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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28. 2024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2.

단편소설

“민주야, 일루 와 봐. 내가 비밀 하나 알려 줄게.”

“뭔데?”

“이거 진짜 비밀이야. 울 엄마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너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응, 뭔데 그래?’

“있잖아, 사실은 나 다 기억한다.”

“뭘?”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말이야. 혹시 너도 기억해? 이건 아무나 기억할 수 있는 게 아니래. 우리 엄마가 그랬어. 나처럼 특별한 애들만 기억하는 거래. 그런데 너도 특별하잖아. 예쁘고, 착하고, 또 내가 제일 좋아하고. 그러니까 말이야 너도 다 기억나?”

“음,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다 기억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느낌이 그대로 생각나. 출렁출렁 대는 따뜻한 물이랑, 쿵쾅 거리는 엄마 심장 소리도. 다리를 쭉 펴지 못해서 불편했던 기억도 나고. 넌 어때?”

“난 잘 모르겠어. 근데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걸 기억해? 넌 정말 특별한 아이구나. 또 말해줘 봐. 또 뭐가 기억나?”

민주 볼의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난 민주의 말에 신이 나서 더 떠들었다.


“음... 엄마 배에서 막 나왔을 때도 다 기억나. 컴컴한 동굴 같았거든? 근데 갑자기 엄청 환해졌어. 너무 놀래서 앙 울었지 뭐야. 또 엄마 찌찌를 빨던 기억도 나고. 또.... 처음 목욕했을 때도 기억나고. 근데 있잖아, 엄마가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니까 특별히 말해 주는 거야.”

“응, 알겠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민주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소곤거렸다.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었다.

아니, 사실은 엄마와 나,  둘 만의 비밀이었는데, 민주는 특별하니까 말해주고 싶었다. 특별한 아이들에게만 있는 능력이니까, 민주는 나에게 특별하니까.



유치원에서 물감으로 미술 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민주가 입은 분홍색 앞치마가 너무 예뻤다. 나는 민주 옆에 앉아서 민주 손등에 핑크색 물감으로 하트를 그려주었다.

"찬이야, 이거 나한테 그려주는 거야?"

"응, 핑크하트야. 넌 핑크가 진짜 예쁜 것 같아. 핑크 앞치마도 예쁘고."

"고마워."

둘이서 소곤거리자 옆에 있던 성찬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얘네 둘이서 그림도 안 그리고 둘이서 사랑한대~~ 요."

나는 화가 나서 성찬을 밀치며 말했다.

"아니거든?"

나는 살짝 밀쳤을 뿐인데 성찬이는 옆으로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으앙~~ 선생님, 찬이가 저 밀어서 넘어지게 했어요~~~ 으앙~~"

성찬이의 울음에 선생님이 뛰어왔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성찬이를 달래주더니 날 보며 잠깐 놀이방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혼이 날까 봐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선생님 뒤를 따라갔다.


"찬아, 선생님이 너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네? 네."

“찬이 민주랑 제일 친하지?”

“네. 저에게 특별한 친구예요.”

“그렇구나. 그런데 찬아, 민주에게 한 말이 뭐야? 민주 엄마가 그러는데 너가 민주에게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하더라. 선생님이 너무 궁금한데, 선생님에게도 말해줄 수 있니?”

“어……. 그건 비밀인데요.”

“그래? 그건 비밀이구나. 그래도 선생님은 너무 궁금한데. 선생님한테만 말해주면 안 될까? 선생님도 찬이에게 특별한 선생님이잖아.”

“아, 그게 사실은 …….”

무언가 죄를 저지른 사람은 마음이 더욱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나는 엄마, 민주 그리고 나만의 비밀을 선생님에게 말하고 말았다. 선생님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저 내가 성찬이를 밀어서 선생님이 화가 난 줄 알았다.


 며칠 후,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고 온 날, 조용히 날 불렀다.

“찬아, 우리 유치원 옮겨야 될 것 같아.”

“왜 엄마? 나 싫은데? 민주랑 헤어지기 싫은데. 민주는 특별한 아이야.”

“그건 엄마도 알아. 그런데……. 휴, 암튼 이사를 가야 해서 유치원도 옮겨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이건 엄마 부탁인데……. 우리 만의 비밀 있잖아. 그거 꼭 지켜줘야 해.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우린 또 이사 가야 해. 다른 사람들은 네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물론 엄마는 우리 찬이 믿어. 네가 아기였을 때, 엄마가 했던 행동을 기억하는 거 엄마도 알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해줘. 이상하게 생각한단 말이야.”

“엄마, 싫어……. 싫어……. 민주랑 인사도 못했단 말이야.”

“그래. 그럼 내일 가서 친구들이랑 인사만 하고 오자. 알겠지?”

유치원에 가서 민주를 만나면, 나중에 다시 꼭 만나자는 약속을 하려고 했다.


유치원에 들어서자마자 성찬이가 날 보며 말했다.

“야, 너 머리가 이상하다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뭐가 이상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 머리가 이상하데. 정상이 아니라던데. 병원에 가야 한 댔어. 너 진짜야?”

“무슨 말이야 그게. 내가 왜 이상해. 나 아픈 거 아니거든. 난 특별한 거거든.”

난 너무 화가 나서 성찬이를 살짝 밀고 말았다. 성찬이는 이번에도 뒤로 넘어졌고, 선생님이 놀라서 뛰어 왔다.

“으앙, 선생님 쟤가 나 밀었어요. 으앙, 찬이 저 자식 머리가 돌았다던데 진짠가 봐요. 엉엉엉.”

울고 있는 성찬이를 일으키며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나 안 돌았다고!”

나는 큰 소리를 지르고 냅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두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흘러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에 다녀야 했다. 병원 선생님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난 그림을 그리고, 작은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했다. 모든 게 지루했다. 선생님과 상담도 여러 번 했다. 난 정말 내가 아픈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누구에게도 내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더 이상 그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내가 특별한 아이라고 말했던 엄마의 말도 사실은 거짓이었나 보다. 엄마 역시 나를 아픈 아이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난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잊어버리고 싶지만 잊을 수가 없는 기억들이다.

민주를 다시 만나기 전 까진 나 역시 그 기억들이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민주를 다시 만난 후부터 그 기억과 함께 일곱 살 때의 기억이 더해졌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은 그저 농담이었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웃어넘길 것이다. 난 더 이상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



 엄마에게 다른 수학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이 학원은 학생도 너무 많고, 선생님도 별로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고3이니까 좀 더 좋은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갑자기 학원을 옮기겠다는 내 말에 왜 그러냐 물어봤지만, 공부 때문이라고 말하니 알았다고 했다.



특별하다는 건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평범하지 않다는 말은 긍정의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가 다분하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걸까?

다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들인데, 그건 특별한 게 아닌 걸까?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그건 특별한 건가? 유별난 것인가?

왜 우리는 다른 사람처럼 살려고 안달인 걸까?


괴물 취급을 하던 그날의 기억을 간직한 채 나는 살아간다.

나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내 모든 기억을 잊은 척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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