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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Oct 25. 2023

오늘은 만났다. 독일의 암행어사

암행어사 출두요!!!!

누구보다 평범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괜히 좀 더 구겨진 일상복과 약간 떡진 머리, 피곤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이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퇴근 길의 직장인이라고 속을 수 없게 눈빛이 살아있고, 두툼 한 품속, 약간 헤진 가방 속에 번뜩이는 칼날, 아니 카드 리더리가 숨어있다.

치익- 소리와 함게 문이 닫히면, 모두의 나른함을 깨우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암행어사 출두요!!’



“아니, 제가 진짜로 챙겼다니까요.”

“그럼 어디 보여줘봐. 지금 있어야지!”


“이건 이미 기간이 끝났어.”

“엄.. 줘능 외쿡인 이라숴. 말 잘 못해요. 문제 없쵸?”

“아니야, 안돼.“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안돼요.”


오늘도 눈물쇼가 벌어지고 있다. 이게 왠 참극이야.

삼인 일 조로 일하는 이들이 문을 봉쇄하고 품 안에 감춰온 마패- 신분패-를 꺼내들자 불안한 듯 바르작 거리던 내 옆 사람은 결국 끌려나갔다. 아휴. 저기 저기에 한가득 몰려 있는 죄인 (?) 들은 난리도 아니다.

갑자기 독일어를 못하게 된 사람부터, 핸드폰이 꺼진 사람까지. 변호사를 부르겠다는 화난 얼굴, 울며불며 매달리는 사람, 그러다 호시탐탐 도망가려는 얼굴까지.  암행어사가 출두 한 날이면 으레 일어나는 난리이다.


왜 난리냐면, 이 사람들, 교통권이 없거든요..


독일에서 살면서 꽤나 신기하다고 느낀 제도가 하나 있다. 바로 교통티켓.

역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기계가 있다.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우왕좌왕 하는 이들은 백이면 백 다 여행객들이고. 종종 다른 나라에서 놀러 온 여행객은 되려 외국인을 골라잡고 티켓을 어떻게 사야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영어가 통할 것 이라고 기대하면서.


교통 티켓의 종류는 도시마다 다양한데, 결국 일일 종일권(약 2만원 가량)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티켓이다. 보통 일일권을 제외하고는 (베를린의 경우)왕복으로 움직일 수 있는 티켓은 없으니까 잘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달씩 사용하는 정기권이 있다. 지금은 독일 전역에서 49유로의 정기권이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한다. 그 전에는 24시간 사용가능한 정기권, 오전 10시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정기권 등 약간의 가격차이가 나는 종류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과 아주 다른 점, 사실 다른 유럼 국가와도 확연히 차이나는 것은 <개찰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삑-> 하는 기계, <환승입니다>를 외쳐주는 친절한 기계가 없다. 사람들은 그냥 각종 대중교통에 턱턱 올라탄다. 그리고 각종 대중교통 안에는 <티켓없이 탔다면 벌금은 80유로-약 10만원-입니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적혀있다.


결국, 검사하는 사람이 없이도 티켓을 구매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운행되는 체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항상 그렇게 신뢰에 응당 부합하기만 할까? :)


따라서 검은 마음을 품고 공짜로 이용하려는 녀석들을 잡아내기 위한 <암행어사>들이 다닌다. 그들은 민간인의 행색을 하고 검표원임을 증명 할 수 있는 신분증을 가지고 다닌다. 보통 3인 1조로 다니면서 지하철, 버스, 트람에 올라타서는 문이 닫히자마자 외친다. <표 보여주세요>라고.


그들은 가슴팍에서 꺼내드는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표가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한다.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핸드폰 어플로 정기권이나 일일 티켓을 구매 할 수 있기 때문에, QR코드 인식기도 품에서 척 꺼내든다.


그렇게 세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양 킅에서부터 조여오면서 승객들의 표를 검사한다. 필시 이러면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왜인지 모르게 잘못된 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 갑자기 표가 없어진 사람, 핸드폰이 안 켜지는 사람, 등등 오만 사람이 다 나타난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고? 암행어사들이 단호한 표정으로 <놉, 안돼, 돌아가>를 외치며 벌금 딱지를 떼어준다. 그러면 위에 상황처럼 흑흑 흑흑 울면서 벌금을 납부하면 된다.


검사원들도 사람이기에  종종 바로 벌금을 현금으로 받는 이들도 있고, 영수증으로 주는 경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3번 이상 교통권 미납자로 걸려서 벌금을 내면 독일에서 추방당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때로는 이런 상황을 악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검표원도 아니면서 검표원인척,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표가 잘못된 것인 척 악용하면서 ‘지금 여기서 현금으로 벌금 내면 기록에는 안 남게 해줄게’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옴팡 당하고 돈도 뜯기고 나중에서야 이게 사기였다는 것을 알고 아주 분통이 터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니, 항상 제대로 된 교통권을 소지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한다. 깐깐한 이들은 종종 신분증까지 요구하기도 하니 비자 카드나 여권을 꼭 소지해야 하고. 만약 둘 다 없거나 스스로가 너무 덜렁거리는 사람이라 불안하면 공보험 카드로 넘어가 주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얼굴 사진과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증명서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벌써 두 번이나 암행어사들을 만났다. 억울한 사람이 한 다스는 되어서 다음 정류장에서 줄줄이 굴비들 처렴 엮여서 내렸다. 다들 스스로의 억울함을 호소하느라 눈물짓는 가운데 암행어사들의 벌금 통지서는 미련없이 주욱주욱 프린트 되는 중이다.



오늘의 독일 생활 팁!


1. 검사하는 사람이 없어도 표는 꼭 사서 탑승하자

2.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정기권 +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여권, 비자, 공보험카드 등 -얼굴과 이름이 적혀있는 공신력있는 자료)

3. 걸렸다면 화내지 말고, 사정하지 말고 얼른 벌금을 납부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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