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아픈 곳도 없는데 온 몸이 쑤시고 몸살이 난 듯하고 12시간 넘게 잠을 자며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최대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했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체력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몸이 안 좋은 것은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보다 잔병치레도 줄어들었으니 엄청난 건강체라고 오해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오해였다. 잔병치레가 줄어든 건 하도 아파 버릇해서 아프기 전에 미리 감지하고 약을 먹었기 때문이었고 온 몸이 부서지듯 아픈 것은 일종의 노환이었다.
요양원에 누워있는 기력 없는 80대와 같은 상태
이것이 나의 첫 진단이었다. 기력이 없어 누워만 있는 노인들이 끊임없이 신음소리를 내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온몸이 부서지듯 아프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날카로운 손끝으로 내 온몸을 쥐어 짜내는 그 통증은 활동과다로 인한 몸살이 아니었다. 기력 저하로 몸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남들도 다 그런 걸 견디면서 부지런하게 사는 거라더니 아니었다. 보통의 20대는 이런 고통을 느끼면서 살고 있지 않았다.
남들은 나이트 가서 밤새워 논다는 스물다섯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노인과 같은 체력이라는 것은 충격이었지만 그만큼 약효도 잘 받았다. 가려야 되는 음식이 너무 많아 배고프고 까다로운 한 달간의 복용을 마치고 나니 숨쉬기도 편하고 이유모를 통증들도 사라졌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피곤하지 않았다. 자도 자도 피곤해하고 하루 종일 졸려하지만 병이 없으니 그저 게으르다며 안팎으로 잔소리나 듣던 나에게 그때 먹은 보약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도움의 손길과 같았다.
몇 년 뒤, 예전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30대가 되기 전에 한번 더 약을 먹어두자라는 생각에 방문한 다른 한의원에서 "건강한 70대 노인과 같은 체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딱히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한의학과에서 이런 멘트를 가르치나 생각하며 그저 웃고 넘길 수 있었다. 오히려 약 한번 더 먹으면 60대 체력 되려나 라는 기대감을 가질 정도였다. 어차피 나는 남들이 얼마나 건강한 상태인지 경험할 수 없으니 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병원에서도 몸이 약하다는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자주 아팠던 어린 시절, 내 집처럼 드나들던 소아과에서도 몸이 약한 편이라는 진단을 내렸었는데, 골고루 잘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건강식품도 흔치 않았던 때이기도 했고 그분의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는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병원이냐 한의원이냐 선택의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나와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한의원은 개개인의 체질과 그 순간의 몸상태에 따른 처방을 해준다는 점에서 저에너지 인간에게 적합한 듯했다. 한의원에서 체질과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약효가 잘 흡수되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약을 지어준다.
보약은 말 그대로 기력을 보하기 위해 먹는 약이다.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양약과는 존재 이유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어디가 아플 때에는 병원을 가고 뚜렷한 증상 없이 몸 여기저기가 아프거나 말로 설명하기 애매하게 그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한의원을 간다. 기초체력을 키우기 전 순수하게 기력을 보하기 위해서 한의원을 먼저 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보다 보약을 선호하게 된 이유
가격 저렴하고 무난한 건강기능식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지어먹는 것을 선호한다. 가격과 복용 방식에 대한 부담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의 도움을 받으려고 몇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매번 약효를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한의원을 찾게 된다.
나와 같은 이유로 혹은 왠지 한의원이라고 하면 왠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요즘은 약재와 천연재료를 사용한 건강식품을 저렴하고 손쉽게 복용할 수 있으니 한약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저에너지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특히 30대가 되기 전에 꼭 자신의 체력을 보해줄 한약을 먹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20대에 먹은 보약은 남은 인생의 주춧돌이 되기 때문이다.
건강보조식품은 복용 후 매번 몸살이 나서 한두 번 먹고는 중단해야 했는데 약효를 받아들일 때 무리가 돼서 그런 것 같다. 개별적으로 지은 한약은 그런 일이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 상태에 필요한 약효와 그 약효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지도 고려를 해서 약을 지어주기 때문이다. 몸이 약해져 있을 때는 단순히 약재를 우려낸 차를 마셔도 몸에 무리가 오기도 했다. 건강을 위해 먹는 식품은 효과 외에도 잘 흡수되는지, 약효가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건강보조식품의 약효가 좋아서 복용에 주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약해진 노인들을 위한 건강식품"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전부 어린이나 기력이 떨어진 일반 성인 혹은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어르신을 위한 상품들이었다. 일상 활동조차 힘들어진 저에너지 인간은 그 정도 약효도 견뎌낼 기력이 없는 것이다.
한약재도 결국 식품이다. 우리 몸으로 들어간 것은 어떤 식으로든 몸에 영향을 준다. 오랜 세월 다양한 사람들의 몸을 보해줬던 한약이 현대의학보다 못하다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기본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약을 먹는 게 비싸고 번거롭게 느껴지겠지만 저에너지 인간이라면 한 번쯤 복용해보길 바란다. 이토록 간단하게 평범하게 피곤한 현대인만큼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에 감동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