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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도 몰랐지만 우아하게 살아

[ 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 10

by 정원에 Feb 17. 2025

1980년대 초. 초등학생 때 교실에서는 난로 연료가 나무였습니다. 유행하는 '불멍' 하기 좋은 잘 생긴 장작, 이 아니라 그냥 쓰이던 그대로 버려진 나무 조각이었죠. 주로 학교 건물 뒤에 돌아 앉은 공터 한편에 쌓여 있는 석탄 묻은 시커먼 나무들. 거기에서 좀 쓸만한 것들을 잘 골라 담아 수업 시작 전에 불을 피우는 게 주번이 해야 할 큰 일 중 하나였습니다. 


몇 번 해 보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욕심도 생깁니다. 연기 덜 나게 교실을 따듯하게 만들어서 친구들이 도시락을 얼른 올려놓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요. 친구들에게 불 잘 피우는 주번으로 받는 칭찬도 은근히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노하우는 남다른(?) 준비 덕분이었지요. 


대부분은 그날 와서 주변에 있는 신문지, 달력 종이, 연습장 등 종이류를 불쏘시개로 사용합니다. 연기만 날리고 잘 붙질 않습니다. 덜 마른나무가 꽤나 있었던 게 이유입니다. 나무 더미 속에서 화롯불에 구운 고구마 찾아내듯이 공들여 담아 와도 그랬습니다. 밤새 서리를 머금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어떤 아이는 깨진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에 불을 붙여서 뭉툭하게 두툼한 직사각형 나무밑에 냅다 깔아 둔 아이도 있었습니다. 고약한 냄새 때문에 창문을 다 열어 두어 한참 뒤에나 온기를 가둘 수 있었지요. 그러다 저보다 더 깊은 산속에 살던 친구 덕분에 강력한 불쏘시개를 알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관솔'이었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소나무, 잣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외부로부터 상처를 입으면 자기 몸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내뿜는 자연 항균 물질입니다. 나무의 진액이 옹이나 상처 부위에 엉겨서 굳어진 것이죠. 흔히 '송진'이라고 부르는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맨 손으로 잡고 있으면 손이 끈적끈적해집니다. 


사람은 어릴 적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정상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이 기억을 밀어내니까요. 하지만 어떤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더 날카롭게 새겨지는 것들도 있죠. 나이 든 내가 어린 나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되면서 말입니다. 


'관솔'에 대한 저의 기억이 그렇습니다. 끈적한 느낌은 물론 냄새도 또렷합니다. 30대 때 체육대회에서 넘어져 열상을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오른쪽 팔꿈치 부분에 흐릿에게 상흔이 남아 있죠. 그때 거즈 사이로 꽤나 한참을 새어 나오던 피고름이 꼭 상처를 치료해 주려는 송진 같다, 는 생각을 하면서 '관솔'이 떠올랐던 기억조차 또렷합니다. 


어릴 적 그런 '관솔'을 저는 산에서 놀 때마다 주워 모았습니다. 다락방에다, 신발장 한쪽 구석에다. 주워 모았다는 것보다 사실, 긁어, 끊어 모았다고 해야 할 거예요. 제대로 된 관솔(조각)이라기보다는 가느다란 가지, 나무껍질에 송진을 발라 놓는 정도였던 경우가 더 많긴 합니다만.  


며칠 전 정월 대보름이었습니다. 성능 좋은 휴대폰으로 아파트 숲 속에서 보름달을 선명하게 찍고 가족들과 공유했습니다. 어머님이 지어 주신 찰밥에 고사리나물, 호박나물, 가지나물에 울릉도 산 취나물을 먹으면서 흘러나오던 TV화면에서 쥐불놀이를 봤습니다. 자연스레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했던 '쥐불놀이'가 떠오르더군요. 그것도 '관솔'이 한몫을 했었거든요.  




"야, 시작한다. 시작!  자, 돌려, 돌려, 돌려, 돌려!!"


'웅, 웅, 웅. 웅, 웅, 웅, 웅, 웅, 웅, 웅................'




여러 가지로 해방감을 주었던 게 쥐불놀이였습니다. 보고 있는 것만 해도 몸이 뜨거워졌죠. 게다가 공식적으로 밤늦게 나가 놀아도 괜찮았고(사실 뭐 정월, 이월, 유월... 구분 없이 늘 나갔읍니다만) 오줌을 싸든 말든 불장난을 해서 좋았고 친구들과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어 좋았었죠. 친구들 사이에서 우연하게 돌렸던 불깡통의 슬픈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야, 너도 한번 돌려 볼래?"



그때 저는 쥐불놀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때까지 쥐불놀이를 해본 적도 없었고요. 그러니 당연히 내 불깡통은 있을 리 없죠. 무엇이건 '처음'은 있는 법이잖아요. 낯설어 두렵지만, 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태. 누군가가 저에게 했던 저 말을 듣는 순간, 제 심장은 엄청나게 빨리 뛰었습니다. '불'이어서, '처음'이어서 겁이 먼저 올라왔던 거죠. 어릴 때 더 빼빼 마른 천하 심약한 겁쟁이였거든요.  


더 날카로워진 기억이지만 마치 꿈을 꾼 듯해요. 주변은 다 흐릿한데, 그 가운데에서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을 하고 불깡통을 열심히 돌리는 저만 보이거든요. 마음대로 편집해서 기억하는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손가락, 팔꿈치, 어깨, 오른쪽 볼, 오른쪽 귀, 그리고 발바닥의 뜨거움, 웅, 웅 거리는 소리까지 저의 '감각'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마치 트라우마처럼.  


그렇게 처음으로 불깡통을 돌렸습니다. 그런데요. (내가 스스로 한) 예상대로 돌리는 마음이 먼저 엉성했고, 그다음 행동이 엉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팔을 돌렸고, 서너 번 돌리다만 불깡통은 공중에서 뒤집혀 버렸습니다. 불붙은 나무 조각들이 이리저리 밤하늘을 날았죠. 나무조각에서 튕겨 오른 점박이 불똥들이 마치 폭죽을 터뜨리듯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폭죽은 몰랐고, 성냥머리만 한 콩알탄을 가지고 놀 때였습니다만. 


그날 이후 저는 산에 놀러 갈 때면 꼭 제가 만든 깡통을 챙겨 올랐습니다. 큰 깡통에다 철사를 연결해서 불깡통을 만들었던 거죠. 그리고 그 안에 자잘한 짱돌을 여러 개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무게를 조정한 뒤 돌리고, 돌리고, 돌렸어요. 친구들 앞에서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거죠. 얼른 다시, 정월 대보름이 와라, 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정월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분명 '시기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기심 덕분이었을 겁니다. 강제 폭죽놀이를 한 후 얼마나 지났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어디였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꽁꽁 언 논바닥 위였고, 낮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마, 이모부님이 돌아가신 그 논두렁 근처'였을 거라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요. 어린 나에게 다시 물어볼 수는 없었으니까요. 


불깡통에 불을 피워 돌렸어요. 대성공이었습니다. 혼자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돌렸습니다. 온갖 쾌감을 느끼면서 그랬을 겁니다. 불깡통을 돌릴 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난 돌릴 수 있다', '난 돌린다', '난 할 수 있다'. 그 믿음은 코엘료가 '충분히 정확하게 터득할 때까지 날마다 연습'(파울루 코엘료, 아처, 2021, 문학동네)을 해 낸 나를 믿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연습의 습관이 지금도 매일 쓰는 글에 조금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불깡통을 묶은 철사줄이 나에게 딱 맞는 길이, 팔꿈치의 각도, 불깡통 회전 반경, 불깡통에 힘을 주었다 빼는 지점, 바깥으로 날아가 버리려는 불깡통을 살짝살짝 잡아당기는 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 빠르게 회전하는 불깡통을 멈추기로 결정하는 시점, 멈출 때 팔꿈치를 접는 각도와 방향, 멈추다 내려온 불깡통이 뒤집히지 않게 팔을 일순간 수평으로 유지시키는 동작, 팔을 수평으로 유지한 채 몸통을 불깡통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같이 가볍게 돌려주는 유연성. 


평생을 갱도에서 일하신 아버지가 쇠덩어리 위에서 쇠를 망치질하실 때의 느낌처럼요. 수십 번의 망치질이 다 같은 망치질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강하게, 약하게 쳐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내리치시는 것이었죠. 이것처럼 불깡통을 돌리는 내내 나의 온몸을 정확하게 움직이게 조정하는 나만의 '감각의 크로노미터'가 되었던 겁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을 움직이면 알게 되는 그 무엇. 


쥐불도 모르면서 돌렸던 그때처럼 어쩌면 우리도 어른으로 산다는 게, 부모로 남편으로 자식을 역할을 한다는 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앉아 있는 게 '자신만의 크로노미터'를 여전히 찾고, 미세하게 조정하는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매일, 꾸준하게 (각자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연습을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만의 '관솔'을 주섬 주섬 모아두면 될 테니까요. 


어때요? 아주 가끔 흡족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이 있으면 그만이죠. 잘은 모르겠는데 '오늘따라' 일이 잘 풀리고, 기분이 좋아, 그냥 좋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되는 그런 날 말이에요. 그런 날은 분명 더할 나위 없이 자신만의 불깡통을 자기 몸에 맞춰 신나게 돌리고 돌렸던 날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자기에게 필요한 '관솔'을 모아두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죠. 


그런 날은 잠들기 전에 자신에게 이야기를 꼭 해주고 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안에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 자기에게 '관솔'을 모아주고, '연습'을 잘해줘서 고맙다고. 내일도 그렇게 한번 같이 잘해보자고. 그렇게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삶과 일에 경의를 표하는 우아함'(파울루 코엘료,아처,2021,문학동네)을 잃지 않고 살아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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