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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24. 2023

쓰는 마음, 쓰는 사람의 마음



종종 생각합니다.

쓰고 싶은 글과 읽기 좋은 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독자가 듣고 싶어 할 말.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어떤 글을 쓰는 게 맞을까.

어떤 글로 다가가야 할까.


브런치의 글은,

혹은 브런치가 아니더라도 공개적인 글은 분명, 일기는 아니니까

주제에서도 형식에서도 어느 정도 정제되고 다듬고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과연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도 읽고 싶어 할까.라는 의문이 가끔 듭니다.

읽는 이가 있어야 쓰는 이가 작가가 되는 건데

아무도 듣지 않을 이야기를, 혼자 주절거리는 것만큼 힘 빠지는 일은 없으니까요...


전에 제 다른 글에서, 그리고 제 프로필에서도 저는 공공연하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빛나는 것들은 다른 분들이 쓰세요. 빛나는 당신처럼 빛나는 이야기를 써서 그늘 위로 나누어 주세요.

저는 반짝이지 않는 것들을 쓰려합니다. 빛나야 하고 반짝여야 하고 파이팅 해야 하고 힘내야 하고 잘 지내야 하고 버텨야 하고 견뎌야 하고 그런 거. 꼭 그래야 할까 싶어서요. 그건 다른 분들이 해도 될 거 같아서요.

빛을 잃었을 때도 불투명할 때도 싸움에서 졌을 때도 힘이 없을 때도 잘 지내지 못했을 때도 무너질 때도 포기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나였으니까. 나는 그런 것을 쓰겠습니다.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써서 읽는 이가 애꿎게 기운이 빠지고 힘을 잃어버린다면

차라리 그들이 읽고 밝고 따스해지고 웃게 되고 해맑아지는 그런 글을 쓰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소란스럽게 만들지 않을, 헷갈리게 만들지 않을, 대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할 만한

그런 글을 쓰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아직 제대로 꺼내어 보지도 못했지만

꺼내어 보려면 더 깊은 용기도 필요할 테지만

가끔씩 흔들흔들거리는 글들을 살짝 흘리고 나면

아... 내가 뭐 하고 있지... 왠 주책이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숨어버리는 게 낫겠다. 숨고 싶다. 그런 생각두요.





현실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어떤 이는 그러더군요.




독자들은 따뜻한 글을 좋아하지.

슬픈 얘기, 어두운 얘기는 힘들어서 싫어해.

tv도 마찬가지야.

아픈 청춘의 이야기는 마니아는 있어도 시청률이 나오기 힘들잖아.

영화도 그렇고.

다크하고 딥한 이야기는 대중은 외면해.

상은 받지. 어디 어디서 상은 받아. 그리고 마니아만 존재해.


독자나 청자나 현실적인 거, 사실적인 거는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아.

이미 현실이 고달프니까. 굳이 그걸 미디어로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거야.

대중이 좋아하는 건 판타지야. 환상.

마블이 그렇게 오래도록 인기를 끄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




그렇게 구체적인 몇몇 드라마 제목이나 영화 제목, 혹은 영화감독을 예로 들며 말했습니다.

저 또한 전적으로 인정하고 동감하는 내용이었구요.




그런데,

작가가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고 눈치 보면

아무것도 못 써.

'작가'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써야 해.


논리? 관습? 편견? 도덕? 이해? 정답? 언어?

그런 거 무시하고 써야 해. 무조건 써야 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해.

그리고 확신해야 해. 쓰고 있는 자신을.


그래야 '작가'야.




내 글이 브런치에만 한정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 이런 고민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혼자 써나가는 글이라면 제 멋대로 써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곳은 소통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곳이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제가 얻는 에너지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왕이면 많은 이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부인할 수 없는 마음도 있고 말이죠.


글에서는 보통 쓰는 사람의 향기가 오롯이 나는데

내 글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향이 나기는 나고 있을까?

결이 다른 글들로 양다리를 걸치면

그 향기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제 갈길을 찾아 잘 퍼져나가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좀 하게 되네요.


사실,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서두를 시작 하다 보니 이런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전에 저는 '글쓰기는 부끄러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에게 부끄러움을 견디는 일은

그저 '사는 일'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는 일'을 그저 글 속에 드러내고 있을 뿐.

제대로 잘 살고 있다면 많이 부끄럽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죠.









정답은 없습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정답은 없죠.

내 안에, 내가 만드는, 내가 정해 놓은 정답만이 존재하겠죠.


이 글을 쓰기 전 어제도, 쓰고 있는 오늘도, 쓰고 날 내일도

저는 계속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미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어차피 멈추지는 못할 고민일 것입니다.


다만, 그 고민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기를.

그 고민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놓지는 않기를.

그리고 그 고민 사이사이 내가, 그리고 내 삶이, 숨 쉴 수 있기를.

하고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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