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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늪에 빠지다

회사는 내게 악몽이었다.

by 꽃빛달빛

첫 진료 후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온 후, '조금이라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은 헛된 꿈이었다.


오히려 출근을 하니 약 때문에 잠은 쏟아지고, 집중도 안되고...


심지어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더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매일 밤 먹는 약은 아침에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수면제를 먹은 것도 아닌데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울함을 없애주는 약이 아니라 억지로 재우는 약 같았다.


당연히 회사에서 몽롱하게 일을 했으니.... 매일 혼나는 강도가 더 세졌다.


억울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고의가 아니라고, 약 기운이라고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내가 정신과에 다닌다고 어떻게 회사에 말을 하겠는가.


억지로 약 때문에 졸리고, 약 때문에 혼나고, 혼나니까 우울하고, 우울하니까 약을 먹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렇게 두 번째 진료날이 되고, 어김없이 한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미리 작성한 검사지와 함께 병원진료를 보며 하소연했다.


약 때문에 일상생활이 안 되는 데다가 너무 졸리다고, 오히려 더 혼났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나의 우울함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약을 줄일 수 없다고 선을 그으셨다.


사형 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다. 억지로 약을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약을 먹으면 졸리고 그러면 또 혼이 난다니.


심지어 같이 제출한 검사지의 결과는 다음 진료 때나 들을 수 있다고 하셔서 심란함만 몇 배 가중되어 버렸다.


그렇게 난 그날 밤 울다가 약기운에 지쳐 잠들었다.


다음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울다가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어찌 내일이 오지 않겠는가.


아침 해가 떴고, 알람소리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나는 또 꾸벅꾸벅 졸며 출근을 했다.


역시나 잠이 너무 쏟아져서 회사일에 집중하지 못했고, 혼이 많이 났다.


내가 하게 된 특허관리일의 특성은 꼼꼼함, 스피드, 체계성을 모두 갖춰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졸면서는 못할 일들이었다. (어떤 일이라도 졸면서는 못할 것이다.)


오기 실수부터, 단순 누락, 일 자체를 까먹는 것까지... 군대로 치면 완전 고문관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는 만능모범생으로 살던 내가 회사에선 고문관이라니, '신입이라 그럴 수 있어'라고 멘탈을 잡으려고 해도, 회사 분들의 따가운 말은 내 마음을 무너뜨리기엔 충분했다.


결국 난 해서는 안될 것에 손을 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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