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건 2005년도의 일이었다. 그 시절은 치매에 대해 무지하던 시기였다. 단지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는 것일 뿐, 병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물건을 자주 깜빡한다든지 이미 한 행동을 두 번, 세 번 반복한다든지 하는 본격적인 증세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철부지 고등학생이었다. 할머니의 병이 얼마나 중한지, 엄마가 어떤 고충을 겪고 계신지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한창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대신 5살까지 나를 업어 키웠다. 특별히 나를 예뻐해 준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은근하게 아껴주셨던 것 같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늘 준비되어 있던 간식에서, 민화투 치는 법을 알려주던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성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은은한 사랑이었다.
제일 예쁨 받은 손녀라서, 난 할머니를 잘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의 방 근처를 기웃거리곤 했다. 집에만 머물며 말수 없이 보내는 할머니의 일상은 꽤 무료해 보였다. 성당을 매주 나가긴 했지만 미사만 보고 그 외의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교류하는 동네 지인도 없었다. 방에서 주로 생활하며 티브이를 보거나 화투 떼기, 기도 책 읽기 같은 걸 했다. 일부러 말동무가 되어 드리려 방에 들어가도 딱히 길게 대화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삶은 닫혀있는 상자 같았다. 그런 할머니에게서 이상함을 먼저 느낀 건 엄마였다. 당시 기억을 돌이키며 엄마는 씁쓸하게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양배추를 자꾸 사다 놓는 거야. 어제 샀는데 다음날 또 사 오고 그다음 날도 또 사 오고. 텔레비전에서 하는 건강 프로그램에서 양배추가 몸에 좋다고 하는 걸 보신 모양이야. 냉장고에 자리가 없는데 계속 사 오셔서 처리하는데 애먹었어.”
증상이 심해지면서 양배추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안 보인다 싶으면 엄마를 의심했다. ‘쟤가 훔쳐 갔다.’라고 하시며. 쌈짓돈, 초콜릿, 사탕 같은 물건을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그 사실을 잊고는 엄마를 도둑으로 몰아붙였다. 여기 잘 있다고 확인시켜 드려도 할머니는 알면서 나를 일부러 골탕 먹이는 거라며 역정을 냈다. 도난당하지 않기 위해 더욱 꽁꽁 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나중에는 옷장 깊숙한 곳에 물건을 욱여넣었다. 두꺼운 이불 사이에 초콜릿이 꾸덕꾸덕하게 녹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감추는 장소가 뻔해서 냉큼 찾아내곤 했지만 그럴수록 할머니의 의심은 깊어져만 갔다. 10년 넘게 성실하게 할머니를 모셔온 엄마는 어느새 ‘도둑년’이 되어있었다.
“네가 내 간식 숨겨놨지? 내가 다 알아! 지난번에도 네 짓이었지?”
“어머니! 제가 안 숨겼어요. 뭐 하러 어머님 물건을 가져가겠어요.”
처음에는 할머니의 병증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억울한 마음에 항변했다. 하지만 의심이 단호한 확신으로 변해가면서 엄마는 더 이상 어떤 말도 얹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음에도 엄마는 우리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였다면 매일 울면서, 괴로워하면서 지냈을 텐데 말이다. 할머니를 혼란스럽게 만든 병마는 끊임없이 며느리의 마음에 비수를 날렸다. 날카롭게 날아든 말들에 분명 상처 입었을 텐데, 자존심이란 방패를 들고 꿋꿋하게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딸에게 하소연할 법도 한데 엄마가 기대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조금 더 철들지 못했던 스스로가 야속할 뿐이다. 부엌에 서서 할머니의 식사를 준비하던 체념한 엄마의 얼굴이 이따금 생각난다. 세차게 틀어놓은 수돗물 소리에 나지막이 눈물을 흘려보냈을지 모를 그 뒷모습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