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먼 옛날에..(25년쯤 전?) 영국으로 연수를 간 남편이 대만 회사에서 연수 온 여자와 종씨라며 의남매(?)를 맺었더란다.
귀국 후에도 가끔씩 연락이 오가더니 어느 날 그녀는 우리 집으로 일주일 휴가를 왔다.
남편의 간청(?)에 못 이겨 왔다는 그녀가 쿨한 건지 내가 옹졸한 건지, 어쨌든 나는 졸업 후 10여 년 동안 던져놓았던 영어에 바디 랭귀지까지 동원하여 호스티스 노릇을 해야 했다.
졸지에 대만 고모가 생긴 아이들은 좋아라 했지만, 족보가 어째 이상한 데다, 그 당시 그녀가 미혼이었던 관계로 내 기분은 개운치만은 않았다. 민간외교 차원에서 여기저기 서울관광을 했으나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고 뚜렷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설악산 여행이다. 겨울옷이 필요 없는 대만의 기후상, 그녀가 가지고 온 제일 두꺼운 옷은 카디건, 그녀는 내 파커를 빌려 입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녀에게 태어나서 처음 본 눈은 신기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다음 해 그녀는 결혼을 했고, 약속대로 우리를 초대하여 관광은 물론, 매일 저녁 상다리가 휘어지는 정찬에 신혼방까지 내어주어, 한국에서의 나의 옹졸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출산, 백일 선물, 몇 번의 연락.. 그러다 언제부턴지 모르게 연락이 끊어졌는데
대만 여행을 하다 보니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여행책에 매 번 나오는 ‘친절한 대만 사람’을 나는 애저녁에 경험했다는 사실.
가오슝 골목 탐방.
대만의 건물이나 집들은 그 형태나 색이 무척 다양하다.
나란히 있는 건물들조차 같은 게 하나도 없어 마치 건축박람회에 온 듯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편일률적인 것을 거부하는 대만 사람들은 아마 건축가의 기질을 타고난 것 같다.
예전에 잠시 머물렀던 런던 외곽의 똑같은 집들은
번지수를 알아야만 찾을 수 있었다.
미니멀을 표방한 획일, 또 다른 억압의 냄새를 지닌 듯한 런던의 주택들과 대만의 집들은 동양과 서양, 얼굴과 관습만큼 달라 보인다.
각자 다른 법규 때문일 수 있으나, 어차피 건축법조차 그 나라 국민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것이니까. 대만의 건물, 집들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자기의 느낌을 넣은 듯하다.
뒷골목 아무 데나 앉아 다양한 집들과 골목을 그리고 싶었으나, 동행의 눈치도 봐야 하는 입장. 스케치만 한 두장 하고 골목탐방에 나섰다.
채색은 나중에 하리라는 언제나 거의 지켜지지 않는 공약속을 남긴 채. 종일 이 거리 저 골목 다니다 결국 앉은 곳은 스타벅스 2층.
역시 편하다. 대만까지 와서 스타벅스라니.
내 카페 작업실은 프랜 차이즈, 알고 보니 해외에도 있었다는 사실.
대만 타이난 적감루.
네덜란드가 대만을 점령했을 때 지은 건물이어서 일까. 동양과 서양의 느낌이 묘하게 섞여 있다.
캐주얼하게, 무심한 듯 그려 보려 했는데..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또 열심히 그리고 말았다.
'열심히 그리지 말자'라는 모토는 왜 그림 앞에만 서면 작아지게 될까.
그림이 내겐 '그대'가 되었나 보다.
다이어트와 숙제가 '내일부터!'이듯,
그림도 매번 '다음부터'. 문제는 다음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대만 여행- episode 2.
10여 년쯤 전(?) 작업실을 같이 쓰던 친구들 5명과 대만 여행을 갔었다.
단체로 넣던 2년 만기 여행적금, 그 해의 목적지로 대만 낙찰. 지우펀, 화산섬, 이름 모를 온천.. (패키지라 여기저기 다닌 듯)
관광지의 이름은 잊혔지만, 먹고 떠들고, 깔깔대던 친구들의 모습은 그곳 배경과 오버랩되어 남아 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별로 볼 일 없이 살지만, 그 시절 우리가 함께 했던 여행은 가끔씩 따스한 미소로 찾아온다. 여행은 때때로 잊고 지내던 과거를 소환, 현재와 연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