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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Sep 02. 2022

우는 사람


나는 줄곳 잘 울었다.  잘 우는 아이였고,  잘 우는 소녀였으며, 잘 우는 청년이었다. 내 안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눈물의 샘은 작은 일렁임에도 몸 밖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눈 주위가 붉어지고 눈물이 흘러나오면, 곧 시야가 흐려지고 콧물이 났다. 나중에는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나서 심하게 훌쩍거렸다. 하지만 아줌마가 되고 난 이후에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았다. 대신 마음으로 울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울게 된 것이다. 눈물은 내 안 쪽으로 물길을 만들고는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햇살이 다정해서 울고, 친구에게 선물 받은 쑥차가 너무 맛있어서 울고, 내가 못 되게 굴었는데도 용서해준 아이의 마음이 너무 커서 울고, 늘 제자리인 나의 무력함에 울고, 그런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울고, 세상에 작가들은 또 왜 이렇게 삶의 부조리를 날 것으로 감지하는 것인가, 그들이 감당해야만 했을 삶의 무게와 상처가 아파서 울고 하는 식이었다. 이번 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울다가 끝나겠다는 생각을 정말 자주 했다. ‘난 잘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잘 웃기도 하니까… 많이 울고 많이 웃는 삶도 나쁘지 않잖아.’라는 합리화로 두려움을 겨우 잠재웠다. 


최근에도 정말 많이 울었다.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따끔거리는 마음 위로 눈물이 흘렀다. 팬데믹 이후 나는 지나치다 싶은 고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보다 책을 많이 읽고, 웹상에 올라온 사람들의 말과 글을 더 많이 듣고 읽는다. 의지하고는 있지만 살아있는 상호적인 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관계들이 자꾸만 나를 울린다. 어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가 그랬다. ‘상실', ‘사랑', 그리고 ‘혼돈’ 위를 휘청이며 걷던 그녀가 자신의 걸음으로 걷고, 뛰고, 헤엄치는 모습에 울었다. 속상해서, 기뻐서, 대견해서, 고마워서 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더 많이 울게 된 것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속성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눈물의 시간을 건너온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앞으로도 대책 없이 울기만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라면 나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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