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베이스가 되어줄게
선생님, 팬티가 젖도록 뛰셔야 합니다!
선생님~
팬티가 젖도록 걷고 뛰셔야 합니다.
브래지어가 젖도록 뛰셔야 합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근육통이 기분이 좋아요.
헐, 그런 세상이 있구려
불안할 때 달리면 한 결 낫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불안할 때 쇠를 치니까
불안이 내려가는 게
느껴져요.
어, 너 멋지다!
근력운동이 너무 힘든데
막상 하다 보면 암 생각이 안 나고
몸이 변하는 게 느껴지면서
더 하게 돼요.
아, 그렇구나!
이러한 당신들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져서
비가 오는데도
런데이 앱을 켜고, 우산을 쓰고
숲으로 걸어 나갔다.
물론, 아직 달리진 않고
좀 빠르게 걸어보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숲길이
비가 와서인지 한산하다.
간 김에 근처 대학교도 한 바퀴 돌고~
한 시간을 걷다 보니
너희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응, 이제 할게, 정말이다!
대학교 호수 세 바퀴 돌고
숲길로 들어서니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런데이 앱을 듣고 있었는데도
작년 가을에 숲길에서 흘러나왔던
Disturbed의 Sound of Silence가 들렸다.
헐! 환청인가?
한쪽 이어폰을 빼고 다시 들었더니
그 곡이 맞다.
끓어오르는 저음의 소리,
아, 그래, 이 감각이었지!
여름 한 철 잊고 지낸 바닥의 소리
바닥의 절규
이 절규를 토해내면 나도 해방감을 느낄까?
한 번 해봐야겠다.
그 노래와 함께
'이니쉐린의 벤시'(영화)의 콜름이 떠오른다.
친한 친구의 다정함을 지루하다고 내친 사내
여생을 후세에 전해지는 의미 있는 음악을 작곡하며
연주하고 보내고 싶다고 친구를 버린 사내
그 사내의 이름은 콜름
왜, 그 사내가 갑자기 이해가 될 것 같은지
더불어, 그 사내에게 다정함을 폄하당하고
절교당한 파우릭이 사랑하는 당나귀 제니의 죽음으로
(제니가 콜름이 잘라버린 손가락을 먹다가 죽었기에)
콜름에게 죽여버리겠다고,
당신 집을 xx일 오후 2시에 불태워버리겠다고
기르는 개는 집 밖으로 내보내길 바란다고
최후통첩을 하는 파우릭도 이해가 될 것 같은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니쉐린의 벤시',
그와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한국, 꼬레아
생각해 보니 6,25 사변이 일어난 지 100년 도 채 되지 않은 이 나라
100년간 무수히 많은 성장과 희생이 있었지
내 뼈와 피에도 전쟁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변하는 순간,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순간,
내 기억 밖의 트라우마는
6,25 전쟁 아니 그 이전의 참혹했던
역사의 흔적들이 아로새겨진 것 인지도
추락을 거듭하다 보면
맷집이 생기는 것도 같고,
추락하면서 입은 타박상이 잦아들 즈음에
단단하게 굳은살이 생기는 것 같기도
어제의 나는 죽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 태어난다.
한 번에 좋아지거나 회복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지.
현실에서 회복은 무수히 많은
오르락내리락
나선형의 변주,
그리고 또다시 추락
살짝 다시 올라오고
한 없이 처박히다가 조금씩 올라오는 법
그러다가 너희들을 만나서 반가워
나는 너희들의 베이스가 되어줄게
밑에서 받쳐줄게
든든하게 받쳐줄게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 팬티가 젖도록 뛰셔야 합니다.
그래요, 함 해볼게요.
고마워요!
오늘의 시는 길이가 좀 길어졌네요.
비오는 날의 산책 덕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