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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Jul 27. 2023

파도와 합을 맞춰

첫 해양실습

"선생님~도와주세요~~"


왼쪽 시야에서는  내 버디(2인 1조의 개념으로 일종의 짝지)였던 C가 파도에 휩쓸려 소리치고 있었다.

오른쪽에서는 물속에서 사진 찍어 주시던 여자선생님께서 B를 잡아주시다가 같이 뒹굴고 있다.

앞쪽에서는 제일 나이 많은 A를 남자선생님께서 잡아주시며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데 일어나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다들 바빠 보인다.

나도 파도에 두어 번 뒹굴고 나니 너무 아프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파도를 느껴본다.

허리에 6킬로짜리 웨이트를 달고 있고, 등에는 족히 20킬로 되는 실린더(공기통)를 메고 있다.

바다는 염분이 있어 담수보다는 부력이 크게 작용을 한다. 그래서 웨이트라고 하는 납덩어리를 허리에 차서 가라앉게 한다.

물안에서는 부력이 작용해서 그 무게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부력이 작용하지 않는 해안가 파도가 치는 곳에서는 온전히 중력만 작용했을 터, 실린더와 웨이트를 합친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래로 강하게 작용하는 중력으로 좀처럼 일어서기가 힘들다.


파도에 쓸려나갈 때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주어도 누군가 아래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도가 밀려들어올 때는 맞서려는 나를 위에서 덮쳐서 중심을 잃고 구르게 한다.

자갈로 되어있는 해안가라 자갈과 한 몸이 되어 구르는 듯했다. 나중에 슈트를 벗어보니 팔, 다리 곳곳에 멍이 었다.

파도에, 자갈에 맞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던 것이다.


몇 번을 구르다가 파도를 이기려 하지 않고 힘을 뺐다.

가만히  중력이 작용하는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렇게 파도에 몸을 맡기듯  쓸려갔다가 밀려갔다가를 반복한 후  그 리듬을 익혀본다.

파도가 밀려들어올 때 이때다, 밀어주는 그 힘을 이용해서 일어서서 힘껏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다리에 힘이 빠지면  다시 쓸려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온 힘을 모아 일어섰다.


겨우 파도에서 빠져나온 후 자갈마당에 앉아 있으니

A를 도와준 후  C에게로 향하던 남자 선생님이 나를 보시곤 자 잘 나오셨네요~하신다.

'선생님~도 죽을뻔했구요!'


C도 남자 선생님의 도움으로 파도에서 빠져나오고

B도 여자 선생님과 함께 파도를 헤치고 나와 다들 무거웠던 장비부터 풀었다.


물속에서는 공기를 공급해 주고, 상승과 하강을 조절해 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장비들이었다. 그 무게는 부력으로 인해 거의 느낄 수가 없었으며, 물속에서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바다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큰 무게감으로 느껴진 것이 바로 실린더(공기통)가 달린 장비였다.

실린더@by pixabay


한때는 나에게 너무 중요했던 문제도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경중이 달라지는 것처럼.

물속에서는 제일 소중했던 실린더가 파도에서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높은 파고의 물살에 휩쓸리더라도,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 속에서  가만히 그 흐름에 맞춰 숨을 고르다 보면 다시 떠오를 수  있음을 바닷속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수영장 6m 풀 속에서의 교육 후 처음 나온 바다에서의 실습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비록 스쿠버 초보자에게는 격했던  파도가 쉽게 열리지 않는 문 같아서 당황했지만 다들 무사히 통과했다.


장갑까지 낀 손이었지만 자갈 속에서  얼마나 뒹굴었는지 손가락 피부가 까졌다. 작은 훈장처럼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며 잘했다. 해냈다. 이렇게 되뇌어본다.




첫 해양실습의 바다는 태종대의 감지해변이었다. 자갈로 된 해변이라 파도소리에  자갈이 구르는 소리가 화음으로 어우러져 바다로 입수하기 전의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가만히 눈감고 들으면 소리가 동글동글 부서졌다가 모아진다.


그 소리가 7미터 아래  물속에서는 천둥소리처럼 들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파도를 등지고 입수했다.

입수한 후 첫 하강을 위해 수면에서 동동 떠있었던 그 설렘을 다시 떠올려본다.

첫번째 바다_ 태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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