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서 팔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날짜를 확인해 보니 벌써 입추가 지났더군요. 24 절기에 담긴 지혜가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본능적으로 계절이 가을로 들어선 것을 알아차리고 부쩍 높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하늘을 눈에 담기 위해서이며,
두 번째는 이유는
나현 님이 이렇게 어려운 공을 토스해 주시다니, 정확히 말하면 하늘이 아니라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고 할까요?
다능 선생님이 쏘아 올린 저 공을 어떻게 하면 받아칠 수 있을까?
스포츠라면 여러모로 보아도 나의 달리기 속도, 신체의 능력이 부족해서 받을 수 없는 공으로 느껴질 만큼 어려운 질문이에요.
배구 룰에서는 세 번의 터치 안에 네트 위로 공을 넘기면 반칙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제가 한 번 더 현아 님께 질문을 넘겨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룰을 인간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조금은 어색한 사이가 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진지하게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불과 며칠 전에도 저의 요가 스승님께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조언을 같은 분에게 몇 년에 걸쳐서 분기마다 꾸준히 듣고 있는 것을 보면 저는 지금 [나 이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에 걸쳐서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면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태생적으로 귀가 얇아서 이 사람과 이야기할 땐 이 사람 말이 맞고, 저 사람과 이야기할 땐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아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에는‘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어느 철학자의 책에 꽂혀서 크게 감명을 받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는 지인들을 보면서 ‘역시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는 거야’라고 외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할 만큼 왔다 갔다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왜 ‘나 이 자체로 충분하지 않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요가를 하다 보면 평소에 자각하지 못하던 감정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던 자신의 신체를 아주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본디 요가는 인도에서 수행 중 하나의 수단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부처님 또한 한때 요가를 통한 수행을 하기도 했는데 불교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32가지의 신체적 특징을 갖추고 있고 그중에 팔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거나 다리가 가지런하고 길다.'라는 묘사가 있습니다.
이런 묘사 자체가 인도 사람들의 신체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이지요, 그래서 요가 아사나는 필연적으로 사지가 길어야 잘할 수 있습니다.
요가를 만나기 전까지 사는 동안 팔다리가 짧아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요가를 통해 한없이 짧은 사지를 처음 인지하게 되면서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는 팔이 짧아서 단다 아사나에서 아무리 정렬을 잘 잡고 어깨를 끌어내려도 손바닥이 바닥에 닿지 않는답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좌절로 인해 요가가 처음엔 저에게 위로의 수단이 아니라 열등감의 기폭제와 같은 역할을 했음을 고백합니다.
이 열등감을 벗어나 자신에게 완벽히 만족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만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기까지의 과정에서 그 답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 과정은 엄청나게 멋진 팔다리 길이를 가진 요가 선생님들은 매일, 매주, 매달 한 트럭씩 만나고 같이 수련하게 되면서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저는 맞은 곳을 또 맞으면 더 아픈 사람이 아니라 굳은살이 생겨서 무뎌지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현 님이 자주 사바아사나를 통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로 인해 또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기도 하면서 불안을 다스린다고 하셨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니라면 죄송스럽습니다.
이런 저라도 제가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스스로 다스리기 위해 주문같이 떠올리는 말이 있기는 하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유정 작가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저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특별하지 않다.’라고 끊임없이 외웁니다.
예를 들어 누가 제게 욕을 하면 ‘나는 욕을 먹으면 안 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욕을 먹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거나, 갑자기 너무 우울하거나 너무 슬플 때도 ‘나는 매일 행복해야 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우울할 수 있지, 슬플 수 있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가끔은 차가운 위로가 잘 통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타 요가는‘하’라는 양의 성질과 ‘타’라는 음의 성질을 가진 에너지의 조화를 추구하는 요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