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에 모인 동물들은 버니와 거북이처럼 이미 서로 아는 사이도 있었지만, 대체로 상대 동물 이름만 어깨넘어로 들어봤을 뿐 처음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동물들은 서로의 안면을 익혀갔고 조금씩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의 첫 공식 모임이 예정되어 있던 날 아침, 킬리만자로 산에 비치는 따뜻한 햇볕을 받기 위해 본부 앞마당으로 나온 고양이와 거북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이를 발견하고 대화에 끼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너구리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안녕?"
너구리의 인사에도 고양이와 거북이는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다. 너구리가 들어보니 GPT에 어떤 지식을 넣으면 좋을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너무 자명해. GPT에 수학하고 과학을 집중적으로 넣어서 동물들에게 그 과목을 가르쳐야 돼. 인간들이 똑똑해진 시점이 바로 세상을 숫자로 표현하고 그 숫자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면서부터야. 인간들이 처음에는 동물들을 모시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물, 불, 바람, 흙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무시하기 시작한 거야.”
거북이가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너구리가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안녕?"
너구리의 두 번째 인사에 고양이와 거북이가 너구리를 알아보고 쳐다보았다.
"나는 동물들에게 경제 제도를 가르쳤으면 좋겠어. 공부하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면 동물들도 수학과 과학도 열심히 하게 될 거야."
너구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지만, 고양이와 거북이는 아무 반응 없이 너구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짝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너구리가 고양이에게 물었다.
"왜? 동물들이 경제를 공부하는 게 이상해?"
"어 이상해."
기분이 살짝 나빠진 너구리가 고양이에게 말을 받아쳤다
"과학 공부하는 동물이 더 이상해."
순간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졌고, 너구리는 방금 못 참고 말을 받아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도 잠시, 고양이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경제학이라는 것이 잘 사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넌 왜 그렇게 며칠 굶은 거 같이 생겼어?"
고양이의 말을 들은 너구리는 제대로 짜증이 났다. 사실 너구리는 스위스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고양이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자신을 빤히 보는 눈빛이 다른 동물들과 달랐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동물도 만만치 않게 굶을 거 같은데?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론만 고민하느라 아침은 얻어먹고 다니는지나 모르겠다."
"이상한 전공을 가져서 그런지 말도 기분 나쁘게 하네."
고양이 역시 지지 않고 받아치자 너구리가 외쳤다.
"이상한 전공? 경제학은 세상을 설계하는 학문이야."
"세상을 설계해?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너는 여태 답이 없는 공부를 한 거고."
"그래? 그러면 물리학은 여태 무슨 답을 냈는데?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얘기해 봐. 끈이야? 실이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네."
고양이의 빈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너구리는 고양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 고양이 역시 지지 않고 앞발을 들어 올렸다.
순간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사자는 빠른 동작으로 달려와서고양이의 앞발을 붙잡았다. 고양이의 친척인 사자는 고양이가앞발을 드는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는데 이는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는 상대의 주둥이를 때리기 직전에 취하는 동작이었다. 1)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는 두 동물을 사자가 말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성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아니, 제가 조심해야 된다고 말한 게 엊그제인데, 이게 무슨 짓들인가요!"
고양이와 너구리 모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기린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기린의 성난 모습에 긴장해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그게 쟤가..."
고양이와 너구리가 동시에 서로를 가리키며 변명을 하려 하자, 기린이 입을 다물라는 표시로 두 앞발을 뻗어 두 동물의 입에 척 갖다댔다..
"방금의 대화 내용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
너구리와 고양이가 고개를 가만히 있자 기린이 말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을 알려줄 테니까 따라 해요. 강아지! 이리로 와서 같이해요."
저쪽에 있던 강아지를 부른 기린은 바로 두 앞발을 앞으로 길게 뻗어서 요가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기린의 행동이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도 진지해서 동물들은 하는 수 없이 기린이 보여주는 자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운워드 독' 2)이라는 자세로, 마치 개가 스트레칭을 하듯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는 요가 자세였다. 동물들은 기린을 따라서 이 자세를 취했는데, 10분 정도 지나자 이상하게 마음속에 미움이 가라앉고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요가를 마치고 나자,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온 너구리에게 사자가 다가가서 말했다.
"너구리, 너 기도하는데 손을 쓴다고 하더니 그때 말한 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리고 고양이 너. 앞발로 직성이 풀릴 때까지 너구리 주둥이를 때리려고 했지? 내가 그 동작 알아."
사자가 둘을 타이르고 있을 때, 이번에는 기린이 다가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다투다가는 다칠 수 있으니, 일단 여기 있는 동물 전원발톱을 깎도록해요. 그리고 벌칙으로 이제부터 식사는 100% 채식으로 전환하겠어요." 3)
1) 사람들은 이를 '냥냥펀치'라고 부른다. 한편, 현실에서 고양이와 너구리는 영역이 그다지 겹치는 편이 아니라 싸우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2) 스트레칭을 하는 개의 모습을 본뜬 요가자세이다.
3) 동물들이 비밀본부에서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부록: 동물들의 채식 식단>을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