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퍼슨스 편집장의 회고찰 ep.3
글쓰기가 무서울 때가 있다. 독자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 위한 목적, 소설처럼 재미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 등 글쓰기에 다양한 목적이 있으나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한다는 글쓰기의 기본 목적은 통용된다. 고민이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논문을 쓰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객관적인 글쓰기가 가능한가. 심지어 논문을 쓸 때조차 저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경우도 파다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동의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더 나아가 그런 글을 지향해야 하는지와 같은 철학적인 고민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글을 쓰기 직전 이렇게 꼬리를 무는 질문이 문득문득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보통 결론은 '글쓰기는 주관의 표출이다.'로 귀결된다. 수학에서 명제를 증명하고 과학에서 가설을 이론으로 검증하듯 반박 불가능한 글쓰기는 소수의 사례에 국한된다는 결론이다. 많은 수의 글이 저자의 주관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일견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백번 양보해서 적어도 필자가 쓴 글은 주관적이다. 에세이, 일기, 사업계획서, 이메일, 보고서, 기사 심지어 르포의 형식에서도 필자의 주관을 100% 걷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주관을 기반으로 글을 썼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서두가 길었다. '더퍼슨스' 시리즈의 서문 역할을 하는 <Interviewer's Note>를 작성할 때마다 드는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인터뷰 모음집'이라는 더퍼슨스 형태의 특성상 한 권의 책 안에는 열 명 내외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주관적으로' 공유한다. 우선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주관성'이 곧 '오류'라는 섣부른 일반화다. 개인 한 명의 경험에만 갇혀 독단적인 논리를 펼친다면 문제가 되지만 이를 곧 '모든 이들의 주관적인 의견이나 생각이 오류다'라는 일반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다만 그럼에도 각 인터뷰이의 의견은 주관성의 한계에 봉착한다. 이 점을 구조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한 분야 안에 속한 여러 명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것이기도 하다.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어도 의견의 쏠림 현상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Interviewer's Note>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여느 책의 서문이 그러하듯 더퍼슨스에게 이 글은 독자가 이 책을 처음 열었을 때 본분의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앞으로 읽을 본문에서 어떤 점을 눈여겨보면 좋을지 안내한다. 본 운동을 하기 전 준비운동이고 가교(架橋)이며 디딤돌이다.
다만 뻔한 글로 자리만 차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치 회사 회의실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기획을 거쳐 하나의 상품이 제조되었는지 프레젠테이션 하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글로 만들기 싫었다. 공식처럼 정해진 형식의 획일화된 서문도 피하고 싶었다. 책을 저술하게 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책의 목차는 어떻게 구성했으며 어떤 논리의 흐름에 따라 배치했는지 나열하고 출판사 사장님과 본인의 가족들에게 바치는 감사 인사까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출판사가 직접' 기획하고 출간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라는 더퍼슨스의 특성을 온전히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더퍼슨스의 편집장으로서 택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주관적 경험'으로 글을 쓰는 방식이었다.
앞서 기술했듯 더퍼슨스는 여러 전문자들을 인터뷰해 하나의 직업을 탐구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다. 인터뷰라는 대화 형식을 취했음에도 특정 분야의 전문 용어나 난해한 개념이 등장할 수 있다. 인터뷰이와의 추가적인 대화나 각주(脚註) 등을 통해 이 장벽을 해소하려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려운 개념을 그대로 안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화라는 형태로 심리적 장벽을 완화하고 있지만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논문처럼 객관적이고 오류 없이 전문적으로 서문을 구성하면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마치 위키피디아에 검색한 결과처럼 몇 번을 읽어도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만큼 의미 없는 글을 그저 눈으로 따라가고만 있을 것이다. 마치 논문의 초록(Abstract)을 읽는 것처럼. 매일 수편의 논문을 읽어야 하는 학자만 읽는 책이 아닌 이상 이러한 글은 독자들에게 '나를 읽지 말아 주세요.'라고 외치는 글일 뿐이다. 공식과 같은 뻔한 구조의 서문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짐작건대 이와 같은 관행 덕분에 책의 서문을 무시하고 본문으로 건너뛰는 독자가 그렇지 않은 독자보다 큰 비율로 많을 것이다.
더퍼슨스의 <Interviewer's Note>는 전자의 경우에 속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고유한 내용이어야 했고, 고유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아닌 어느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편집자 개인의 주관과 경험이 곧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관성을 통해 독자들이 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뿐더러 글로 느낄 수 없는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 편집 과정에서 다시금 발견한 주옥같은 인터뷰 내용들을 격 없이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지금껏 발간된 더퍼슨스 시리즈 모두 <Interviewer's Note>를 읽어보면 모두 편집장 본인의 개인적 경험이나 편집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공유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쓴 글이 지닌 한계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와 같은 방향성을 택한 것에 후회가 없다.
글쓰기는 여전히 무섭다. 다만 그 무서움이 정도의 차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말로 안 되는 논리를 억지로 고집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무기(武器) 같은 글을 피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필자가 쓰는 <Interviewer's Note>가 더퍼슨스를 읽는 독자들이 인터뷰이와의 대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인터뷰 현장감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글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도 <Interviewer's Note>는 누가 쓰더라도 주관적인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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