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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더 건강했을 때는 자정 넘어서의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의 흔들림을 즐기던 시간이 많았고, 그것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때의 글들을 보면 더 재밌는 것들이 많다. 솔직하니까 글의 품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요즘은 체력이 허락하지도 않고 아침부터 육아라는 할 일이 버젓이 존재해서, 밤의 시간을 줄이다 보니, 재밌는 글들이 줄은 것 같다. 아니면 그저 걱정이 늘어서 검열이 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뭐 그리하여, 간만에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 정주행하면서 뻘글을 싸보고자 하는데, 이 앨범마저도 2022년에 발매된 것이라는 게, 그런데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는 게, 역시 요즘의 나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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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얘기가 나왔으니, 2022년 기착이라는 제목의 EP를 들어보자니, 차세정 님도 역시 현실의 무게에 힘들어한다는 느낌이 든다. 결혼도 했고, 나이는 들어가고, 현재 진행형이거나, 아직도 마음을 흔드는 아픈 사랑의 기억도 하루하루 먼 이야기가 되어가니, 노래가 생동감을 갖기 어려운 것 같다.
놓친 꿈처럼 놓쳤던 내 사랑도 그때는 전부였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야 왜 모르겠냐마는, 그대가 정말 나에게 다시 한번 내게 들려주길 바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혼을 고려하지 않는 유부남의 마음이라면, 과거를 추억은 할지언정 현실이 더 복잡해지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꿈에서 말해주길 바라는 정도라면야 이해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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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육아의 과정은 나 없이 살 수 없는 생명체를 나 없이 살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인데, 그렇다라면 대략 최소로 추정해도 십수 년, 최대로 추정해도 삼십 년 정도면 끝이 아닐까 싶다. 꼭 플젝이 끝나지 않더라도, 아무튼 점점 내 시간은 다시 많아질 거고, 육체적 시간적 압박은 점차 완화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요즘 조금씩 생각해 봤다. 다시 신혼처럼 아내와 알콩달콩 데이트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인지, 나보다 친구가 좋은 딸내미를 붙잡고 좀 놀아달라고 부탁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는지, 지금으로서는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언제가 되어야 그런 때가 올런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때가 오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가 오면 죽을 날이 더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결국은 지금을 그리워할 텐데, 역시 내 삶에서 남은 날 중 최고는 오늘이었던 것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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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앤아버에서의 시간이 생각난다든지, 학부 시절이 생각난다든지, 해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광역 메시지를 날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예컨대, 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Ann Arbor에 위치한 No Thai가 생각나고, 그 당시에 나왔던 싸이와 자이언티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 all my old school lovers where are you at이 외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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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7시간은 자야 한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는데, 오늘같이 뭔가 밤에 여유가 좀 생기면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어 져서 늦게 자게 될 때가 있다. 아무튼, 이제 내일모레면 카보로 여행을 간다. 요즘의 여행이라는 것은 사실상 풀타임 육아여정이라, 여행이라는 단어가 과연 적합한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 만들 수 있길 바라면서, 간만에 찾아온 행복한 순간을 닫아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