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픈게 아니라 지친 것일 뿐이야
처음으로 살고싶지 않음을 깨닫고나서, 나는 억지로라도 인정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정신의학과라는 공간은 나에게는 너무나 높은 벽과 같았고 방문하기엔 너무 겁이났었다.
'정신과에 방문한 이력이 있으면 보험도 가입이 안된다던데...'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걸 알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볼까?'
'내가 그정도로 아픈게 맞는건가? 내가 나약한거아니야?'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찾아왔다. 두려웠고, 인정하기가 너무싫었다.
흔히들 매체에서 보여주는 하얀방의 이미지가 내 머리 속을 점령했다.
두렵지만, 정말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정신의학과에 문의를 하고자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울리는 신호음이 시한폭탄처럼 들려왔다. 심장이 쿵쿵 거렸다.
'감사합니다. 병원입니다.'
나는 누가 들을까 겁내하며 조용히 "정신의학과 맞죠? 예약을 드리려고하는데요...." 라는 말을 간신히 내뱉었다. 병원 주변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두려웠기에 일부러 집에서 한시간이나 걸리는 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
병원 방문 당일, 병원에 찾아간 나에게는 간단한 체크리스트가 주어졌고 그 종이에 글씨를 써내려가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난 우울하지않고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써내려가는 용지에는 우울함에 파묻힌 대답만이 적혀있었다.
간단한 초진이 끝난 후 내 손에는 숙제라는 명목으로 주어진 두꺼운 검사용지가 들려있었다.
"꽃빛님, 다음 진료까지 이 검사지에 솔직하게 답변 적어서 가져다주시면 되세요."
그렇게 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참을 울었었다. 무서웠다. 내가 정신과에 다녀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간신히 집에 돌아와 마음을 추스리고 병원에서 받아온 검사지를 펼쳤다.
6년전 일이라 질문이 자세하게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런 주관식 질문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 나의 부모님은 [ ]다.
* 내 꿈은 [ ]다.
*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은 [ ]다.
빈칸에 글씨를 고민고민하며 채워넣었다.
* 나의 부모님은 [ 무섭 ]다.
* 내 꿈은 [ 모르겠 ]다.
*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은 [ 사람이 ]다.
그렇게 수많은 질문과 체크 란에 답변을 한 뒤 그날 잠을 자지 못했다. 나 스스로 위와 같은 생각을 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않았다. 분명 어릴 때 나는 작가, 디자이너, 수의사, 연구원 등등 되고 싶었던 꿈이 너무 많아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 꿈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게 이해가 가지않았고, 그렇기에 내가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일이 매사 그렇 듯 모든 일은 순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