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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지 못하다.

내가 정신적으로 아프다구요?

by 꽃빛달빛

매일 잠에 들지 못하고 우는 날이 늘어날수록,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쩌면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가 무너졌고,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엔 늦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뭐든 해낼 수 있고, 나약하지 않다고 스스로 세뇌를 걸며 밤을 지새웠다.


회사에선 3개월 차인데 아직도 이것도 못하냐며 혼이 났고, 이도저도 못한 채 나는 매일 자신감을 잃어갔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다.


생각보다 현실 속의 나는 아주 작은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인간임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상상 속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했고, 돈도 많이 벌고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는 멋진 직장인이어야만 했다. 현실의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재정상황 속에서도 나를 몰아붙이며 공부했다.

(사실 지금은 후회하는 행동 중 하나다.)


영어, 일본어, 바이올린, 피아노, 보컬 등등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과 배웠어야 하는 것들을 마구마구 공부했다. 내 체력의 한계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나에게 '좀 더 해봐. 더 배워야 해. 많이 공부해야 해.'라는 말로 나를 몰아붙였다.


내가 고졸이기 때문에 남들은 10 만큼 혼날 것을 100만큼 혼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이 악물고 직무적으로, 개인적으로 했어야 하는 공부들을 쏟아내듯 채워나갔다. 남들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계발을 해냈다.


하지만. 자기계발과 별개로 회사에서의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고, 나의 자신감도 바닥을 뚫다 못해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떨어졌다. 자신이 없었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느 날,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의 조심스러운 한마디가 내 고막을 때렸다. 아니? 심장을 때렸다.


"있잖아......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는 건데, 정신과에 한 번 가보는 것 어때? 너 너무 힘들어 보여."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세상이 무너졌다. 지금까지 해온 내 수많은 발버둥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인정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말이었다.

'내가 정신과를 가야 한다고? 나 아직 버틸만해. 남들 다 이러고 산다며.' 라며 계속해서 부정했다.


그 상태로 힘든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렇게 난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나는 우울의 늪에 빠진 생쥐꼴에서 우울에 잡아먹힌 상태가 되어버렸다.


처음으로 느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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