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치이익~푸우"
부엌에서 커피포트 물 끓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남편의 괴성이 부엌에 울러 퍼진다.
"에엥? 이게 뭐야~~~"
커피 선반을 열어봤음에 틀림없다.
아침에 내가 커피 선반에 요망한(?) 짓을 해놓았으니 말이다.
커피 선반에 나눠놓은 초코 라테 초코 라테 스틱을 엄마, 아빠, 딸 이렇게 나눠놓았다. 이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다. 커피광인 남편이 하루에도 원두커피를 서너 잔씩 내려 마시고도 모자라, 나의 애정템 초코 라테를 '아낌없이' 쑹쑹 타마신다. 선반에 눈에 띄게 줄어드는 라테를 불안하게 바라보다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내 초코 라테, 남편이 다 먹을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내 초코 라테, 남편이 다 먹을까 봐. 이젠 먹는 것에도 집착하는 민망한 사람 될까 봐.
단 것을 멀리 해야지 하는 마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요즘 '이디아 비니스트 초콜릿 칩 라테'라는 이름도 긴 초코 라테에 빠졌다. 매일 하나씩 꺼내 뜨거운 물에 타마신다. 카페인 섭취하면 100% 못 잔다. 그래도 맛있으니 그냥 마시고, 잠 안 오면 안 잔다. 달달함의 유혹은 그만큼 크다.
온도와 물의 양을 잘 맞춰야 한다. 온도가 조금만 낮아도, 물이 조금만 많아도 맛이 없다. 무엇보다 라테를 마시는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 방해받지 않을 7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
"엄마~~~~~~나, 물 좀 떠다 주고, 커튼도 좀 쳐주고."
발가락 수술로 목발 신세인 딸내미가 나를 부르지 않을 시간.
"먼 길 떠나자."
벌컥 문 열고 산책 가자고 쳐들어오는 남편의 방해도 피할 수 있는 시간.
"득득! 득득!"
우리 집 댕댕이가 엄마 혼자 뭐 맛난 거 먹나 궁금해하며 문을 벅벅 긁어대지 않을 시간.
택배 띵동 소리도, 긴 통화를 요하는 핸드폰 벨소리도 울리지 않을 딱 7분의 시간.
라테 한 잔의 행복 바로 이때다 싶은 시간에 머그잔에 라테를 한 잔 탄다. 소나무 보이는 창가에 딱 붙어, 그 뜨거움을 달달함을 한 모금씩 음미하며 마신다. 마시는 모금마다 온도가 변하는 걸 아쉬워하며, 중간중간 티스푼으로 바닥에 남아있는 진한 초콜릿을 긁어먹는다. 마지막엔 티스푼에 붙은 초콜릿까지 깔끔하게 핥아먹으면 행복한 라테 마시는 시간은 끝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초코 라테일까? 달달하고 따뜻한 느낌일까? 나만의 평온한 시간일까?
식탐도 별로 없고 과체중 인적은 평생 없었던 나에겐 초코 라테 집착은 나도 놀랄만한 사건이다. 커피 선반에 내 몫의 라테를 챙겨 놓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무화과가 잔뜩 열린 나무를 발견한 석기시대 여성을 떠올려보자.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행동은 그 자리에서 최대한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 지역에 사는 개코원숭이 무리가 모두 따먹기 전에 말이다. 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먹는 것에 대한 집착과 만족을 모르는 식욕은 한때는 생존의 자질이었다. 음식을 향한 무한한 애정만이 시련의 시기를 이겨나가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식욕은 지금처럼 음식이 풍부한 세상을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다.
'남편이 내 초코 라테까지 모두 다 쓸어가기 전에 나도 최대한 빨리 하루에 5잔씩 먹어치워야 하지 않을까?' 게걸스러운 원시시대 유전자가 나에게 속삭인다.
남편이 내 표정에서 뭔가 자신에게 불리한 전략이라도 읽었던지, 대뜸 이렇게 말한다.
"나도 자기 몰래 두 통 주문해서, 내 방에 숨겨놓고 혼자 먹을까 보다."
겨우 초코 라테 스틱 가지고 부부가 이런 민망한 릴레이 짓을 하고 있다니…. 딸내미가 눈치 채진 말아야 할텐데…. 이 아름다운 봄날, 난 별 걱정이 다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