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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Aug 23. 2023

너희들의 베이스가 되어줄게

선생님, 팬티가 젖도록 뛰셔야 합니다!

선생님~

팬티가 젖도록 걷고 뛰셔야 합니다.

브래지어가 젖도록 뛰셔야 합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근육통이 기분이 좋아요.

헐, 그런 세상이 있구려


불안할 때 달리면 한 결 낫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불안할 때 쇠를 치니까

불안이 내려가는 게

느껴져요.

어, 너 멋지다!


근력운동이 너무 힘든데

막상 하다 보면 암 생각이 안 나고

몸이 변하는 게 느껴지면서

더 하게 돼요.

아, 그렇구나!


이러한 당신들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져서

비가 오는데도

런데이 앱을 켜고, 우산을 쓰고

숲으로 걸어 나갔다.


물론, 아직 달리진 않고

좀 빠르게 걸어보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숲길이

비가 와서인지 한산하다.

간 김에 근처 대학교도 한 바퀴 돌고~


한 시간을 걷다 보니

너희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응, 이제 할게, 정말이다!


대학교 호수 세 바퀴 돌고

숲길로 들어서니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런데이 앱을 듣고 있었는데도

작년 가을에 숲길에서 흘러나왔던

Disturbed의 Sound of Silence가 들렸다.


헐! 환청인가?

한쪽 이어폰을 빼고 다시 들었더니

그 곡이 맞다.


끓어오르는 저음의 소리,

아, 그래, 이 감각이었지!

여름 한 철 잊고 지낸 바닥의 소리

바닥의 절규

이 절규를 토해내면 나도 해방감을 느낄까?

한 번 해봐야겠다.


그 노래와 함께

'이니쉐린의 벤시'(영화)의 콜름이 떠오른다.

친한 친구의 다정함을 지루하다고 내친 사내

여생을 후세에 전해지는 의미 있는 음악을 작곡하며

연주하고 보내고 싶다고 친구를 버린 사내

그 사내의 이름은 콜름


왜, 그 사내가 갑자기 이해가 될 것 같은지

더불어, 그 사내에게 다정함을 폄하당하고

절교당한 파우릭이 사랑하는 당나귀 제니의 죽음으로

(제니가 콜름이 잘라버린 손가락을 먹다가 죽었기에)

콜름에게 죽여버리겠다고,

당신 집을 xx일 오후 2시에 불태워버리겠다고

기르는 개는 집 밖으로 내보내길 바란다고

최후통첩을 하는 파우릭도 이해가 될 것 같은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니쉐린의 벤시',

그와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한국, 꼬레아

생각해 보니 6,25 사변이 일어난 지 100년 도 채 되지 않은 이 나라


100년간 무수히 많은 성장과 희생이 있었지

내 뼈와 피에도 전쟁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변하는 순간,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순간,


내 기억 밖의 트라우마는

6,25 전쟁 아니 그 이전의 참혹했던

역사의 흔적들이 아로새겨진 것 인지도


추락을 거듭하다 보면

맷집이 생기는 것도 같고,

추락하면서 입은 타박상이 잦아들 즈음에

단단하게 굳은살이 생기는 것 같기도


어제의 나는 죽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 태어난다.


한 번에 좋아지거나 회복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지.

현실에서 회복은 무수히 많은

오르락내리락

나선형의 변주,

그리고 또다시 추락

살짝 다시 올라오고

한 없이 처박히다가 조금씩 올라오는 법


그러다가 너희들을 만나서 반가워

나는 너희들의 베이스가 되어줄게

밑에서 받쳐줄게

든든하게 받쳐줄게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 팬티가 젖도록 뛰셔야 합니다.

그래요, 함 해볼게요.

고마워요!


오늘의 시는 길이가 좀 길어졌네요.

비오는 날의 산책 덕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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