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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종이책이 더 좋습니다.

음악도 스트리밍이 아닌  MP3파일로 소유하는 사람이기에

by 윤지아 Dec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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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종이책이 좋다.

출근길 가방 안에 화장품을 빼고 책 한 권을 쑤셔 넣는다. 부피가 커 휴대하기 힘들더라도 나는 아직 종이책이 더 좋다. 종이책이 왜 좋냐고 하면 이유는 꽤 명확하다. 이제부터 내 머릿속에 넣을 이 무형의 이야기가 실체적으로 내 손아귀에서 묵직하게 느껴진다는 그 점 때문이다. 손아귀에 쥐어진 책은 '자 이제부터 이 무게만큼의 지식과 누군가의 이야기가 네 머릿속에 들어갈 거니까, 기대하라고'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내가 종이책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그 물리적인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수백 페이지로 이루어진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 사각거리는 소리의 촉감이 좋다.

냄새도 물론이다. 책냄새를 맡으러 서점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이지마다 품고 있는 그 향긋하기도 쾌쾌하기도 한 종이향은 코끝에서 닿아 그 문장들과 함께 뇌리에 박힌다.

손가락 끝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쌓여가는 왼쪽 페이지의 그 서서한 쌓임의 묵직함도 좋다. 읽기 시작할 때에는 오른쪽 부분이 훨씬 두꺼워서 손에 쥐고 있기 불편했다가, 서서히 양손이 공평하게 펼쳐지는 상태가 되고, 어느덧 왼쪽이 훨씬 두터워지는 그 과정을 느껴야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읽기를 멈추고 책갈피로 표시할 때에 페이지 사이에 착! 하고 끼워지는 그 느낌도 좋다. 마치 이 책 안에 펼쳐진 우주의 흐름을 잠시 봉인해 놓는 검과 같은 꽂침이다. 특히 나는 책마다 다른 책갈피를 사용하는데, 예쁜 책갈피를 사용해 보고 싶어서라도 반드시 새로운 책에 또 손이 가고야 만다. 책갈피만큼 독서에 좋은 동기부여는 없으리라.


종이책의 또 다른 매력은 마저 읽어야 할 남은 페이지의 정도를 두께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푹 빠져버린 이야기가 서서히 끝을 향해 간다는 것을 직접 두 손의 감촉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긴 이야기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며,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종이책이 가진 친절한 점이다.

 모든 이야기를 마쳤을 때 책갈피를 빼 내고 덮어버리는 그 하드커버의 묵직한 소리가 좋다.

다 읽은 책을 잠시 손아귀에 쥐고, 그 세계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멍하니 그 주인공이 되어있는 상태로 잠시 시간을 보내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난 그 주인공과 작별한다. 그리고 이내 서재의 내 책꽂이에 꽂아 둔다. 책꽂이에는 그렇게 나에게 와 닿았던 다른 세계들이 전부 잠잠히 꽂혀있다. 나는 방금 꽂아둔 책과 더불어 나란히 꽂힌 다른 책들을 그렇게 찬찬히 바라보며 손수 만져본다. 지나간 기억들이 모두 기록되어 착착 정돈된 느낌이다. 그러한 정돈됨은 왠지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종이책은 그렇게 손으로 만져지고 소유할 수 있어서 좋다.

내 작은 서재에 꽂힌 수많은 이야기들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음이 참 좋다.

종이책이 주는 감동은 그 이야기가 끝날 때 끝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책장에 물리적인 소유물로 저장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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