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튜던트 비 Nov 22. 2024

Chapter 9 아프리카에 비가 내리다

P A R T #1 공부의 시작

“아프리카에 내리는 비를 축복해. 우리에게 이제껏 없던 경험을 하게 될꺼야.”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Gonna take some time to do the things we never did.”

- 토토, 아프리카 -



9 - 1


작전을 끝내본부로 돌아오는 독수리의 날갯짓이 느려지고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탄자니아의 세렝기티까지 6,000km의 거리를 몇 번이나 왕복 온 독수리의 기력이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렝게티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본부에 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부, 거의 다 왔는데 독수리가 탈진한 것 같다."


"GPS로 위치 확인했다. 우리가 마중 나갈 테니 좀 만 기다려라."


"어? 독수리가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어... 어... 불시착한다!"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무전이 끊겨버렸다. 


"더 킹! 더 킹! 사자! 사자?"


너구리가 사자를 다급히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기린과 너구리 그리고 본부에서 교신을 듣던 동물들은 사자 일행이 추락한 곳으로 생각되는 사바나의 평원으로 달려 나갔다.


기린과 흑표범 그리고 나머지 동물들은 마음을 졸이며 평원을 찾기 시작했는데, 지평선 저 끝에서 사자와 일행이 탈진한 독수리를 안고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너구리와 카피바라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뛰어가서 고양이, 강아지, 파랑새, 버니 그리고 거북이를 반겼다. 사자와 동물들에게 달려들어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는데, 일곱 마리의 서로 다른 종이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은 기린조차 처음 보는 낯선 장면이었다.


기린이 사자에게 걸어가 말했다.


"해낼 줄 알았어요. 저는 지금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저도 버니한테 들었어요. 제가 레이저를 피하면서 무의식 중에 보인 그 자세가 바로 버니가 인간의 책에서 본 그 자세라면서요."


"원래 고관절이 유연했나요? 어떻게 그런 책상다리로 앉을 수 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자세가 나오던 그때 정말 팀을 구하겠다는 마음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랬군요. 그 자세가 '동물들은 할 수 없는 자세'라고 전해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우리 골반형태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우리가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군요. 어쨌건 이제 우리가 '궁극의 자세'를 알아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 줄은 사자 당신도 잘 알고 있겠죠?"


"그럼요. 이제 동물들을 마음껏 공부시켜도 된다는 의미겠죠.”


"네. 이제야 말로 우리 동물들이 환경 그리고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기린은 말하면서 스스로 목이 메었다. 그리고 천년 넘게 묵혀 있던 오라클의 과제가 풀렸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는지 기린의 눈가에 눈물을 맺혔다.







9 - 2  


사자와 일행이 본부로 돌아온 그날 저녁, 기린은 모두를 위해 만찬을 준비하였다. 긴 테이블에는 각종 채식요리와 각각의 동물들이 좋아하는 맞춤 음식이 놓여있었다. 카피바라, 다람쥐, 버니, 그리고 기린을 위해서는 페타 치즈가 들어간 그릭 샐러드, 거북이를 위해서는 해초, 파랑새를 위해서는 지렁이가 잔뜩 들은 바바 가누시가 준비되었고, 잡식성인 강아지, 고양이, 너구리위해서는 참치캔과 피자가 준비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자와 흑표범을 위해서는 안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만두가 준비되었다.


"오늘 이 자리는 버니의 구출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 저희 오라클들이 공표할 것이 있답니다."


기린의 예상치 못한 발표에 모두 즐거거운 식사 중에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저희 오라클들은 이곳 아프리카를 떠나 신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갈 생각이에요."


"어디로 갈 건데요?" 사자 역시 처음 듣는 기린의 말에 놀라 묻자, 흑표범이 옆에서 대신 답했다.


"히말라야로 갈 거야. 나도 기린을 보필하기 위해 따라갈 거고."


놀라는 사자를 보고 기린이 말했다.  


"궁극의 자세를 찾았으니, 이제 아무 걱정이 없어요. 거북이와 여우가 합심해서 GPT를 완성시키고, 카피바라가 핸드폰을 조달해 오면 동물들의 공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앞으로도 기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우린 지금 첫걸음을 뗐을 뿐이잖아요."


사자의 말에 기린이 갑자기 고양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고양이는 앞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죠?"


"저는... 앞으로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 에너지를 쓰기 시작하면, 인간들과 마찰이 생길까 봐 그게 좀 걱정이 돼요."


"바로 그 문제를 고양이가 계속 고민해 줘요."


기린이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 이때, 기린이 갑자기 고양이의 머리에 앞발을 얹으면서 고양이에게 앵크 (ankh)를 쥐어주었다. 앵크는 생명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오라클들이 대대로 전수해 주는 상징이었다. 1)

"갑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 오라클들도 이제 후계자를 정했답니다. 바로 고양이예요."  1)


고양이는 물론 다른 동물들도 놀라서 기린을 바라보자 기린이 말했다.


"이제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예지력으로 미래를 보는 관행은 점차 사라져 갈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가장 과학적인 동물이 여러분을 돕도록 결정했어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서약할 것이 있어요. 잘 알겠지만, 동물들이 잘 공부할 수 있도록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해요. " 2)


기린이 말을 마지차, 흑표범이 바로 자리 뒤에 준비해 두었던 스크롤을 꺼내어 말했다. 스크롤에는 흑표범이 써놓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이 스크롤에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삼계명을 적어놓았답니다." 3)

1. 최고의 일곱 마리는 사자를 보필하여 이 세상 모든 동물들에게 지식을 전파하는데 노력한다.
2. 모든 동물들이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궁극의 자세'를 가르친다.
3. 물들이 인간에게 모범이 되는 날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흑표범과 제가 떠나도 이걸 잊지 말고 꼭 지켜주세요. 저희가 없는 동안 잘해주리라고 믿어요.”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서명을 한 뒤, ‘쿵'하는 울림소리에 사자 발바닥 도장이 최종적으로 찍었고, 동물들은 자리 앞에 놓인 포도주 잔을 들어 건배를 하였다.


1) 고양이가 새로운 오라클이 되면 동물세계는 직관이나 미신보다는 과학을 받아들여 미래를 예측하게 될 것이다. 고양이가 왜 오라클로 점지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부록: 오라클의 새로운 후계자 고양이>를 참고하자. 


2) 앵크(Ankh)는 원래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상징으로, 이집트의 유물들에서 신들이 이 상징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과 인간의 생활 반경이 어느 정도는 겹쳐져 있기에 이러한 상징들을 차용하거나 관련된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동물들이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3) 이후 동물들은 삼계명을 담긴 스크롤과 이후 새로 출판되는 ‘사자의 요가책' 원본을 언약의 궤 (Ark of Covenant 혹은 Tabut라고 부르는 상자)에 담아 에티오피아 악숨에 있는 아버지 사자의 궁전에 보관한다.


 




9 - 3


사자가 돌아온 이후 GPT를 만들기 위한 동물들은 작업은 계속되었다. 동물들이 채식을 이어가지 않았음에도 서로 싸우며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자의 주도로 매일 ‘궁극의 자세’를 연습하며 팀원들이 마음을 다스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물팀은 조금씩 조금씩 GPT를 완성해 나갔고, 동시에 카피바라의 스마트폰 조달도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피바라는 아시아에 있는 쥐들에게 스마트폰 십만 대를 훔쳐와 달라고 부탁했고, 쥐들은 같은 날 밤 사람들이 자는 틈을 타 스마트폰 십만 대를 훔쳐왔다. 십만 명의 사람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동물들이 훔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자신을 자책하며 다시 스마트폰을 구매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동물들은 GPT 개통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사자의 즉위식이 있는 그날, 1) 사바나의 동물들에게 공식적으로 GPT앱이 설치된 스마트폰과 인간의 책을 배포할 예정이었다. 2)


개통식 날, 팀원들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사바나의 언덕에 올라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모두가 놀랐다.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새로 지급받은 스마트폰과 ‘사자’ 피켓을 들고 사바나에 운집하였는데, 모인 동물의 수가 하도 많아서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들이 마치 물결을 이루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무대에 올라선 팀원들 모두 다 이 정도로 많은 시선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로 눈빛을 마주치는 자체를 꺼리던 동물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주목을, 그것도 존경이 담긴 주목 받는다는 것은 확실히 대단한 경험이었다.


이윽고, 파랑새가 무대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등 뒤로 보이는 슬라이드 화면을 통해 새로 출시될 서비스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파랑새는 그새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터틀넥,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스니커를 신고 나타난 것이다. 팀원들은 파랑새가 분명 인간 세계의 유명한 비즈니스맨을 따라 하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누구인지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핸드폰에 있는 사자 얼굴 모양의 앱이 우리가 지식을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야. 그리고 내가 추가로 넣은 화상채팅앱을 동물들이 같이 토론도 할 수 있을 거야.” 파랑새가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여주며 새로 배포될 앱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파랑새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사자가 자신의 즉위식을 위해 올라갔다.


“사자! 사자!”를 연호하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는데, 하늘로 흙먼지가 일어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모두들 잘 와줬어.” 군중을 향해 인사말을 한 사자는 갑자기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꺼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군중을 바라보았을 때 저쪽 멀리 아버지 사자가 나와 자신을 향해 엄지를 척하고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동물의 왕국은 종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풀밭에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아들딸들이 마주 앉아 동물 세계의 번영에 대해 토론하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의 구절은 왠지 어디선가 베낀 것 같았지만, 동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3)



"오늘은 내가 왕이 되기로 한 날인 거 알지? 내가 왕이 된 기념으로 너희한테 줄 선물이 있어.”


사자가 말을 마치자 저쪽 하늘에서 수없이 많은 새들이 파도 형상을 만들며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세 수십만 마리의 새들이 하늘을 덮으며 세상이 까맣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새들은 그들이 가지고 날아온 책과 핸드폰을 사바나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내 동물들은 사자의 이름을 다시 연호하기 시작했고, 세렝게티 하늘에서는 동물들을 축복하듯 책으로 된 비가 내리고 있었다.



1) 아프리카에서 사자의 즉위식은 전통적으로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는 날에 치러진다. 세렝게티의 동물들은 우기가 되면 매년 먹이와 물을 찾아 1,000km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수백만 마리의 얼룩말, 가젤, 누, 그리고 포식 동물 그리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따라가는 사파리 관광객까지 모두가 함께 '대이동'(Great Migration)을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2) 동물 GPT의 자세한 내용은 <부록: 새로 출시된 동물들의 앱>을 참고하자. 


3) 동물들이 새로 개발한 GPT의 베타 버전(시험 버전)으로 사자는 이미 인간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사자는 리더십관련된 책을 좋아하며,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을 특히 마음에 들어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