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윤희야.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걸 뻔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줬으면 좋겠어.
난 여전히 너의 꿈을 꾸고, 노래를 들을 땐 너를 대입하고는 해. 그리고 네 흔적을 자주 들여다봐. 짧고 굵은 모양의 손가락을 가진 사람을 보면 너인 줄 착각할 정도야. 단언컨대, 앞으로도 너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정수리를 파먹으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 너는 끝까지 믿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 그렇겠지. 넌 간절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난 아니었어. 변명처럼 들리더라도 어쩔 수 없어.
내 정수리에 처음으로 탈모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난 평범하게 살 수 없었거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차라리 어떤 사건이나 업보라거나 다른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매번 이런 종류의 불행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곤 하고, 내 정수리 역시 그중 하나였을 뿐이야. 머리의 가장 꼭대기가 새하얗게 드러나고 두피의 모공 하나하나가 바람에 스칠 때 난 매번 소름이 돋았어. 정말 징그럽지 않니? 인간의 가장 맨 꼭대기에 각자만의 모양을 가진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모자를 쓰고 다녀야만 했고, 누군가 혹시라도 내 정수리를 볼까 봐 어딘가에 앉거나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고. 매일 아침거울을 보며 정수리 모발의 개수를 세느라 몇 시간을 허비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관찰하고 수첩에 기록해 둘 정도였어. 아무리 정수리에 좋은 음식을 먹어도, 치료를 받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더는 내 삶에 기대가 되지 않더라. 남은 한평생을 이렇게 훤한 정수리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니. 그야말로 불행한 삶이잖아.
이 정도 솔직하면, 내가 너를 피해 다녔던 이유를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그날 밤, 펑펑 울며 정수리 탈모를 고백하던 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와 함께 그런 나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지. 아니, 그전에 정수리 탈모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먼저 했었던 것 같기도 하네. 누구나 자신만의 콤플렉스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산다고. 나는 사실 그 말을 듣고 너의 정수리를 파먹기로 결정했어.
잘 사는 집안의 아이가 아주 가난한 아이를 보며 요즘 용돈이 떨어져 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게 얼마나 가혹한 일이니. 이미 성공한 누군가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보며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면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 일이니. 어쩌면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엄청난 크기의 질투심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나 봐. 너처럼 되고 싶다고 동경하면서도, 나보다 나은 모습의 너를 견딜 수 없었나 봐. 너를 만날 때마다 괴로웠어. 빽빽하게 들어찬 윤기 가득한 머리카락들이 바람에 자유롭게 흩날릴 때, 그리고 네가 짧고 두툼한 손가락들로 그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 그 정수리를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어. 내가 미치도록 가지고 싶은 걸 너는 가지고 있고 네 정수리만이 내 정수리를 구원할 수 있었어.
너의 정수리를 파먹으면서, 나는 기뻤고 후회했고 무서웠어. 너의 정수리는 나의 일부가 되어 남겠지만 이제 다시는 널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어쨌거나 지금은 꽤 잘 지내고 있어.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이젠 햇빛이 강한 날에도 모자를 쓰지 않고 나가. 넘치는 머리숱에 머리 감는 게 힘들 정도야. 더 이상 내 정수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아. 진심으로 고마워. 사랑해.
추신. 넌 항상 너의 손가락이 짧고 굵어 개구리 같다며 미워했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얇고 긴 손가락을 보낼게. 파먹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