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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Feb 06. 2020

제3부 3화 안다는 것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자존감. 그놈의 자존감. 각종 미디어에서도 자존감을 중요하게 다루며 연일 자존감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땐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부터 배워야 했는데 이제는 너무도 만연하여 자존감이라는 단어에도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한다. 

 일각에서는 낮은 자존감의 이유나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해 과거를 자꾸 파헤치며 문제의 근원지에 접근하려는 것을 경계하라고 권고한다. 




 나는 자주 내 오른쪽 손등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곤 했다. 나는 그 멍자국이 신기했다. 손등이라는 위치에 멍이 들기 쉽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멍이 있어서였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면서 주방에 작게 나있는 창문을 열려고 했다. 창문은 습기 때문에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열려고 힘을 주다가 주방 찬장에 손등을 부딪히고 말았다. '이놈의 창문이 또!'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손등에 들어있던 멍자국이 떠올랐다. 

 내 손등에 늘 멍이 들었던 이유는 창문을 열다가 매번 찬장에 부딪힌 결과였다.


 이 사소한 에피소드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멍자국의 원인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뒤로 내 손등의 멍은 영영 사라졌다. 여전히 창문을 한 번에 열지 못하더라도 내가 찬장에 부딪치는 일은 없어졌다. 

 <내 힘이 창문을 한 번에 열기에 부족하다. 설거지 중에는 습도가 높아 창문이 더 열리지 않는다. 창틀에 가한 내 힘이 빗나가 찬장에 부딪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이 사실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창문을 열 때 늘 조심하게 됐다.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제2부 2화 동기부여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은 알게 되면 절대로 이전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는다. 자신의 부정적인 행동에 불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인간은 변화를 갖는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위의 예는 사소한 습관일 뿐임에도 몇십 번이나 반복된 뒤에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었다. 하물며 몇 년에서 몇십 년에 걸쳐서 진행된 증상들과 그를 발발하는 내 무의식의 비밀들은 얼마나 더 깊고 거대하겠는가.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그 과정은 대체로 괴로운 일일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내 과거에 함몰되는 것이다. 내 그림자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뺏기는 일이다. 내 과거의 트라우마가 클수록 이런 위험 역시 증가한다. 제3부 1화에서 언급한 슬픔의 단계는 이런 알아감의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알게 된 나 자신을 마주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나 자신은 물론 심지어 세상 모든 것에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이 과정을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전문가와 함께 하는 것이다. 전문 상담사는, 회피하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근육이 자랐는지를 탐색하며 직면하기 적절한 때를 기다릴 것이다. 직면이 한순간에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기에 직면하고 회피하고 다시 직면하고 지지받고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함께 해줄 자원을 갖게 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그런 유능한 상담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 (상담사와 내담자의 궁합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쉬운 일은 아니며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나 역시 상담 장면에서 제2차 3차 상처를 입은 경우가 왕왕 있다. 심리학 공부를 하며 혼자서 나를 탐색해온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서 나는 많이 돌아왔고 그림자에 함몰되기도 했으며 자기 연민과 비관에 빠져 삶을 등지려고 했던 나날도 숱했다. 


 그럼에도 나는 과거에서 눈 돌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할 수 있다면 전문가와 함께, 현실적으로 그런 여건이 어렵다면 스스로라도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려는 자세를 갖길 권유한다. 그것이 삶을 나무가 아닌 숲으로 보았을 때 더 도움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지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걸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을 알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며 그런 당신이 깊은 사색 없이 그저 나이만 먹는 사람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곤 했다. 


 안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힘은 위대하다. 심지어 그 과정이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안다는 것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수천 번 다시 좌절할 것이고 수만 번 부정과 분노, 체념을 오갈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알고 있다.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그 좌절 역시 나아감의 하나라는 것을.


 빠른 결과를 보기 위한 해결 중심의 상담, 약물과 내과적 치료들은 긴급한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치료가 장기화되어도 우울감이나 기타 신경증적 증상들이 나아지는 걸 좀처럼 체감하기 힘든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돌봐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흐르는 물은 자정작용을 갖는다. 인간 역시 그런 자정작용의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 과거에서 눈 돌린다면 흐르지 않는 고인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당장 눈 앞의 문제행동이 사라졌다고 해도 미쳐 다 해결되지 못한 내 마음의 상처들은 또 다른 문제행동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A라는 문제에서 B라는 문제로 옮겨간 것뿐이다. 물론 A라는 문제에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B라는 대안행동으로의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가 되었든 내 마음의 근육이 다시 느슨해지고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다면 새로운 C.D.E라는 이름의 문제들이 발현될 수 있다. 곪은 시간이 길 수록 새로 마주하는 문제들의 크기 역시 더 거대해질 것이다. 

 

 과거에 치우쳐 지나간 트라우마의 늪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과거의 상처를 외면한다면 트라우마는 절대 지나간 일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현실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내가 내 상처를 돌보며 나를 진심 다해 수용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변화를 넘어 성장하는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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