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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폭염은 평등한가.

기후위기 시대 공존의 마을을 상상하자.

by 송형선 daniel

바야흐로 폭염의 시간이 도래했다. 짧은 장마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폭염이 도시를 점령했다. 폭염이라는 점령군은 24시간을 딱히 나눌 것도 없이 모든 촌각을 놓치지 않고 지배한다. (늦은 밤 하루 동안의 유일한 위로가 될 찬물 목욕을 하고 난 바로 그 직후에도 여지없이 습한 열기와 그 열기로부터 뿜어져 나온 땀방울은 그토록 고대하던 찬물 목욕의 시간마저 허무한 의식으로 끝나게 만들었다.)

내가 이 미쳐 날뛰는 폭염을 한탄하는 이 순간에도 열기로 가득 찬 거리를 내달리는 배달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달 노동자들이 배달할 먹거리를 열기 속에서 만들어내는 자영업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종일 안으로 쌓인 더운 열기가 밖으로 분출되기는커녕 바깥에서 몰려오는 뜨거운 열대야에 찜통 같은 잠자리에서 내일의 노동과 삶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많은 주거지에서는 대지로 뜨거운 열풍을 내뿜는 대가로 집안 곳곳에 시원한 냉기를 품어 내는 에어컨 바람에 편안한 숙면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이 들고 잠이 든 후에까지도 24시간 내내 찜통 속에서 이 폭염이라는 점령군을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폭염은 잠시 방과 방을 건너는 순간 경험하게 되는 일시적인 성가심에 불과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7월 8일 한 명의 23살 베트남 청년이 경북 구미의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농장 노동이 힘들어 건설노동으로 옮긴 첫 출근날이었다. 폭염으로 한국 노동자들은 오후 1시까지만 근무하고 퇴근하였지만 이 청년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오후 4시까지 더 일을 해야 했다.

7일~ 10일 동안 3명의 택배 노동자가 폭염에 장시간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하다 사망하였다. 한 명은 차에서 쉬겠다고 하였으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한 명은 근무 중에, 한 명은 퇴근 직후 사망하였다. 모두 다 폭염 속에서 폭염을 피할 휴식공간이나 휴게 시간이 없는 상황에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어 희생된 경우다.

전국 평균기온이 31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6월 28일 이후 7월 8일까지 1,28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였고, 8명이 사망하였다. (질병관리청. 7월 10일 발표)

온열 질환자나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들은 대부분 폭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폭염 속에서 노동을 계속해야 하거나, 폭염을 피할 적절한 휴식 공간이 없거나, 주거 공간 역시 폭염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인 사람들에게 폭염은 단순한 극심한 더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폭염 사망자 대부분은 더위 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폭염으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환경 (제도를 포함하여) 이 없었기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그래서 폭염은 절대로 평등하지가 않다.

우리는 다시 한번 규정은 명쾌하되 해법은 쉽지 않은 난제를 안게 된다.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조건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폭염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는 삶이 쾌적한 삶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면

폭염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는 국민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고, 국가는 이들의 쾌적한 삶을 보장해야햘 의무가 있는 것이다. 명쾌한 정의다.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수단이 있는 것인가는 규정만큼 쉽지는 않다.

사회의 그늘말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배달 노동자.

폭염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는 작업중지권은 살인적인 폭염하에서는 노동자들에게는 생명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중지권이 모든 폭염에 노출된 모든 노동자들에게 평등하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작업중지 외에도 폭염노동 시 2시간 노동후 20분 휴식과, 냉방시설을 갖춘 충분한 휴게 공간 확보가 가능한 것인가. 제도라는 그늘막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촌각으로 노동자의 생사를 가를수 있는 문제인데도 당국은 제도 밖의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 외국인 노동자만 폭염에도 노동을 계속하게 했던 2중 3중의 불평등은 폭염을 더 큰 재난으로 만들고 있다. 모든 사업장에 대한 모든 노동자에 대한 폭염대책을 의무사항으로 두고 노동자들에게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노동환경 외에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냉방시설이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가? 명확한 통계도 없다. 다만 저소득층의 4/5가 냉방시설이 없는 상태라고 추정한다. 24년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이 34명에 달하고 매년 여름 온열질환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냉방시설이 없는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냉방시설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는 그 예산을 함께 감당해야하 한다. 또 냉방시설을 모든 가구에 다 설치하고 전부 사용하게 되면 엄청난 탄소배출이 발생하고 그 가구의 에너지 비용도 감당할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각 가구의 에너지 소비를 탄소배출이 없는 그린에너지로 대체하도록 하는 방법도 함께 상상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폭염과 장마등 기후재난은 점점 더 크고 더 잦게 발생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폭염의 계절이 시작된 지금 더운 열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24시간 찜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헌법 35조가 보장하고 있는 쾌적한 생활을 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더 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폭염이 아니라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노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방치한 불평등한 사회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있다.

폭염을 포함한 기후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으며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불평등 과제 중에 맨 윗단에 이름을 올려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이다. 모두가 쾌적한 환경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동료 시민이라고 믿는 다면 말이다.



#폭염 #기후위기 #헌법 #쾌적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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