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103일 간의 Behind the scene
안녕하세요! 렌딧의 블로거L입니다. 렌딧맨 스토리 시즌1을 여는 첫 글로 인사드리네요.
여러분, 혹시 렌딧맨 스토리 첫 포스팅 기억하시나요?
바로 이 글입니다. 시즌 1을 여는 글에도 렌딧맨 스토리 첫 포스팅의 주인공을 다시 초대해 보았답니다.
반가우시죠? 그럼 빨리 만나볼까요?
벌써 1년이 지났나요? 인터뷰 들어오기 전에 살펴보니 벌써 렌딧맨 스토리에 20편이 넘는 이야기가 쌓였더라고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간 저랑 블로거P가 정말 열심히 여러 렌딧맨들과 만나보았답니다. (으쓱) 그래서 말입니다~~!! 오늘은 다시 렌딧의 처음 시작점으로 한 번 돌아가 볼까 하고요.
그동안 SJ가 렌딧을 왜 창업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여러번 신문 기사로 나왔었잖아요? 미국에서 2번째로 창업했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국에 오랜만에 돌아와 대출을 받으려 했는데 여의치가 않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대출 산업에 심각한 비대칭-비효율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렌딧을 창업했다는 이야기죠. 우와~ 한 줄 요약 성공! (웃음)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딱 100일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저도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좀 놀랐거든요. 우와~ 어떻게 생각조차 없었던 일을 새롭게 시작하고 하나의 회사를 창업하는데까지 100일 밖에 안 걸렸지?
저도 나중에 돌아보니 정말 딱 100일 정도더라고요. 사실 대학원 입학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다시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창업도 미국에서 한 거구요. 그런데 한국에 사업 자금 대출을 받으러 와서 은행과 저축은행을 다녀 보니, 그 때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점 하나가 머리를 크게 “뽝” 하고 때려버린거죠. 굉장히 선명한 문제의식을 느꼈고요. 게다가 금융은 우리 모두의 일상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 하나가 해결된다면 우리들의 생활,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임팩트가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이 되니 정말 꼭 내가 해결해 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아요.
마침 그 때 딱 미국의 렌딩클럽이 나스닥에 상장했다는 뉴스를 발견했다는 부분도 말이에요. 진짜 뭐랄까? 우와~ 어떻게 이렇게 운명과 같이 P2P금융이 SJ 앞에 나타나게 되었던걸까요?
그게 정말 기가 막히게 제 생일 다음날이었어요. 2014년12월11일이죠. 잊어버릴 수가 없죠. 저축은행에서 1,500만원 대출 받는데 22% 이자를 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어 하고 있던 때였어요. 렌딩클럽(Lending Club)이 스탠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 근처에 있던 회사라 회사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냥 한 번 해 본거죠. 솔직히 기대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외국에서 온 20대의 스타트업 창업자이고, 미국에서 했던 경제활동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스마트폰으로 정보 넣고 1분도 안되어서 나온거죠. 3만불 대출에 7.8%!
우와~ 어이가 없으셨겠는데요? (웃음)
이게 뭐지? 이 서비스는 대체 뭐길래 한국에서는 아무데서도 제시하지 않았던 대출 금리를 던져줄 수 있는거지?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제가 뭐가 하나 궁금하면 진짜 못 참거든요. 그래서 바로 알아보기 시작한거에요. 우선 어마어마한 구글링(Googling)을 시작했고요. 그 다음으로는 스탠포드 대학원 졸업생 명부에서 금융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찾아서 이메일을 보냈어요. 한국인, 미국인 가리지 않고 모두 보내니 100명이 좀 넘었던 것 같아요. 그 중에는 렌딩클럽(Lending Club)이나 소파이(Sofi) 등 이미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P2P금융회사 분들도 있었구요.
회신율은요?
거의 다 답장이 왔어요. 그 중에 빨리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궁금한 걸 질문하고 이야기도 들었죠. 한국에서 기존 금융권에 계시던 분들은 대부분 P2P금융을 모르시던 때고요. 그런데 그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 공동창업자가 된 싸이✣(Psy)가 있었던 거에요.
✣ 싸이(Psy) : 렌딧의 공동창업자인 박성용 이사의 사내 닉네임. 렌딧의 호칭 문화는 닉네임 문화로, ~님 또는 직책을 붙이지 않고 서로를 부름. 닉네임 사용례) 싸이 안녕하세요? 혹시 어제 그 이메일 읽으셨어요?
오오~ 세상에!! 아니 그런데, 그러면 2014년 12월 말 정도에 싸이랑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싸이가 2015년 2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신건가요?
그런거죠. 처음부터 이야기가 매우 잘 통했어요. 싸이는 그 때 삼성화재에서 3년차로 일하고 있을 때였고, 무언가 보험에서도 바꾸어 갈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고요. 아무래도 ‘창업해서 우리가 하자!’ 라는 이야기에 빠르고 크게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이야~ 순조롭다 순조로와. (웃음) 그래서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P2P금융이 잘 될 것 같았던건가요?
음 ~ 한국에서는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렌딩클럽이 나스닥 상장까지 할 만큼 뚜렷하게 성장세를 보인 이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여럿 나타나고 있었고요. 금융 전문가들도 매우 발전 가능성이 있는 핀테크 모델이다라는 의견을 많이 주었어요. 무엇보다 같이 하자고 나서주는 금융 분야 전문가인 싸이(Psy)도 만났다 보니 더욱 속도가 붙을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서 아예 회사를 다 정리하고 돌아 오신건가요? 스타일세즈(StyleSays)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존 투자자분들도 있었잖아요.
사실상 제가 한국에 운영 자금을 마련하러 올 때 회사에 딱 3명이 남아서 샌프란시스코의 우리집에서 합숙하면서 일을 할 때였고요. 기존 투자자분들도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 모두 잘 이해를 해 주셨고, 렌딧을 창업하면서 모두 다 엔젤 투자자로 남아주시기도 했죠. 지금도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들이고요. 감사한 일이죠.
자! 그럼 이제 한국으로 완전히 다시 돌아오셔서 201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돌입하신거네요?
맞아요. 제가 미국에서도 참 함께 일하는 분들과 합숙을 많이 했거든요? 남자 몇 명이 시간과 자본 모든 걸 아끼면서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웃음) 렌딧을 준비할 때도 두 차례의 에어비앤비 합숙이 있었습니다.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죠. 첫번째 합숙은 노들역에 있는 에어비앤비였구요. 두번째는 진짜 본격적인 창업 준비를 위해서 좀 길게 같이 지냈는데, 한 3주 정도였던 것 같아요. 옥수역에 있는 에어비앤비였구요.
제가 그 성지들을 찾아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쉬워~ 그래서 그렇게 합숙을 하면서 어떤 일들을 하신거죠?
4명 정도가 모여서 많은 양의 일을 해냈어요. 시장 조사도 엄청 깊이있게 했던 것 같고, 신용평가모형에 대한 준비도 있었고요. 대출, 투자 상품에 대한 논의도 있었고, 개발자 1분이 있어서 초기 버전의 개발도 이루어졌죠. 2월 초 쯤에는 네이밍 워크샵도 했어요. 그 때 렌딧이라는 회사 이름도 결정했고, 우리 회사의 3가지 핵심 가치인 정교-투명-효율도 도출해 낸거죠. 아! IR 자료도 열심히 만들었네요.
맞아요. 저 처음 입사했을 때 누군가 링크를 하나 주셨었는데, 거기에 어마어마어마한 마켓 리서치 자료가 있었어요. 다 읽어보기도 벅찰만큼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 산업, 그러니까 P2P금융(온라인투자연계금융, 온투금융)은 완전한 융합 산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금융과 기술이 함께가야 하는 사업인거죠. 다행히 저는 IT 산업쪽, 싸이(Psy)는 금융 산업쪽에서 경험을 쌓아 온 점도 우리가 렌딧을 창업하는데 정말 좋은 요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의 분야에 대해서 이해도를 계속 높여가야 한다고 봤죠. 저도 금융 산업에 대해서 그저 겉핥기가 아니라 아주 깊숙히 들어가 그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봤고, 열심히 파고 들었어요.
대출과 투자 중에 대출 서비스를 먼저 내 놓아보자고 생각하셨던 것도 굉장히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중금리대출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느꼈던 것인만큼, 실제로 시장에서 중금리대출에 대한 니즈가 충분히 있는지 파악하자는 전략이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대출에 대한 MVP(Minimun Viable Product)를 제작하기로 한거죠.
첫 대출은 언제 나갔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죠. 대출 서비스를 2015년5월8일, 어버이날 론칭했구요. 첫 대출은 5월13일에 48개월 약정으로 3천만원을 받으신 고객님이셨어요.
우와~ 렌딧의 선사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끝이 없네요. 계속 이것 저것 여쭤보고 싶지만, 또 다른 이야기들은 제가 다음 번에 다시 모셔서 또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2015년 3월에 렌딧을 창업한 후 6+2주년이 되었어요. 우리 렌딧맨들과 함께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해냈잖아요? 세계 최초로 P2P금융산업법이 제정되는 과정에도 렌딧맨들이 일조를 했고요. 국내 온투금융 중 유일하게 개인신용대출 관련한 기술 개발에 집중한 스타트업인만큼, 새로운 신용평가모형 개발과 비대면 금융 플랫폼의 발전에도 렌딧맨들의 지분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하고요. 새로운 기술 기반의 금융 산업을 우리 손으로 개척해 내면서 모두가 함께 넘어온 규제 정책들도 정말 많고요. 무엇보다 우리회사는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집념의 렌딧맨들이 꽤 많아요. 저는 그게 참 자랑스러운데요.
마지막 질문으로, SJ가 생각하는 우리 렌딧맨들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렌딧맨들의 강점을 개개인 별로가 아니라 우리 회사 전체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강한 회복력과 탄성력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난 8년 동안 기대했던 것 보다 바라던 일이 늦게 이루어졌던 적도 있고, 때로는 투자가 생각보다 늦어져서 자금이 말랐던 적도 있고, 조직 문화에 있어서도 업다운이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모든 어려운 순간들을 지금까지 어떻게든 함께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서 끝내 이루어왔죠.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가 뭘 못 했고, 뭘 잘 했고, 그 때 어떻게 했으면 더 좋았겠다 같은 회고가 전체적으로 함께 잘 이루어져 왔고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방향성도 능동적으로 잘 잡아 왔다고 봐요.
금융을 다루는 테크핀 스타트업으로서 초반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개발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개발 문화가 잘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점도 렌딧맨들이 만들어 온 우리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경험해 온 렌딧맨들이 각 파트마다 코어 멤버로 남아 있다는 점이 회사가 전체적으로 강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결국 우리는 해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렌딧이 창업되기까지 숨가빴던 103일의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실리콘밸리에서 패션 커머스의 미래를 꿈꾸던 창업자 SJ가 왜! 어떻게 갑자기 한국에 돌아와서 돌연 대출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머리에 쏙 들어오셨나요? SJ가 렌딧 창업을 통해 꼭 풀어내고 싶은 커다란 문제는 대.양.중.부!! 대출 산업의 양극화로 인한 중금리대출의 부재입니다.
렌딧이 이 문제를 풀어낸다면 우리 모두의 일상에 얼마나 크고 좋은 변화가 생겨날까요?
저는 그럼 다음 주에 시즌1의 블록버스터, ‘입사의 비밀 Episode 1’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Bye!
준법감시인 심사필 제0310호(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