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과 함께 세계로 기차를 타고 대륙을 누비다
이르크추크 역에서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기차를 탔다. 열차 출발 3시간 전에 도착하여 연착이 2시간 반이니 장장 5시간 반을 기차역에서 기다린 것이다.
기다림도 하나의 여행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역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러 문화를 접하는 기회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기다리는 것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르크추크에서 옴스크까지는 2,474길로 미터, 40여 시간을 달려야 한다. 옴스크에서는 4시간 정도 머물다 가는데 기차 안에서는 와이파이도 안되고 샤워도 할 수 없기에 잠시 샤워와 와이파이로 연락을 하기 위함인데 기차가 이렇게 연착을 하다 보니 후회가 막급이다.
쉬지 말고 그냥 계속 가도 되었을 것을 아니면 옴스크에서 하루 묵었다 갈 걸... 하지만 이제 쏟아진 물이고 시위를 떠난 화살이니 운명에 맡겨야 되지 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껄, 껄, 껄 하고 산다고 하지 않은가? 이럴 걸, 저럴 걸,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아파트를 사놓았으면 지금 5배도 훨씬 넘게 올랐는데 공연히 논을 사서 하나도 오르지 않았네, 아파트를 살 걸, 그때 무슨 주식을 사놓았으면 100배도 넘게 올랐는데 주식에 투자할 걸....
그러거나 밤새 기차는 달려 여명이 밝아오고 평원을 달리는 기차에서 일출을 본다. 지난밤에는 어떤 경치가 지나갔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아름다운 시베리아를 지나며 자작나무 숲, 그리고 넓은 초원이 번가라 가며 경치가 바뀌는 대신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얼어붙은 동토의 땅을 달리는 맛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은 겨울에 6박 7일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는데 가는 내내 열차 안은 따뜻한 난방으로 땀이 날 지경이고 밖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환기가 되지 않아 땀내와 음식 냄새 등으로 퀴퀴한 공기와 창문은 흐려 밖의 풍경은 보이지 않고 그런 고역이 없었다 하였는데 나는 조금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묘미는 기차가 달리면서 변화하는 차창 밖의 모습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인가 하면 잘 정리된 목초지가 나오고 그러다 개간되지 않은 벌판이 이어지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앙증맞은 시골 동네가 지나간다.
동네에는 어김없이 집에 딸린 텃밭이... 거기에는 하얗거나 보랏빛의 감자 꽃이, 밭의 경계에는 노란 해바라기 꽃이 보초를 서고 있으며 토마토와 가지 등 다양한 채소들도 있다. 가끔은 웃통을 벗고 작업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옷이나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일하는 아줌마가 있는 반면 거의 반라의 비키니 차림의 상태로 작업하는 여자도 있다.
누가 그랬던가? 눈은 항상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귀는 전에 들었던 것, 귀에 익은 것을 좋아한다고. 변하는 경치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날이 밝은 때는 밖의 경치를 보느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번의 열차는 2등 칸이다. 한 칸에 4명이 타는데 앞에 1층은 젊은 여자와 꼬마 한 명이고 2층에는 젊은 남자다. 둘 다 젊은 사람이다 보니 우리 같은 늙은 사람하고는 이야깃거리도 별로 없으니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말문을 닫아 버리고 잠만 잔다.
같은 또래면 안 통하면 바디 랭귀지라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할 테지만, 4세 정도 되는 꼬마 녀석만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 바나나도 주고 웃어도 주고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친구가 된다. 아기 엄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이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차 연착 시간이 단축된다. 기차 타임테이블과 통과되는 역을 비교하니 많이 단축되었다. 옴스크에서 모스크바 가는 기차를 못 타는 일은 없겠다 하니 우울했던 마음이 가신다.
대륙을 횡단하는 장거리 기차 여행에서 숙박 예약이나 환승 시에는 얼마간의 연착을 예상하여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우리 같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시 밤이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추위에 잠이 깨었다. 찌는 듯 한 여름의 계속이었는데 갑자기 추위라니. 담요를 찾아 시트 위에 덮고 잠을 다시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날은 아직 새지 않았으나 얼마 후면 옴스크에 도착할 시간이다.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고 배낭을 꾸려 내릴 준비를 한다.
옴스크에 내리니 날씨가 쌀쌀하다. 전광판 표시로 섭씨 15도라 표시된다. 여기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반팔 차림이 있는 반면 가죽 잠바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샤워를 좀 할까 했는데 날씨도 쌀쌀하고 땀도 많이 흘리지 않아 샤워는 할 필요는 없어 일단 기차표를 끊고 역 앞을 돌아다녀 본다.
역 광장에는 예외 없이 많은 버스와 택시, 일반 차들과 사람들로 붐비고 그것을 지키고 서있는 동상이 있으며 낡은 차에서 내뿜는 연기로 공기는 많이 탁하다. 옴스크의 시내를 돌아다녀 본다. 지하도를 통해 가는 길은 온통 조그만 상가들이 즐비하다. 주로 소형가전제품, 핸드폰, 시계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바쁜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상가를 들러보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시내를 돌아보다 하룻밤을 지내고 가도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가 있었으나 할 수 없는 일. 돌아다니다 보니 KFC의 하얀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서둘러 역에 가서 집사람을 데려와 자리를 잡고 치킨과 음료수를 시켜본다. 그리고 핸드폰 켜고 카톡을 하려는데 Wifi가 터지기 전에 내 속이 터져 버린다.
와이파이가 잡혔다 안 잡혔다 하며 시간이 흘러가고 전지는 닳고 전파가 잡히는가 싶으면 무언가 다운로드된다고 시간이 자꾸 흐르고 공유기를 찾아 이 쪽 저 쪽으로 다녀 보아도 소용이 없다. 정말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잘되는 곳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는 유럽과 미국을 여행할 때도 같은 생각이다. 하기야 외국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오면 그들도 불편해 하기는 마찬가지 이겠지만.
겨우 카톡이 되어 온 카톡 확인하고 오직 우리 가족 대화방에 안부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식어버린 치킨을 들고 기차를 타러 가 모스크바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