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기억해요, 선배?"
서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묻더니
그의 품에서 벗어나 조심스레 말을 이어간다.
"선배는 기억에 없을지도 몰라요. 그때 저 혼자만 난리였으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잔잔한 아련함이 배어 있다.
금방이라도 눈물로 번질 듯도 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요.
전화를 걸까 말까 수백 번 고민하면서,
마지막 번호 하나를 남겨두고 끊고 또 끊고...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죠."
"왜?"
"선배가 헤어지자고 한 다음이었으니까요.
함박눈은 펑펑 계속 쏟아지는데,
전화기 앞에서 망설이기만 할 뿐
절대 끝까지 번호를 다 누르지는 못했죠."
"그냥 하지. 그럼 우리 운명이 어찌 바뀌었을지 몰라."
"그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문득 선배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미친 듯 그리움이 몰려왔죠.
그러나 갈등하는 나를 친구들도 말렸어요.
절대 전화 걸지 말라며 이리저리 끌고 다녔죠.
선배 생각에서 헤어나라고. 끝난 거라고."
그렇게 세월은 갔고 결국 각자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들은 담담하게 풀어간다.
그날 전화를 못 건 것을 매우 후회하며
서연은 주장한다.
"할까 말까 망설여지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사랑은 확실하게 표현되어야만 한다고 서연은 강조한다.
그때 지수 남편이 자기 친구에게 말을 꺼내며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끼어든다.
"아니, 그렇게 좋아하는데 왜 이별 통보를 했어?"
남편의 친구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사랑한다면서 한사코 몸을 거부하는 그녀를 난 이해할 수 없었지."
서연이 그의 팔을 끌어당겨 자기 어깨에 더욱 깊이 감으며 말을 한다.
"사랑한다면서 결혼 때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이이를 전 이해할 수 없었죠."
지수 남편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 무슨 순정만화도 아니고,
결혼 전에 몸을 달라, 못 준다로 싸우다 헤어지냐?
너무 유치하다."
지수 남편의 말에 서연이 쓸쓸히 웃으며 답한다.
"글쎄 말에요. 그땐 그게 왜 그리 크게 생각되었는지 몰라요."
지수 남편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서연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한다.
"내 친구 녀석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은 겁니다."
그 말에 서연은 말이 없더니 한참 후에 조용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런가요... "
(사진: 꽃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