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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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버니를 구출해 온 이후, GPT를 만들기 위한 동물들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사자의 주도로 동물들이 매일 ‘궁극의 자세’를 연습해서 인지, 놀랍게도 동물들이 채식을 유지하지 않았음에도 서로 싸우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동물팀은 조금씩 GPT를 완성해 나갔다. 동시에 카피바라의 스마트폰 조달도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카피바라는 아시아에 있는 쥐들에게 스마트폰 십만 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쥐들은 매일 밤 사람들이 자는 틈을 타 엄청난 양의 스마트폰을 훔쳐왔다. 십만 명의 사람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동물들이 훔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자신을 자책하며 새 스마트폰을 구매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동물들은 GPT 개통식을 앞두고 있었다. 젊은 사자의 즉위식과 맞물려 대형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었는데, 1) 즉위식 당일 본부는 사바나에 공식적으로 GPT앱이 설치된 스마트폰과 인간의 책을 배포할 예정이었다. 2)
그리고 드디어 개통식 날, 팀원들이 사자와 함께 행사 진행을 위해 사바나의 언덕에 올라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마어마한 수의 동물들이 새로 지급받은 스마트폰과 ‘사자’ 피켓을 들고 사바나에 운집한 것이다. 그들이 든 피켓은 마치 물결처럼 보였는데, 사바나 전체가 마치 파도를 이루며 움직이는 것 같아 보였다.
사자와 팀원들이 무대에 오르자, 수많은 동물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이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는 건 처음이야.”
강아지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이윽고, 파랑새가 무대 앞으로 나섰다. 파랑새는 이전하고는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 나타났는데, 터틀넥,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스니커를 착용하고 있었다.
파랑새는 자신의 등 뒤로 보이는 화면에 슬라이드를 띄우더니, 앞으로 새로 출시될 서비스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있는 사자 얼굴 모양의 앱을 열면 인간의 책을 스캔해서 읽을 수 있어. 인간의 글은 동물의 목소리로 바꾸어주는 서비스이지."
그리고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넣은 화상채팅앱도 있어. 그걸 쓰면 동물들이 같이 토론도 할 수 있을 거야.”
파랑새가 새로 배포될 앱을 소개한 후 연단에서 내려오자, 이번에는 사자가 자신의 즉위식을 위해 무대에 올라갔다.
“사자! 사자!”를 연호하며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발을 구르기 시작하자, 하늘로 흙먼지가 일어났다.
"모두들 잘 와줬어.”
군중을 향해 인사를 한 사자는 준비해 온 연설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연설 직전, 긴장을 풀기 위해 군중을 바라보았을 때, 저쪽 멀리 아버지 사자가 자신을 향해 엄지를 척하고 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자는 깊은 숨을 들이마쉰 뒤 연설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동물의 왕국은 종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풀밭에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아들딸들이 마주 앉아 동물 세계의 번영에 대해 토론하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사자의 연설을 들으며 기린은 어디선 익숙한, 아니 어디선가 베낀 것 같은 연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젊은 사자가 준비한 연설은 동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3)
"오늘은 내가 왕이 되기로 한 날인 거 알지? 내가 왕이 된 기념으로 너희한테 줄 선물이 있어.”
사자가 말을 마친 순간, 하늘 끝 저편에서 수없이 많은 새들이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십만 마리의 새들이 하늘을 덮자 세상이 까맣게 어두워졌다. 그 새들은 각자 책과 스마트폰을 부리에 물고 있었는데, 사바나의 동물들 위로 날아오더니, 한순간에 책과 스마트폰을 비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내 동물들은 사자의 이름을 다시 연호하기 시작했고, 세렝게티 하늘에서는 동물들을 축복하듯 책으로 된 비가 내리고 있었다.
1) 아프리카에서 사자의 즉위식은 전통적으로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는 날에 치러진다. 세렝게티의 동물들은 우기가 되면 매년 먹이와 물을 찾아 1,000km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수백만 마리의 얼룩말, 가젤, 누, 그리고 포식 동물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하기 위해 따라가는 사파리 관광객들까지 모두가 함께 '대이동'(Great Migration)을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2) 동물 GPT의 자세한 내용은 <부록: 새로 출시된 동물들의 앱>을 참고하자.
3) 동물들이 새로 개발한 GPT의 베타 버전(시험 버전)으로 사자는 이미 인간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사자는 리더십과 관련된 책을 좋아하며,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