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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소진되어야 강해진다

어려움에 직면해야만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by 정강민 Mar 01. 2025

정오의 자유수영 시간. 최상급 레인에서 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물살을 가르며 오가던 두 사람은 서로가 수영을 방해했다며 안전요원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안전요원과도 언성을 높였고, 아주머니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지만, 수영장의 공기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정확한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장년층 레인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굳이 감정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만히 바라보았고,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조용히 다른 레인으로 옮겼다.     


사람은 상대의 표정, 말투, 심지어 숨소리만으로도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감지한다. 작은 오해는 평소 같으면 넘길 수도 있지만, 긴장된 분위기에서는 쉽게 갈등으로 번진다. 마치 물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가 연속된 파문을 일으키듯이.     


샤워실에서 또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옆에 있던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툭 말을 걸었다. 

“아직 멀었어? 1분, 아니 30초면 돼.”     

그는 탈수기를 오래 돌릴 필요가 없다며 내게 조언했다. 그런데 문득, 왜 반말을 하지? 내가 그렇게 어려 보이나?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약 내가 덩치가 크거나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까? 순간 "왜 반말하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괜한 신경전을 벌이기 싫어 참았다. 대신 담담하게 “탈수기 돌린 지 30초 정도 됐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아마도 내 반응에서 미묘한 반감을 감지했을 것이다. 이후엔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수영장에서 그를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스타트라인에서 기다렸다. 내가 그를 바라볼 때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바꾸고 싶어 먼저 말을 걸었다. 일종에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왜 이렇게 체력이 좋으세요?”

그는 68세라고 했다. 나는 놀랐고, 그제야 그의 반말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오랜 세월을 거쳐온 사람이니 후배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평영은 발차기가 70%다. 다른 영법은 손동작이 70% 이상이다. 그래서 평영은 손동작보다 발동작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내 평영은 원하는 속도로 나아가지 않는다. 강사는 손동작 후 머리를 먼저 물에 넣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영시간이 어느 정도 누적되면서 강사의 말이 더 잘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든 일정 이상의 노력과 시간이 투입되면 결국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유튜브에는 수영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많다. 하지만 나는 체력을 덜 쓰는 법보다, 체력을 끝까지 소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수영을 운동으로 생각하기에 체력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운동이 된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지쳐야만 더욱 강해지는 법이니까. 수영 후엔 온몸이 녹초가 되지만, 다음 날이면 더 강해진 내 몸과 정신을 느낀다. 이 원리는 삶에도 적용된다. 체력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성장으로 이어진다. 물론 쉽지 않다. 힘든 것보다는 편하고 싶은 욕심이 늘 이긴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역경과 어려움을 통해 인간이 단련된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어려움은 강한 사람을 단련시킨다.”라고 했고, 에픽테토스는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갈등, 오해, 불편함 또한 정신적 단련의 일부다. 수영장에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들도 결국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장애물이 곧 길이 된다.” 며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고 강조한다. 마치 수영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샤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때 느끼는 만족감처럼. 완전히 소진된 후의 충만한 기분이야말로, 우리가 더욱 강해진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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