 꿈꿀 나이가 아니었다. 심지어 하인리히 슐리만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고고학자'는 아니었다. 19세기 말 설형문자 해석으로 대홍수 신화를 역사로 증명한 조지 스미스도 그렇고, 20세기 초에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도 엄밀히 말해 제대로 배운 '고고학자'가 아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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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또는 '인문주의' 또한 꼭 '전공'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2.
"개인적으로 새로운 기원을 찾아가는 고고학이야말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발견해나가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고요. 그걸 해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에필로그 : 새로운 과거를 찾아가는 고고학>, 강인욱, 2023.
우리 고고학자 강인욱 선생의 책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고고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수필집'에 가깝다. 저자 또한 우리 고고학계의 시조와 같은 삼불 김원용 선생(1922~1993)이 1950년대에 유물 발굴을 하면서 남긴 수필들을 언급하는데, 고고학을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신문에 짧은 에세이를 연재해온 듯 하다. 이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잔치'와 '놀이', '명품'과 '영원' 같이 인류에게 친숙하며 생존에 불가결한 테마로 분류하고 있다.
1부 '잔치'에서는 막걸리와 소주, 해장국과 김치, 삼겹살과 소고기 등의 역사를 다루며 사물의 기원보다는 현재의 발전형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부 '놀이'는 고인돌, 씨름과 축구, 여행과 낙서, 개와 고양이까지 인류 '유희'의 역사를 돌아본다.
3부 '명품'에서는 석기, 실크와 황금, 도굴과 모방 등을 다루며 인류 문명에서 석기의 '창조'부터 '도굴'의욕망, 문명전파와 새로운 창조의 계기로서 '모방'을 조명한다.
4부 '영원'은 벽화와 문신, 미라와 발굴괴담, 점복과 메신저 등을 통해 영원한 삶을 욕망해 온 인류의 유물과 기록을 살펴본다.
이 책은 '고고학'과 '역사학'을 구분한다.
고고학의 재료는 '유물'이고 역사학의 재료는 '문헌'인데, 새로운 유물의 발굴로 인해 고고학적 성과는 새롭게 갱신되고 있는 있는 반면, 역사학에서는 과거를 송두리째 바꿀만한 완전히 새로운 문자나 문헌이 발견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래 보존되기 어려운 '문헌' 자료들이 이미 거의 발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고학자인 저자는 은연 중에 '고고학'을 미래지향적 과학으로 규정하고, '역사학'을 과거라는 시간의 범주로 두고 있다.
이는 한 편으로 보면, '고고학'과 '역사학'의 관계를 '과학'과 '철학'의 관계처럼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학'은 '개별'이고 '철학'은 '보편'이다.
'고고학'과 '역사학'의 관계도 그렇다.
저자는 고고학 유물 이야기인 책의 제목을 [세상 모든 것의 기원(The Origin of Everything)]이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손을 거친', '사람이 만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고학에 깃든 '문사철', 또 다시 '인문주의'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고고학의 인문학적 접근이다.
'고고학'의 개별적인 과학적 성과는 결국,
'역사학'의 보편적인 인문학적 성과로 종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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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년 시절의 한 때는 '소설가'를 꿈꿨다.
역시 돌아보면, 어린 시절 '고고학자'처럼 구체적이지도 간절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뜻대로 잘 풀리지 않던 삶을 떠나 문자들 속으로 도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단편소설 습작 몇 편 끄적이다가 말았다.
대신, 그 동안 읽어두었던 책들을 '서평'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썼고, 짧은 '소설'의 형식을 입혀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19세기말 쿠바의 담배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독사(讀師)'가 있었다는데, 나 또한 그런 '책 읽어주는 노동자'가 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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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적지 않은 글들을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의 테마로 분류해 왔다.
이른바 '주간 문사철'이다.
나는 '주간 문사철'을 통해 우리 삶을 바꾸는 '인문주의' 부활을 꿈꾼다.
나와 동시대 사람들이 많은 책들을 통해 다양한 '인문주의'적 독해와 해석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주간 문사철'은 계속 연재된다.
***
1. [세상 모든 것의 기원(The Origin of Everything)], 강인욱, <흐름출판>, 2023.
2. [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온 여정], 이상희, <동아시아>, 2023.
3.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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