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도망칠 수밖에 없던 날들
2021년 04월 기록
왜 프랑스에 왔을까 하는 생각을 따라가 보니 그 아래에는 존재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나는 내가 특별하기를 바랐고,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환경에서 벗어나면 다시 나의 찬란한 특별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별하다는 말로 우월함에 옷을 입혀 놓고 방패로 삼았다. 그렇기에 더욱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서 왔다는 생각을 따라가 보니 그 아래에는 다른 마음이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었다. 달아나고 싶었고 숨고 싶었다.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쁜 이들이 나를 헐뜯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번 나는 부족한 사람 같았다.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따뜻한 마음은 흘려보내고 작은 가시만 골라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너와는 달라.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
그건 네 생각이고.
이 말들을 한국에서는 뱉어낼 수 없었다. 이상한 건 나였으니까.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내가 스스로를 옥죄였는지는 모르겠다. 간단하게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더 뾰족하고 날카로운 사람이 되었고, 말로 상대를 찌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불안했고, 미워했다. 겉으로는 다 괜찮아 보여도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감당하는 게 어려웠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무너진 자존감을 가리기 위해 모두를 끌어내리고 싶었으니까.
때로는 아니 자주 그들을 비난하고 끌어내렸으며, 내 삶이 더 나은 것처럼 행동했다. 보여주기에 바빴다. 그들이 정확히 누구를 지시하는지 모르겠다. 형체도 출처도 불분명한 이들이 있었다. 다시 보면 다른 사람은 아니었고 그건 내 마음이었다. 더 이상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나를 갉아먹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걸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합리화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벗어난 게 아니라 싫은 걸 하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
평범하게 살지만 갑자기 특별함을 찾게 되는 주인공에 매번 매료되었다. 마치 나의 인생이 저렇게 될 것이라 기대했고, 그 특별함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책 속은 재밌었고 삐져나오는 마음에게서 숨기에 좋았다. 나도 주인공과 같이 꿈을 꾸고, 악당을 무찌르고, 복수를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기에 완벽한 피난처였다.
하나의 길을 올곧이 가는 사람들을 보며 질투심을 느꼈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도 느꼈다.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걷는 이들을 보며 때로는 혹여나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친 건 아닌지 불안했다. 걸어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보며 "저게 내 것이어야 했어"라는 쓰디쓴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합리적이지 않은 씁쓸함이 지나가면 다른 마음이 손을 건넨다. 내가 선택한 길이 나를 위한 길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고. 치열한 고민 끝에 원하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납득되지 않은 길을 가지 않은 것이라고. 다른 길은 나랑 결이 맞지 않았다고.
그렇기에 나는 프랑스로 왔다.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는 마음을 알기에. 내가 그걸 혼자 벗어던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만큼 강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 메아리가 닿지 않는 곳으로 피신했다.
그렇다고 빛나는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차디찬 현실도, 쓸쓸한 마음도, 옆을 지키는 불안감도 모두 함께 날 반기고 있었다. 그 시절에 다른 마음이었더라면 다른 상태였더라면 같은 길을 걷지 않았겠지. 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게 나이니까. 이 순간에 내린 선택들도 매일같이 나를 기다리는 고민들도 나의 일부이다.
웅크리는 시간에는 다른 이들의 삶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눈앞에 보이는 게 어둡고 너무 불안하기에.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어도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감당하는 것 오롯이 내 몫이다.
뭐 어쩌겠어. 내가 선택한 길인 걸.
이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선택했다는 말은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그 말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남이 나를 위해 건네준 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들 탓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기에. 어떻게 더 내 삶을 사랑하고 나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
이제는 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이유가 있다. 특별하기는 하겠지만 그 특별함이 더 우월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왜 사람들이 같은 길을 치열하게 걸어가고자 했고, 경쟁이 치열한지. 다 그만큼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내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걸, 특출 나지 않다는 걸 안다. 지독하게도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아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여전히 존재감에 대한 갈망은 이따금 튀어나온다. 타오르는 갈망을 붙잡은 채 다시 허우적거리다 보면 다른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왜 그렇게 특별하고 싶었을까.
더 특별하고 싶어서 배웠고 시도했던 그 모든 게
그저 살고 싶어서 다른 자극이 필요했더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마 내 인생은 앞으로도 튀어나오는 갈망을 쫓으며 이어지겠지.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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