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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던트 비 Oct 15. 2024

Chapter 5-1  우리 안의 어둠

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다.”

- 칼 융



흰 기린이 동물들을 킬리만자로 산의 비밀 본부로 안내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났다. 운무로 휩싸였던 킬리만자로산의 동물 본부에 따스한 햇볕이 들기 시작했고, 동물들도 서로간에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동물들은 다같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으며 사자의 핸드폰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것을 즐겼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모두가 재미있는 자세로 사진을 찍고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동물들을 숙소로 들여보내고 사자가 멀리서 이를 지켜보기린에게 다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동물들이 싸울까봐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서로 잘 어울리는데요."


"글쎄. 아직 판단하기에는 일러요. 지금은 본성을 숨기고 있을지도 몰라요. 사자 앞이니까 친한 척하는 것도 있을거구요."

 

기린의 당부에 사자는 역시나 기린이 너무 과하게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순한 멤버라면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동물들의 일이 시작되고 그다지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동물들은 본부 앞마당에서 GPT에 어떤 내용을 학습시킬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이 논의는 정말 중요했는데, GPT에 넣을 내용이 전 세계 동물들이 앞으로 무엇을 읽게 될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너무 자명해. 우리가 나중에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gpt에 넣어야 돼.”


고양이가 자연과학 전공자답게 말하고, 공학도인 거북이가 이를 거들었다.


“맞아. 그리고 수학도 넣어야 돼. 인간들이 똑똑해진 시점이 바로 세상을 숫자로 표현하고 그 숫자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면서부터야. 그렇게 물, 불, 바람, 흙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시작하면서 우리한테는 말도 안 걸기 시작한 거지.”



"잠깐. 과학이나 수학은 너네 같이 특이한 애들이나 좋아하지, 누가 그걸 공부하겠어."

 

너구리의 말에 고양이와 거북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너구리를 쳐다보았다. 


"동물도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먼저야. 그러려면 인간의 경제를 먼저 배워야 하고."


너구리가 말을 계속하자 알 수 없는 어색함이 흘렀다. 


"너구리,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제도부터 공부해서 어느 세월에 환경 문제를 해결하겠어? 그리고 동물이 경제제도를 공부하는게 정상이야?"


"뭐라고?"


자신을 반박하는 말을 들은 너구리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사실 냉랭한 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었는데, 지금 말투를 듣고 보니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제도 공부하는게 뭐 어때서. 너 혹시 사회과학을 무시하는 거야?"




"무시한 적은 없는데, 자연과학을 엉터리 과학하고 비교하는 자체가 마음에 걸리긴 해."


"엉터리 과학? 경제학은 세상을 설계하는 학문이야."


"세상을 설계한다는게 말이 안되지. 그러니까 너는 여태 답이 없는 공부를 한거야."


"그래? 그러면 물리학은 여태 무슨 답을 냈는데?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얘기해 봐. 끈이야? 실이야?”


"잡스러운 걸 공부하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네."


고양이가 빈정거리자, 너구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고양이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 멱살을 잡힌 고양이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슬그머니 앞발을 들어 올렸다.



순간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자는 빠른 동작으로 달려들어 고양이의 앞발을 붙잡았다. 고양이의 친척인 사자는 고양이가 취한 제스처의 의미를 알아차렸는데, 그것은 바로 고양이과의 동물들이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는 상대의 주둥이를 때리기 위해 취하는 동작이었다. 1)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는 두 동물을 사자가 말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성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들인가요!"


고양이와 너구리 모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기린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기린의 성난 모습에 긴장해 동작을 멈추었다.


"그게..."


너구리가 뭔가 변명을 하려 하자, 기린이 입을 다물라는 표시로 긴 앞발을 뻗어 너구리의 입에 척 다대고서는 말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을 알려줄테니까 따라해요."


그렇게 말한 기린은 바로 두 앞발을 앞으로 길게 뻗어서 요가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기린의 행동이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도 진지해서 동물들은 하는 수 없이 기린이 보여주는 자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운워드 독2) 이라는 기초적인 요가자세로, 마치 개가 스트레칭을 하듯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는 요가 자세였다. 동물들은 기린을 따라서 이 요가자세를 취했는데, 10분 정도 지나자 이상하게 마음속에 미움이 가라앉고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요가를 마치고 나자,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온 너구리에 사자가 다가서 말했다.


"너구리, 너 기도하는데 손을 쓴다고 하더니 멱살 잡는데 손을 쓰고 그 때 말한게 다 거짓말이였던거야? 그리고 고양이 너. 앞발로 직성이 풀릴 때까지 너구리 주둥이를 때리려고 했지? 내가 그 동작 알어."


사자가 둘을 타이르고 있을 때, 이번에는 기린이 다가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다투다가는 다칠 수 있으니, 여기있는 동물 전원 발톱을 깎도록해요. 그리고 벌칙으로 일주에 두번 있는 참치 특식 없애고 이제부터 100% 채식으로 전환하겠어요." 3)





1) 사람들은 이를 '냥냥펀치'라고 부른다. 한편, 현실에서 고양이와 너구리는 영역이 그다지 겹치는 편이 아니라 싸우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2) 스트레칭을 하는 개의 모습을 본딴 요가자세이다.  


3) 동물들이 비밀본부에서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부록: 동물들의 채식 식단>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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