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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 우리 안의 어둠

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by 스튜던트 비 Oct 03. 2024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다.”

- 칼 융


킬리만자로산에 도착한 동물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색해했다. 북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까지 며칠을 함께 여행하며 왔지만, 어색함 속에 서로 거의 말을 섞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경계심이 가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본부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보니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어느새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오전, 본부 앞마당에서는 고양이가 편안히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한편, 그동안 마땅한 말동무를 찾지 못했던 너구리는 고양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다. 잠시 망설이던 너구리는 결국 고양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하지만 고양이는 너구리의 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너구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양이가 다음 책장을 넘길 때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안녕? 무슨 책 읽어?"


이번에는 고양이가 멈칫하더니, 천천히 너구리를 바라보았다.


"물리 책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고 고양이가 물었다. 


"네가 들고 있는 책은 뭐야?"


고양이의 질문에 너구리는 옆구리에 들고 있던 책을 살짝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건 경제책이야... 나는 동물들에게 경제 제도를 가르쳤으면 좋겠어. 공부하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면 동물들이 네가 공부하는 과학도 열심히 하게 될 거야."


너구리의 말에 고양이는 가만히 너구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순간 살짝 당황한 너구리가 물었다. 


"왜? 뭐 묻었어?"


"그건 아닌데, 경제를 공부했다니 좀 이상해서."


"왜? 동물들이 경제를 공부하는 게 이상해?"


살짝 기분이 상한 너구리는 손바닥을 비비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근데 말이야, 경제학이라는 게 잘 사는 법을 공부하는 거라던데… 넌 왜 그렇게 며칠 굶은 것처럼 생겼어?"


고양이의 말에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고, 너구리는 기분이 크게 상해 버렸다. 그리고 초면부터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고양이에게 받아쳤다.


"과학 공부하는 동물이 더 이상해. 그리고... 내 생각에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동물도 만만치 않게 굶을 거 같은데?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론만 고민하다가 정작 아침은 얻어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전공을 가져서 그런지 말도 기분 나쁘게 하네."


고양이가 지지 않고 받아치자 너구리가 외쳤다.


"이상한 전공? 경제학은 세상을 설계하는 학문이야."


"감히 동물이 세상을 설계해?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너는 여태 답이 없는 공부를 한 거고."


"그래? 그럼 물리학은 여태 무슨 답을 내놨는데?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한번 얘기해 봐. 끈이야? 실이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네."


고양이의 빈정거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너구리는 홧김에 고양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자 고양이 역시 지지 않고 앞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 순간, 멀리서 우연히 이 장면을 발견한 사자가 빠르게 달려와 고양이의 앞발을 붙잡았다. 같은 고양잇과인 사자는 고양이가 앞발을 드는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는 상대의 주둥이를 치기 직전에 취하는 익숙한 동작이었다. 1)


"고양이 너! 앞발로 직성이 풀릴 때까지 너구리 주둥이를 연타로 때리려고 했지?"


사자가 고양이를 타이르더니, 이번엔 너구리에게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구리, 너 기도하는데 손을 쓴다고 하더니 그때 말한 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한편, 두 동물이 순식간에 벌인 소동에 주변 동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사자가 너구리와 고양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고, 두 동물은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너구리와 고양이가 대체 무슨 일로 싸운 거야?"


거북이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들고 묻자, 역시나 싸움 구경을 위해 날아온 파랑새가 대답했다.


"서로 자기가 공부한 전공이 최고라고 우기면서 싸우는 것 같아."


거북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걸로 싸운다고? 웃기네. 근데 솔직히 고양이가 더 쓸모 있겠지. 자연과학이나 공학에 비하면… 너구리는 문과잖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 아냐?"


"그래?"


파랑새는 순간 기분이 상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의 전공 역시 문과에 가까운 경영인지라, 거북이의 말이 신경을 긁었다. 짜증이 밀려온 파랑새는 거북이를 흘깃 보더니,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지, 공학을 공부했다고 해도 기여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공학자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기계나 만지작거릴 뿐이고, 제대로 된 기여는 나 같은 경영자가 하는 거라고."


파랑새의 말을 듣자 이번에는 거북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웃기고 있네. 넌 산수도 제대로 못해서 경영 공부한 거잖아? 너야말로 퇴출 대상 1호야."


"뭐? 이 녹색 대머리가!"


파랑새는 홧김에 발톱을 세우고 거북이를 향해 날아들 기세였다.


"맙소사…"


너구리와 고양이를 겨우 말리던 사자는 뒤에서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리고 파랑새와 거북이가 또 다른 다툼을 벌이며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당황했다.


그리고 이때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아니, 서로 본 지 얼마 됐다고... 이게 무슨 짓들이죠?"


동물들은 기린을 보자, 그에게 달려가 기린에게 불만을 터뜨리듯 말했다.


"기린, 이 팀이 말이 안돼요. 이번 기회에 쓸모없는 팀원들은 정리하는 게 좋겠어요." 


기린은 대꾸하지 않고, 앞발로 흑표범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기린의 지시가 떨어지자, 옆에 서 있던 흑표범은 재빠르게 동물들에게 요가 매트를 나누어 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을 알려줄 테니까 다들 따라 해요.  그리고 강아지! 뒷걸음질 치지 말고 이리로 와서 같이해요."


기린의 말에 흑표범이 강아지를 잡아오더니, 앞쪽으로 나와 그들 앞에서 요가 자세를 취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자세는 바로 육식동물들에게 특화된 고난도의 요가 자세인 '워리어' 자세였다. 2) 


"다 같이 코와 입으로 파도 소리를 내면서, 숨을 최대한 깊게 들이쉬고 내쉬어봐요.”


오라클들의 갑작스러운 요가 시범에 모두 당황했지만, 분위기가 너무도 진지한 나머지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동물들은 흑표범의 동작을 따라 하며 요가를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후, 흑표범의 요가를 따라 하던 동물들은 이상하게 마음속에 미움이 가라앉고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때요. 마음이 차분해지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자세가 바로 '워리어'라는 자세예요. 인간의 책을 읽을 때 이 자세로 읽으면 좋고, 특히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싸우고 싶을 때에도 이 자세를 하면 좋아요.”


동물들은 이 자세가 꽤나 마음을 진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흑표범의 요가는 한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를 않았다.


“이제 그만..”


“조용히 해요!”


흑표범의 살벌한 목소리에 동물들은 흑표범을 계속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부터 요가는 체벌로 변해가고 있었다. 직립으로 선 채로 양팔을 뻗어야 하는 워리어 동작은 네발로 생활을 해온 동물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동작이었고, 급기야는 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결국 함께 요가를 하던 너구리와 고양이 그리고 모든 동물들이 탈진한 채 앞발과 뒷발을 쭉 뻗고 바닥에 누워 버렸었다. 


그때, 고양이와 너구리에게 조용히 다가온 기린이 물었다.


"고양이, 너구리. 여기서 책을 보고 있었나요? 다툼이 있기 전에 책을 얼마나 봤죠?"


그러자, 고양이와 너구리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한… 2시간 정도요?"


"그랬군요... 자, 이제 각자 숙소로 돌아가도록 해요.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는 냥냥펀치는 물론, 뒷발차기와 박치기도 전부 금지입니다. 그리고 벌칙으로… 이제부터 식사는 100% 채식으로 전환하겠어요." 


식단을 바꾸라는 지시를 들은 동물들은 좌절하는 표정 한탄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기린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흑표범과 함께 본부 안으로 단호한 표정을 짓고 걸어 들어갔다. 3)



1) 사람들은 이를 '냥냥펀치'라고 부른다. 한편, 현실에서 고양이와 너구리는 영역이 그다지 겹치는 편이 아니라 싸우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2) '워리어 자세'는 흑표범의 특기로 강력한 진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오라클들이 이 자세를 '궁극의 요가 자세'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3) 동물들이 비밀본부에서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부록: 동물들의 채식 식단>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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