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려다가 고민 끝에 씀
내 브런치를 오래전부터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과거에 '무주택자 방랑기'라는 브런치 북을 발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을 숨김처리 해놨는데 그 이유는....
내가 '유주택자'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된 지 오래됐다^^;)
그렇다. 제목 그대로 나는 20대부터 셰어하우스부터 시작해서 월세, 전세, 홈스테이 온갖 유형의 거주를 다 누려보고 20대 끝자락에 자가를 마련했다. 그러므로 오늘은 무주택자 방랑기의 마지막 마침표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20대 내집마련 성공기 요약
2. 온갖 방랑 거주기에 대해서
3. 내집마련 의외로 안 기쁘다? <중요=_=
4. 앞으로의 바람
그럼 천천히 즐겨주시지요... 홍홍홍
1. 20대 내집마련 성공기 요약
내/집/마/련. 이 네 글자만큼 K-인간성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말이 또 있을까? 일단 나의 경우는, 솔직히 말해서 아파트를 산 건 아니다. 굉장히 저렴하고 낡은 투룸 빌라를 매입했다. 즉 내 집마련은 성공했지만 부자가 된 건 결코 아니다. 또한 현업인 작가수익으로 마련한 것도 절.대 아니다. 작가가 되기 이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모아서 마련했다. 혹시라도 "작가로 살면 집 살 수 있나 봐?"라고 생각하실까 봐 밝힌다. 작가로 살기 전에 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침울)
집을 산 이유는 간단하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떤 국가에서 살든, 인기 없는 창작자는 빈궁하게 산다. 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가 되면 전세 대출금이나 월세를 매달 납부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거라고 예상했다. 즉 작가=백수라 여겼고, 그로 인해 주거비 대비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래서 샀다. 매달 집세 안 내려고... 근데 이거 정말 휘뚜루마뚜루 그냥 사버린 거라서 추천하는 동기는 아니다.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내 집마련의 꿈!" 이란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내 집마련이란 그냥 거대한 생계플랜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래서 매물도 많이 안 봤고 그냥 자금 상황에서 제일 적합한 곳을 골라서 급하게 샀다. 그 결과로 지금 집값 많이 떨어졌어요^^(젠장)
나는 집을 고를 때 따악 몇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OK였다.
1. 반지하가 아닐 것
2. 가급적 꼭대기층일 것 (그냥 개인 취향)
3. 절대 원룸 안 됨 (나의 정서건강을 위하여)
4. 해가 잘 들어야 함
5. 지하철이 가까워야 함(버스 안 됨)
6. 산이 보여야 함
그리고 아래의 집을 구했다.
위 사진은 입주 전 인테리어 시공을 마친 날에 찍은 것이다. 확인차 와서 찍은 것인데 딱 내게 적당한 투룸이고 베란다도 있다. 사진에 보이지 않는 영역은 거실겸 부엌이다.
베란다 창을 열면 산은 아니지만 아주 작고 아담한 언덕이 하나 보인다. 그 언덕을 통해 4계절을 느낄 수가 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단풍을, 겨울에는 흰 눈을 덮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침대에 누워서 찍은 사진.
참고로 서울이 아니다. 서울이라면 절대 내 집마련 못했을 거다(ㅠㅠ) 서울에서 내 집마련 하신 청년분들 존경한다... 나는 자금이 허락하는 지역을 찾기 위해 최대한을 밀려났다^^;; 그래도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일에 무리가 없어 다행이다.
2. 온갖 방랑 거주기에 대해서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고 집을 샀다. 집을 사겠다고 아빠에게 '선포'했을 때 아빠가 돈을 보태주겠다고 했지만 내 선에서 거절했다. 사실 후회한다. 그냥 돈 받을 걸... (ㅋㅋㅋ) 암튼 부모의 지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같이 사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독립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에 정말 온갖 집에서 다 살아봤다. 지방사람이 서울 와서 사는 건 왜 이리 힘든가요!!!!
일단 20대 초반, 대학 시절에는 기숙사에서도 살아봤고.
https://brunch.co.kr/@artiswild/108
3명이서 3룸에서도 살아봤고.
https://brunch.co.kr/@artiswild/109
잠깐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는 남의 집에서도 살아봤다.
https://brunch.co.kr/@artiswild/111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셰어하우스에서 살기 시작했는데(개고생의 서막)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무려 한 집에 여자 8명이서 함께 사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가 않은... 젊은 날의 편린이네요~
https://brunch.co.kr/@artiswild/116
몇 가지 중간 포스팅을 생략하고, 최후엔 전세를 얻어 살다가 결심했다. 아! 매달 돈 나가는 것 안 되겠군.
https://brunch.co.kr/@artiswild/122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고 약 6개월 뒤에 집을 샀다.
https://brunch.co.kr/@artiswild/123
3. 내 집 마련 의외로 안 기쁘다?
여기서부터 내 또래 2030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이 본론이다.
내 집마련, 기쁠 줄만 알았는데요
정말 돈 많이 드네요 따흑흑
집을 사면 집만 사는 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고요. 집이 있는 청년은 나라에서 칭찬받지 못하고 꾸중만 받는 것 같습니다.... 아래의 사항들을 참고해 주세요.
집 사기 전 알아야 할 것들.
1. 인테리어 비용으로 수백만 원~수천만 원 소요
2. 각종 행정업무처리비 수십만 원
3. 여러 청년지원 혜택 탈락
4. 부동산 자산 취득으로 인한 4대 보험 요율상승 (<제발!!)
5. 집이 고장 나면 문자 보낼 집주인이 없다... 집주인이 나라서...
6. 이웃과의 민원 시 내가 무조건 해결해야 됨
7. 친구들한테 위 사항 토로할 시 기만자 취급 당함
1~4번, 종합해서 설명하자면 돈이 많이 듭니다.
나는 투룸 빌라를 매입했다. 인테리어를 갈아엎을 필요가 있었는데 솔직히 집이 저렴하니까 인테리어 비용도 별로 안 들거라 착각했다. 넓지도 않고, 내 요구조건도 평이한데 돈 많이 들겠어?^^ 이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안 그랬고요....
도배 벽지 화장실 전면공사 단열시공 보일러수리 누전 바퀴벌레퇴치작업(젠장) 전부 다 해서 600만 원 정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샷시는 갈지 못했는데 샷시 갈면, 당시 견적상 천만원이 넘었다. 평생 가게 가서 깎아달란 말 한번 안 하고 살았던 극 내향인인 내가 시공 사장님들에게 10만 원만 깎아주세요*^^;;;;*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거참 어른이 된다는 건 비굴해진다는 것이더군.. 이때 느낀 교훈이 있다.
부모가 지원해 줄 때, 받자. 절대 거절하지 말자!!!!!!!!!!!!
의외로 인간관계의 애로사항도 있었는데. 집을 산 후에 그 사실을 정말 친한 십년지기 친구가 아니면,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 브런치에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근데 어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자꾸만 내게 밥을 사라고 요구했다. 집을 샀다 = 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 그러니 내게 밥을 사거나 내게 도움을 줘라. 다소 황당한 말이지만 꽤 들었다. 정말 웃긴 것이 내가 돈을 모을 때 한 푼도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들이 꼭 이렇게 말한다.
있어도 없는 척하며 살라는 어른들의 말은 짜증 나게도 사실이더군요. 뭐 코딱지만 하고 긁으면 바스러지는 낡은 집인데도 없는 척하며 살아야 한다니... 연막을 잘 피우며 사는 것도 현명한 처세술이었습니다. 저는 밥을 꽤 많이 샀고요(젠장)
그리고 공시지가가 하락했다. 쩝. 투자 목적으로 산 집은 아니라서 시세가 떨어져도 눈물 나진 않지만 조금 뼈아프긴 하다. 조금만 더 늦게 샀으면~ 하는 생각이 있달까. 아빠가 절대 지금은 집 살 타이밍이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 봐라 수십 번을 말해줬는데 내 뜻대로 해버렸다. 역시 사람은 후회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네요(젠장)
4. 앞으로의 바람
살아보니 지금 집도 완벽하진 않아서 좀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네요. 집을 사보니 재산세라는 것도 내보고 우와 나도 자산이 있다~라는 소소한 기쁨도 누려보고 아무튼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언젠가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때 당장 내다 팔아버릴 만한 게 있다는 것도 든든하고.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딸내미, 부모 도움 없이 근로소득+사업소득으로만 해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수입만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이걸 꼭 강조하고 싶은.) 내가 하면 님도 할 수 있어요. 근데 굳이 안 해도 괜찮아요.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튼 어디에 살든, 오늘보다 내일 더 윤택하시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