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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Feb 19. 2024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내 생애 최고의 순간 (내. 생. 순)

 2003년 대학 수학능력 시험에 응시했다. 결과가 기대한 만큼은 나오지 않아 실망이 컸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공부를 그만큼 안 했다는 의미일 테니 어쩔 수 없는 일. 당시 수능 점수에 맞추어 갈 수 있는 대학을 고르다 보니, 그나마 장학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대전의 D 대학이었다. 원하는 대학은 가지 못했어도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학 캠퍼스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큼은 들떴다.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다는 동아리 모습을 상상했다. ‘사진 촬영’, ‘어학 공부 ’, ‘축구 ’, ‘여행 ’, '그림 그리기'와 '기타 동아리'가 있었지만, 나는 그중에서 ‘태권도 동아리’에 가입원서를 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공부는 하기 싫고, 축구와 다른 구기 종목엔 흥미가 없다 보니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입었던 태권도 도복이 아직 내 방 옷장에 걸려 있던 게 생각나 선택한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는 도복을 입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대학까지 와서 또 도복을 입겠다고 동아리 가입원서를 내밀었던 건 아버지의 권유도 한몫했다. '대학에라도 가서 태권도를 다시 시작하면 용돈을 올려 주겠다'는 아버지와 달콤한 유혹 덕분. 그렇다.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도복을 입어 보기로 한 것이다.     

 대학 수업을 마치면 도복을 입었다. 체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동아리 사람들과 교내 도로를 함께 달렸다. 하필이면 모든 도로가 정문에서부터 계속 오르막 언덕으로 이어지는 경사라 몇 배는 힘들었다. 심지어 한 번만 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을 왕복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문제는 달리기가 끝나야만 다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땀범벅이 된 상태로 교내 체육관에서 발차기와 품새, 발차기 연습을 했다. 꿈꾸던 대학의 ‘캠퍼스 낭만’과는 거리가 먼 시간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이었다.

종종 전문 운동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TV 방송을 통해 볼 때면, 매번 대단하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 든다. 옆에서 함께 땀 흘리는 동료가 있지만, 어찌 됐든 버텨내야 하는 건 오로지 개인의 몫이고, 혼자만의 싸움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도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등 떠민 적은 없었는데, 그땐 선배들의 불호령이 무서워 어떻게든 달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대학별 겨루기 대회가 열렸다. 광역시에서 주관하는 규모다 보니 참여 인원만 해도 수백 명. 참가 대학이 수십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대학의 동아리가 줄곧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단다. 선배들이 그렇게 괴롭히다시피 운동을 시킨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대회에는 동아리에 속한 모든 인원이 참가 지원서를 냈다.

 

 대회 당일, 70kg(-)의 미들급으로 선수 번호를 받았다. 시합장에 들어설 때면 매번 긴장감에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물도 많이 마시면 안 되는 걸 알기에 앶꿎은 물병만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손에 무언가라도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함에 떨어야 했기에, 시합장에서 갖는 나만의 루틴이었다.  

 처음 들어서는 곳도 아닌데 매번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네모 모양의 선이 그려진 작은 곳에서 생전 처음 만나 이름도 모르는 낯선 상대방을 어떻게든 제압해야 한다. 심판의 준비 신호에 양팔의 가드를 올리고 두 발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언제든 상대방에게 공격할 수 있고, 동시에 상대의 공격을 대비하는 자세다. 긴장과 떨림으로 가슴이 답답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할 뿐. 시합 시간은 매 라운드 2분, 총 6분이다. 이 짧은 시간에 서로의 기합이 교차하며 수차례의 발차기와 주먹이 오갔다. 경기 결과는 나의 승리. 이어 세 차례를 시합장에 들어섰고 대회 체급에서 최종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그동안의 끊임없는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내가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너는 원래 운동 잘하잖아.’ 그 말은 ‘너는 태어날 때부터 나는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자신보다 더 낫다.’라는 의미다. 이런 말을 몇 번을 들어도 내 대답은 똑같다. ‘나는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떨어지는걸’. 맞는 말이다. 어렸을 적 도복을 입었을 때도 남들은 일주일이면 뒤돌려차기를 해내었던 것과는 달리 나는 몇 달이 걸렸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부족한 운동신경 대신 지기 싫어하는 ‘승부 욕’ 뿐이었다. 그걸 좋은 말로 하면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노력의 깊이를 채우기 위해 남몰래 얼마나 더 많은 땀을 흘렸는지 남들은 모른다.  


 지금은 비록 도복을 벗었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 졸업 전 태권도 4단을 땄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만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경기 중 눈에 땀이 들어가 따가운 순간에도 놓지 못했던 긴장감과 수없이 질렀던 발차기 끝에 발톱까지 빠졌던 고통의 순간들. 누구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만큼은 열심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던 때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숙사 주변을 달리고,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는 대학수업과 야간에는 선배, 후배들과 함께 땀으로 뒤엉켜 보냈기에 열정 또한 많았다.


 대학의 낭만 넘치는 캠퍼스 기억 없지만 땀내 가득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중에 어떠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으면 한다. 당장은 그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완전히 물거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도복을 벗었어도, 그때의 경험을 살려 직장 내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운동만큼은 쉬는 법이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또 그때의 기억이 이렇듯 내 삶의 일부로 기록될 수 있었다는 건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때로는 원하는 결과보다 노력한 과정 자체만으로도 내 삶의 진정한 보물이 될 수도 있다. 당장은 비워져 있던 그릇에 열심히 흘린 땀 방울이 가득 차 있는 걸 보면,  나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깨달을 수도 있다.  것을 꺠닫는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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