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한편, 흑표범의 혹독한 요가를 경험한 동물들은 당분간 서로에게 말조심을 하게 되었다. 특히 30분 이상 책을 읽어야 할 때면, 스스로 요가 자세를 취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덕분에 동물들은 점점 화를 가라앉히는 법을 익혀갔다.
그렇게 보름 정도 지나자, 동물들은 다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주로 GPT 보급 계획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오늘은 "동물들을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시킬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고 있었다. 논의의 중심에는 파랑새가 있었고, 다른 동물들 역시 각자의 의견을 나누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공부로 경쟁을 시켜서 가장 똑똑한 동물들에게 보상을 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동물 세계가 발전하기 시작할 거야.”
그런데 파랑새의 의견을 들은 카피바라의 눈모양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새가 머리가 작아서 그런가. 어디서 그런 생각을 하지? 그렇게 해서 어떤 동물은 잘 살고, 어떤 동물은 못살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그리고 경쟁 너무 좋아하지 마"
"카피바라, 이 순진무구한 녀석아 경쟁이 없으면 이 한정된 자원을 누가 나누게."
"내가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그렇게 경쟁하면 뇌가 작은 새들이 제일 불리할 텐데, 감당이 되겠어?"
"뭐? 대형 쥐! 머리털을 다 뽑아서 대머리로 만들어 버릴 거야!"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파랑새가 발톱을 세우며 카피바라의 머리털을 쥐어뜯으려 들었다. 그러자 카피바라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잠깐! 투표로 진 쪽의 머리털을 뜯는 걸로 하자. 파랑새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오른 앞발을 들고,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왼 앞발을 들어. 알았지? 하나, 둘, 셋!"
마지막 셋을 외친 순간 파랑새와 카피바라는 긴장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리에 있던 동물들은 얼떨결에 손을 동시에 들었는데, 결과는 3:3 동률. 그런데, 단 한 마리, 버니만이 손을 들지 않고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랑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버니가 난처한 표정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난… 중도야."
"뭐?"
동물들은 깜짝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지고 서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거북이가 성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나약한 녀석! 오래전부터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중도라는 건 결국 생각이 없다는 거야. 너처럼 우유부단한 녀석을 기린이 왜 이 팀에 불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거북이가 계속해서 몰아붙이자, 참고 있던 버니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리고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갈기를 세운 채로 거북이에게 그동안 못 말하던 독설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 털도 안 난 파충류 따위가 감히 어딜." 1)
"파충류 따위? 넌 그냥 귀만 큰 쥐잖아. 경주에서 나한테 진 쓸모없는 쥐! 얘들아! 저 허옇게 생긴 애 머리를 다 뜯어서 대머리로 만들어버려!"
거북이의 선동에 그 자리에 있던 동물들 모두가 분위기에 휩쓸려버렸다. 정치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동물들이었지만, 언쟁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마치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듯, 각자 감정이 격해져 간 것이다. 2)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그곳에, 갑자기 앙칼지면서도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어디서 난리를 쳐!"
동물들은 흠칫 놀라며 목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았다. 또다시 흑표범이 온 줄 알고 긴장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곳에는 한 손에는 요가 매트가, 다른 한 손에는 요가 책을 든 사자가 서 있었다.
"다들! 나를 따라 해!"
요가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들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자는, 정치와 관련된 것으로 ‘바퀴 자세’를 갑자기 시도하기 시작했다. 기린의 말에 따르면 그자 세는 책의 뒷장에 나오는 자세로 가장 어려운 자세 중 하나로, 동물들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가장 뛰어난 자세였다.
하지만 그 자세를 동물들 앞에서 취하자마자, 사자의 뒷목 부근에서 ‘뿌드득’ 하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억!"
사자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뒷목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사자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바퀴 자세를 시도했지만, 처음 시도해 보는 무리한 자세에 결국 목을 삐끗해 버린 것이었다.
1) 원래 야생 동물들은 서로에게 심한 말을 잘 안 하며, 특히 상대종을 언급하며 비하하는 말들은 동물세계에서는 금기시된다. 동물세계에서는 욕설이나 상대를 비방하는 말을 주로 인간세계에서 자란 애완견이나 애완고양이나 하는 교양 없는 행동으로 여긴다.
2) 동물 세계에는 아직까지는 좌우의 개념이 없다. <부록: 동물세계의 정치경제 개념>을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