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흑표범의 요가가 너무도 혹독했는지, 그날 그 자리에서 요가를 했던 동물들은 거의 이틀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숙소에 뻗어 있어야 했다. 몸이 건강한 사자 역시 고된 요가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틀이 지나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어그적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이튿날 밤, 사자는 언제나처럼 혼자 밤하늘을 보며 산책을 하기 위해 야외로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던 그는 며칠 전 너구리와 고양이의 싸움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걸 가지고 싸우네. 황당하네." 1)
그렇게 어둠 속에서 혼자 산책을 하던 사자는, 산속 저 멀리서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약간의 언쟁을 하는 듯한 그 목소리들은 사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제가 말했잖아요. 심지어 제대로 공부를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저렇게 싸우는 것 보세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야, 흑표범,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잖아."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접근하던 사자는 그 대화의 주인공이 기린과 흑표범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들이 하는 말을 더 자세하게 듣기 위해 몸을 숨긴 채 더 가까이 접근했다.
"GPT가 있어도, 아무리 순한 동물을 모아도 동물들을 공부시키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선조들이 대대로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흑표범이 말을 마친 그때, 그 둘 사이에 조용히 접근해 있던 사자는 더 이상 궁금증 참지 못하고 둘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 물었다.
"계속 실패하는데 이유가 있다고요? 그 이유가 뭐죠?"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자의 모습에 기린과 흑표범 모두 당황했다. 평소라면 주변의 작은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는 두 동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자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흑표범이 기린을 향해 말했다.
"기린, 사자한테도 지금 말해 주세요. 언젠가는 알아야 하니까요."
흑표범의 말에 기린은 한숨을 뱉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자, 제가 예전에 동물들을 공부시키려는 프로젝트를 여러 번 시도했다고 말했었죠? 그런데 그 시도들이 실패한 이유는, 동물들이 공부를 하게 되면 점점 사나워졌기 때문이랍니다."
기린의 설명에 사자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공부 프로젝트가 여러 번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동물들이 사나워진다는 것 모두 기린이 처음 해주는 이야기였다.
"동물들이 공부만 하면 사나워진다고요? 그럼 고양이 그리고 너구리도...”
“그럴 수 있어요. 고양이하고 너구리 다투기 전에 책을 두 시간 이상 봤다고 했죠? 둘이 싸운 것은 그것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들은 이미 혼자서도 공부를 해 온 친구들이라면서요."
"맞아요. 하지만 저들이 아무리 공부를 해봤자, 야생에서는 하루에 기껏해야 10분에서 30분 정도가 고작이었을 거예요. 본격적으로 인간 지식을 머리에 담게 되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어요."
이번에는 기린 대신 흑표범이 사자에게 답을 해주었다.
"그럼 결국, 애초에 동물들에게는 공부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잖아요?"
사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기린을 바라보았다. 기린 말대로라면, 동물들이 공부를 시키겠다는 이 프로젝트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사자가 실망한 모습을 보이자, 기린이 흑표범과 눈짓을 보내더니 동굴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자에게 앞발로 자신 쪽에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따라오세요."
사자는 느닷없이 자신을 부르는 기린을 따라갔다. 그들은 동물 본부의 정문을 지나 비밀 통로 같은 곳으로 들어섰고, 좁은 동굴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통로 끝에 작은 방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마치 도서관처럼 여러 개의 서가가 놓여 있었고, 아주 오래된 것 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기린은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더니 사자에게 건넸다.
"저희 오라클들은 오랜 기간 동물들에게 공부를 시켜보면서, 동물들이 사나워지는 이유가 ‘공부하는 자세’와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며칠 전에 제가 무(Moo)가 말한 공부의 조건 네 가지를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시죠? 사실, 무(Moo)가 말한 조건 다섯 가지였어요.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는데 바로 ‘자세’입니다."
"자세요?"
사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그래서 저희 오라클들은 동물들의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는 자세들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해 왔답니다."
기린이 사자가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 책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동물들이 특정 주제를 공부를 할 때 사나워지지 않기 위해 취해야 하는 자세들이 나와있어요."
기린의 말을 들은 사자는 호기심이 생겨 책을 펼쳤다. 책에는 다양한 요가 자세를 묘사한 그림과 함께 자세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며 책을 훑던 사자는 흑표범이 저번에 했던 것과 비슷한 요가 자세도 있었다.
"동물들이 어떤 주제를 공부할 때 맞는 자세를 찾아주면 돼요. 수학 공부를 할 때는 두루미 자세, 과학 공부를 할 때는 코브라 자세, 그리고 정치나 종교 관련된 과목들은 이렇게 마음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자세들은 예방 효과뿐만 아니라 이미 사나워졌을 때에 그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요."
"과목별로 다른 자세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요? 이게 보니까 자세가 30개가 넘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이 이렇게 복잡해서야 도대체 어떻게..."
사자는 기린의 말을 듣다가 더 심란해졌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애초부터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기 위해 억지 해결책을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아요. 하지만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요. 이 자세들 말고도, 어떠한 상황에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궁극의 자세'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고요?"
사자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지금 기린의 말은 아직 동물들을 완벽히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흑표범이 끼어들어 말했다.
"사자, 제대로 짚었어요. 그게 바로 제가 동물들이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고 자꾸 기린에게 말하는 이유..."
그러나 흑표범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기린이 앞발로 흑표범을 입을 턱 하고 막았다.
"그 자세.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 사자, 처음 저를 만났을 때 했던 말 기억나죠? 많은 동물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다면 정말 멋진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던 그 말이요...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해낼 수 있고, 해내야만 해요."
"기린, 제가 생각이 바뀌었는데..."
"뭐죠?"
"그냥 없던 걸로 하고, 동물들을 공부 안 시키면 어떨까요?"
사자가 무리한 요가로 의욕을 잃어버렸는지 질린 것 같은 목소리로 기린에게 말하자 기린이 물었다.
"제가 말했죠. 세상을 바꾸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아 근데... 그건 동물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는지 몰라서 한 얘기죠. 알았다면..."
사자의 말에 기린은 나약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앞발을 바로 사자의 입에 갖다 대며 막았다. 2)
사자는 앞발로 자신의 입을 강하게 압박하는 기린을 보며, 애초에 그를 찾아간 것을 처음으로 후회되기 시작했다.
1) 동물들은 야생에서 먹이를 놓고 다투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자존심 문제로 그리고 더군다나 상대를 무시하는 말을 써가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 너구리와 고양이의 말다툼은 사자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 이야기 중에는 앞발을 입에 대서 상대가 말을 못 하게 하는 무례한 동작이 몇 번 나온다. 이 동작에 대해서는 <부록: 동물들의 제스처>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3) 기린이 사자에게 준 요가책과 관련해서는 <부록 : 요가책에 기록된 핵심 자세들>에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