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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Sep 23. 2022

그 모든 좋은 것들의 속삭임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방법들  나에게  맞는 방법을 꼽아보자면 요가, 다도, 마음 챙김, 상담, 아티스트 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요가는 특히  맞았다. 매트 위에 머물러 있으면 금세 마음이 맑게 지고 몸은 촉촉해졌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과일처럼 안팎으로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졌다. 덤으로 신기한 체험도 했다. 깊이 수련한 , ‘시체 자세'라고 불리는 수련의 마지막 동작을   감은  위로 색이 떠올랐다. 눈과  사이, 미간 어디 즈음에. 주로 남색 빛을  보라색이었는데 비정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색은 점점 커지며 미간 쪽으로 다가오거나, 그냥  발치에서 흩어지기도 했다. 붉은색이나 연두색이 보이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인 가는 맛을 경험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향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련 후반부에 입안에서 자두향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감은 눈으로 매트에 누워 ‘도대체  경험은 뭘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했다.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내가 찾은 답은 심리학 이론 중에 하나인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였다. 어쩌면 요가 수련  깨어난 몸의 기억이 떨림을 만들어 연합되어 있던 다른 감각의 기억을 인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증할 길이 없었을뿐더러, 실재를 가진 현상인지도 의심스러웠다.


한참 후에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서 주인공 심시선의 말을 듣고 (반가워서) 펄쩍 뛰었다.

심시선 :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적인 근사한 섹스의 가치를 너무 박하게 평가하지 마세요. 스트레스 핸들링에 그만큼 도움 되는 것도 잘 없습니다. 제법 괜찮은 섹스는 감은 눈에 존재하지 않는 색깔이 떠오르게 하니, 그림일기를 쓰고 싶어 질지 몰라요.

"제법 괜찮은 섹스"에서 "감은 눈에 존재하지 않는 색깔이 떠오르"는 걸 보셨군요, 심시선씨? 보신 거죠, 작가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언정 나만의 경험이 보편 경험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다. 수련이 깊어진 어느 시점엔가는 이전에 의식적으로 도달하지 못했던 이미지와 기억에 가닿았다. 현상을 좀 더 분명하게, 다양한 층위에서 인식하게도 되었다. 물론 ‘도’를 깨우쳤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들은 마치 눈앞에 늘어선 여러 개의 방문과 같았는데 선택의 순간 눈앞에 떠올랐다. 재밌는 점은, 그런 인식 위에 선택을 하게 되면 가장 멋지고 고상한 선택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덜 좋은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그렇게 선택을 하면 ‘다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매트 위의 세상은 안온했고 흥미로웠다. 요가 수련은 그렇게 나에게 그 자체로 유희가 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 혼자만 누리는 그 평화로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언제까지 혼자만 고요하고 행복할 거니?’ 나는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요가, 다도, 마음 챙김, 상담, 아티스트 웨이, 그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며 지냈다. 그러다 몇 주전인가 요가에 관한 글을 한 편 썼다. 의지를 발휘하여 어렵게 쓴 글이었다. 몸을 잊은 나를 일깨우는 글이었다. 그런데 텍스트를 옮기는 과정에서 글이 날아가버렸다. 다시 써야 한다는 마음을 숙제처럼 짊어진 채 곱씹으며 지냈다. 모든 맛과 향이 씁쓸해지고 마는 도피의 시간. 나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내가 그 모든 좋은 것들과 멀어진 이유는 도취 상태에서 벗어나 깨어나기 위함이었다.


나는 과연 그것들과 멀어져 깨어났을까? 책과 음악, 이야기들에 취해 휘청거리는 몸을 곧추 세운다. 그리고 알아챈다. 그 모든 좋은 것들의 속삭임을.

"네 삶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가. 네 삶을 힘껏 살아보는 거야. 깨지고 부서지면 언제든 다시 찾아와. 내가(우리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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