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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는 것이 지겹고, 조금 외로울 뿐.

죽고 싶진 않아요

by 챌린지언 Feb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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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2일 새벽 2시 16분. 나는 '자살 예방 상담 전화'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죽고 싶다기보단 그냥 사는 것이 지겨웠는데,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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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스무 살 무렵 '40살이 되기 전까지는 죽을힘을 다해 살아보고, 안되면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왜 마흔이 기점이 되었는진 모르지만, 아마도 20년 정도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


그 뒤로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긴 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은 채로,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간혹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무 살에 했던 다짐을 꺼내어보며, 아직 시간은 충분해! 40살 까지는 해보자! 하고 나약해진 정신을 추슬렀다. 그렇게 다시, 다시, 다시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39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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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서른아홉은 희망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살아온 시간을 청산하고, 조금은 여유 있는, 굳이 여유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희망.  


손 끝에 닿을듯한 희망이 아른거려 더욱 빠르게, 더욱 거세게 나를 채찍질했다.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밥 먹는 시간도 없이 온통 일로 가득 채우는 것도 모자라, 아직 한참 남은 11월의 일정을 조율하면서 '당분간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안심했다.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살아 있기를 잘했다며 스스로를 독려하던 찰나, 갑자기 호흡 곤란이 찾아왔다. 공황장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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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는 그 증상이 발현됐던 장소나 사건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은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스케줄을 확인해야 했기에 시간표를 볼 때마다 숨이 막히는 공포를 감내해야 했다. 공황을 야기시키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다 보니 자주 현기증이 나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눈에 보이는 아무 병원에나 기어 들어가 몸살 기운이 있다며 영양주사를 맞는 행위를 하루 걸러 하루씩 했다.


살고 싶어서 죽도록 열심히 했을 뿐인데, 왜 내 몸은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숨을 쉬지 않는지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다. 이제 다 왔는데.. 결승선을 앞에 두고 나자빠진 내가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생각을 필두로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난을 스스로에게 거침없이 퍼부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은 빠른 속도로 나의 기력을 소진시켜 나갔다. 다행히 다년간 '학습된 희망' 덕분에 나의 무기력을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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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를 흔히 '고립운동'이라고 하는데, 나는 인생 자체가 고립이었다. 직업 특성상 온종일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핸드폰을 붙들고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트레이너가 아닌 '나'는 만난 사람도 없고, 연락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희망이라는 가면 뒤에서 철저하게 혼자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모퉁이에 쓰러지듯 누워 '다녀왔습니다...' 작게 중얼거려 본다. 듣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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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 확인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핸드폰을 보는데, 어김없이 공황이 찾아왔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압박에 응급 구조 전화를 하려 했는데, 사실 구조대원이 출동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힘이 들 때는 '나 힘들다, 외롭다, 고통스럽다'라고 어딘가에라도 털어내는 게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  뉴스 기사에서 보았던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셔서 전화 주셨어요?"


나는 한참을 침묵하다 그냥 더 이상 살아갈 힘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사는 것이 좀 지겹다고.


수화기 너머 그녀는 꽤 긴 시간 동안 나에게 따뜻함을 전달하려 애써주었다. 때로는 조용한 숨소리만으로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듯 다정한 손길로 희망을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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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지겨운 희망 타령..


그러나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유의미한 일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던 마음의 무게로 삶이 짓눌려 사는 것이 버겁고 지겹다고 느낄 때는 그냥 아무나 붙잡고서라도 이야기를 꺼내어 마음의 무게를 덜어 내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덜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마음도 가뿐해지는 날이 오겠지.


브런치에 나의 우울과 불안을 털어놓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나는 그냥 사는 것이 지겹고, 조금 외로울 뿐 죽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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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지언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이 했어.

정말 애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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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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