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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암보다 더 무서운 건,

by 챌린지언 Feb 23. 2025

내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당분간 돈을 못 벌텐데 어떡하지?', '수술비는 얼마나 나오려나?' 하는 식의 돈 걱정뿐이었다. '하다 하다 암까지 걸리는구나. 참 가지가지 한다.' 스스로를 비아냥 거리며, 당장이라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담당 교수님의 말은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빼곡히 차있는 스케줄만 들여다보았다.

'아... 일 해야 하는데...' 중얼거리자, 보다 못한 교수님이 버럭 볼멘소리를 했다.

"이지언 씨. 지금 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 암 환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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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2시간, 1년에 단 3일 (새해 첫날, 추석 당일, 크리스마스)을 제외한 모든 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 외엔 온통 일만 했다. 여행은커녕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를 즐기는 것은, 가난한 내겐 사치스러운 명품가방 같은 거였다.

빈틈없이 빼곡히 차 있는 스케줄을 보면 종종 숨이 막혀오기도 했지만, 가난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도망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며 '워커홀릭'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나의 가난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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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는 암보다 가난이 더 무서워요.'

튀어나오려고 하는 진심을 애써 삼키고, 맡은 일은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교수님이 권유한 날짜보다 두 달을 미루어 수술 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책임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내게 '책임'이란 결국 나의 생계와도 직결되었기에, 수술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놓을 심산이었다.


재채기와 사랑, 가난은 무엇으로도 숨길 수 없다고 하던데, 이렇게 티를 내는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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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두 달의 시간은 별 탈 없이 흘러 수술 당일이 되었다. 수술은 잘 되었고, 초기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지만 양쪽 다리에서 일부 림프절을 제거하고, 자궁도 완전히 절제하는 대수술이었던 터라 6개월 정도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했다.

쉴 수만 있다면 6개월이 대수랴. 1년이든 10년이든 마음껏 쉬겠지만, 내가 처한 현실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으니 가능한 한 빨리 일터로 복귀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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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건강 회복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물만 마셔도 체하기 일쑤였고, 허벅지를 푹푹 찌르는 듯한 통증은 24시간 지속됐다. 호르몬의 변화로 얼굴은 여드름으로 뒤덮인 지 오래다. 무력함을 떨쳐내려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숨이 차올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운 수술 후유증이 생겨났지만, 이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었으니까.


정말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을 보이고 있는 통장 잔고였다. 이 잔인한 현실은 내게 어떻게든 먹고살 돈을 벌어 오라며 재촉했다.


나는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고, 불안은 이런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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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안은 내 세상이 온통 뿌옇고 불투명해지는 날을 유독 좋아한다.

이 녀석은 늘 걱정과 우울, 가난과 함께 무리 지어 다니며 '생각의 꼬리 물기'를 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취미인데, 한 번 마음먹으면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요란을 피우기도 한다.

요즘은 온통 뿌옇고 불투명한 날의 연속이라 불안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평생을 불안과 함께 해왔지만, 이렇게까지 덩치가 커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그 중압감을 밀어내려 애쓰다 모든 기력을 소진한 채, 한심하게 누워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생각의 꼬리 물기'를 하며 불안을 키우는데 동참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다 건강보다 돈이 더 중요한 사람이 돼버린 걸까?

한때는 나도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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