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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특별한 기계이고, 지능은 창발적 현상이다

지식 덕후의 탄생

by 안영회 습작

감명[1] 깊게 읽은 <듀얼 브레인>의 마지막 부분에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습니다.

물과 미량의 화학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은 규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고분자 화합물이 우리처럼 생각하는 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감탄한 내용에 대해서 한발 더 들어가서 따져 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원칙 1. 작업할 때 항상 AI를 초대한다

먼저 퍼플렉시티에게 의견을 묻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듀얼 브레인>에서 배운 <인공지능을 공동지능으로 길들이는 네 가지 원칙>이 조금씩 체화되는 것 같습니다. 결과 중에 먼저 눈에 띈 것은 '구체성과 낯설게 하기 효과'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인간은 물과 화학 물질로 이루어졌다"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사실이지만 식상합니다. 그러나 인간과 ‘우리’(지적 존재)를 원소 단위로 환원하여 서술하면, 친숙했던 존재(인간, 인공지능)가 갑자기 낯설게 보이죠.

미량이라고 퉁쳤지만 그러기엔 탄소는 10%를 넘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2]


생명은 기계이고, 인간은 특별한 기계다

이어서 다음 내용을 읽으면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느낌과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인간과 기계 모두, 원자 수준에서 보면 특별한 게 없다. 다른 원소 조합, 다른 화학적 구조물이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의식, 사고, 지성 같은 것도 단지 복잡한 물질적 조합에서 emergent(창발)되는 현상일 뿐이라는 과학적·철학적 함의를 전달하는 문장입니다.

바로 작년에 썼던 <사람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을 위한 기술>에서 김상욱 박사님이 강조했던 충격적 문구죠.

생명은 기계이고, 인간은 특별한 기계다

도올 선생이 이에 거부감을 나타내셨지만, 어쩌면 <인공지능이라는 허구적 믿음을 이식받은 놀라운 기계>와 함께 살 우리들은 그 거부감을 극복해야 할 듯합니다. 어쩌면 이미 거부감 따위는 없는 분도 있겠죠.


인간은 고분자 화합물이 아닌가요?

그리고 종종 듣지만 뜻은 잘 몰랐던 '고분자 화합물'에 대해 묻습니다.

고분자 화합물이란 일반적으로 분자량이 10,000 이상인 화합물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물질은 같은 단위체(모노머)가 수백, 수천 번 반복되어 연결된 커다란 사슬 구조를 갖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분자 화합물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 고분자(예: 단백질, 녹말, DNA 등)와 인공적으로 합성한 합성 고분자(예: 폴리에틸렌, 나일론, PVC 등)가 포함됩니다.

그리고, 영어로는 Polymer라고 부르는 듯한데, 크롬 번역하면 Polymer가 '중합체'라고도 하고, '고분자'라고도 번역되는 것을 보면 일대일대응이 어려운 단어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김상욱 박사님에게 배운 대로 이렇게 묻습니다.

인간은 고분자 화합물이 아닌가요?

그랬더니 퍼플렉시티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하죠.

인간은 다수의 고분자 화합물과 기타 분자들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만들어진 생명체입니다. 따라서 고분자 화합물은 인간 구성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입니다.


지능은 화합물이 만들어 낸 창발적 현상이다

질문 공세는 여기서 멈추기로 합니다. 묻고 따지는 중에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매력적인 문구의 요체가 무엇인가인데요. 널리 알려진 것을 덜 알려진 다른 특징으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친구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것처럼요. 두 번째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풀이입니다.

의식, 사고, 지성 같은 것도 단지 복잡한 물질적 조합에서 emergent(창발)되는 현상일 뿐이라는 과학적·철학적 함의를 전달하는 문장입니다.

주장을 펼칠 때 본론을 그대로 말하는 것보다 할 수 있다면 이야기 속에서 그걸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이야기꾼(혹은 작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석

[1] 문득 '감명 깊게'란 표현이 적절한가 의심이 들어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느라 사전을 찾습니다.

[2] 첫 번째 그림은 퍼플렉시티가 그린 것이고, 두 번째 그림의 출처는 '나우뉴스'입니다.


지난 지식 덕후의 탄생 연재

(60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0. 몸으로 체득하는 지식만 기억이 되어 작동한다

61. Time Horizon은 시간지평인가 시간적 범위인가?

62. 미디어 문해력, 협상론적 세계관 그리고 문화의 힘

63. 적대적 트리거와 충조평판 그리고 감정의 민첩성

64. 기억의 3 계층 그리고 점진주의와 프레임 문제의 관련성

65. 인공지능으로 구축하는 월드 모델과 들쭉날쭉함의 원인

66. AI 에이전트의 보상과 가치 그리고 RLHF

67. Validation 번역은 검증이 아닌 타당성으로 하자

68. '복사-붙여 넣기' 패턴과 레거시 코드의 공통점

69. LLM 벤치마크의 세 가지 평가 기준

70. 지식의 체화는 무의식적 유능을 쌓는 일입니다

71. 찰라살이에서 두 가지 나로, 다시 느슨한 결합으로

72. 인터페이스로 등장한 자연어와 일관성 기술의 등장

73. 개발 조직에도 정의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74. 멀티모달 토큰화에 대해 가볍게 듣기

75. 콘텐츠를 사료로 제공하는 비즈니스와 습관을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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