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영 발차기와 조급함
수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네 달이 되어간다. 사실 수영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다. 아파트 1층 출입구에 붙어 있던 수영장 광고가 내 눈길을 끌었고, 그저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그 순간이 내 삶의 정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어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연처럼 다가온 그 광고에 묘한 감사함마저 느껴진다.
그동안 비교적 순조롭게 배워왔던 수영이었지만, 평영 발차기에서 난 벽에 부딪혔다. 강사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발을 차기 전, 엉덩이까지 천천히 끌어오면서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발 안쪽을 이용해 강하게 차야 합니다. 차는 순간 엉덩이가 살짝 떠오르는 것이 좋은데, 이를 위해 약간 아래 방향으로 차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덧붙여 그는 말했다. “평영 발차기는 단순히 발을 차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이 모여지면서 밀려난 물살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겁니다. 발목을 이용해 물을 ‘쭉 짜준다’는 느낌을 가져보세요.”
그러나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덩치 큰 남자 회원도, 가녀린 여성 회원도 나보다 훨씬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 역시 강사의 말대로 물을 짜주듯 발차기를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강사는 웃으며 말했다. “평영은 시간이 좀 걸려요.” 다른 영법은 비교적 빠르게 몸에 익지만, 평영은 초반에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호소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물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음 날 자유수영 시간, 뜻밖의 작은 사건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스타트라인에서 숨을 고르던 내게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총각, 이것 좀 고쳐줘요. 물이 새 들어오네.”
나는 순간 속으로 웃었다. 수경 끈을 조여 달라는 부탁이었는데, 그녀는 덧붙였다. “눈이 나빠서 보이질 않네.” 물속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타이트한 수영복, 눈을 가리는 수경과 머리를 가리는 수영모, 그리고 물속에서의 활기찬 모습이 모두를 젊게 보이게 한다. 나는 조심스레 수경을 고쳐 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 전 말투와 전혀 다른 아주 공손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아마도 내 얼굴을 자세히 본 후, ‘총각’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총각'이라는 말은 묘했다. 젊게 봐주니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씁쓸하기도 했다.
다시 돌아온 평영 발차기는 여전히 나를 제자리로 붙잡아 두었다. 속에서 조급함이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이제 막 시작했으니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고 여유롭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시간이 꽤 흘렀는데, 이 정도면 좀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남들만큼 안 될까?’라는 조급한 마음이 올라왔다. 카프카는 말했다. “조급함은 죄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조급함을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뿐이다.”라고 하며, 현재에 집중하라고 했다. 세네카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상황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인정할 때, 조급함은 사라진다. 내 평영 발차기도 그 흐름 속에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될 것이다.
강습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오는 회원은 나와 두 명의 여성회원이다. 무엇을 성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비결은 꾸준함이다. 사람들은 동기부여 강의를 듣고, 재미를 찾아가며 지속하려 하지만, 결국 꾸준함의 본질은 단순하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지 않을 때, 지루해 질 때, 더욱 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뇌를 가스라이팅 시키며 그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해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누구나 타는 자전거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무척 어렵듯이 말이다.
여전히 평영 발차기는 내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답답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대나무는 5년 동안 땅속에서 뿌리를 키운 뒤, 몇 달 만에 폭발적으로 자란다. 처음 5년 동안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없을 뿐, 그 시간 동안 대나무 씨앗은 땅속에서는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 평영 발차기도 어쩌면 대나무 같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물속에서 조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물을 조용히 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