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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먹는 날

내 인생 음식 <한식>편

by 땅꼼땅꼼 Dec 21. 2024



1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다.

이 날엔 팥죽을 먹는다.



어릴 때부터 24 절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먹고 자랐다. 농촌이기에 절기는 농사에 매우 중요한 지침서였고, 매 절기마다 풍년과 안녕을 기원했던 기억이 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동짓날이면 우리는 방안에 빙 둘러앉았다.

엄마가 부지런히 아침 일찍 방앗간에 다녀오셨기 때문.

새하얗고 보드랗게 빻아온 찹쌀가루에 물을 넣어 치덕대면

눈송이 같은 덩어리가 되었는데  그걸 손바닥 위에 올린 후 둥글려서 새알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부엌에 걸린 가마솥에 물과 팥을 넣고 삶으셨는데 그 가마솥이 얼마나 컸던지. 그런데도 매번 가득히 팥을 넣고 삶았고 바닥에 눌어붙거나 타지 않도록 형제 중 하나는 큰 나무 주걱으로 끊임없이 빙빙 휘저어야 했다.


삶아진 팥을 한번 건져서 으깨고 껍질을 추려내면 이윽고 보드라운 팥죽이 되는데 이때 우리가 빚은 새알옹심을 와라락 부어 또다시 끓였다.


이때부턴 보다 잘 저어야 한다. 너무 세게 저으면 새알이 으깨지기 십상이고 너무 살살 저으면 서로 달라붙기 때문.



어제 아침, 회사 식당에서 나온 팥죽. 엄청 맛있었다
태국에 사는 동생은, 어릴 적 엄마가 그랬듯 모든 명절과 절기에 해당 음식을 해먹는다. 올해는 부모님도 태국에 계시는데 역시나 제대로 동짓죽을 쒔단다.


그렇게 탄생한 팥죽은, 내 입맛에 정말 잘 맞았다.

어릴 땐 설탕을 넣어먹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담백함이 좋다.

형제가 종알대며 팥죽을 먹는 사이 엄마는 큰 그릇에 팥죽을 담아 그것을 들고 마당과 골목 곳곳에 뿌리며 다니셨다.

미신일 테지만 동지팥죽은 악귀를 물리쳐준다니 엄마는 그렇게 의식을 치르셨을 테다.



아이들을 키워주신 어머님은, 아이들의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준비해 주셨다. 큰 애 생일이 7월이라 한여름엔 쉽사리 쉬어버리는 탓에 파는 곳을 찾기 어려운데도 놓치지 않고 꼭꼭 챙겨주셨다.

그 또한 아이들이 병 없이,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어머님 나름의 의식이었을 테다.






큰 애를 낳고, 어릴 적 고향서 먹었던 팥칼국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어머님은 단 한 번도 드셔본 적 없다고 하셨다.

출산 휴가 중에 유모차에 갓난애를 태우고 어머님과 집 근처 시장 안에서 판다는 가게를 애써 찾아갔다.


어릴 적 고향의 시장에서 먹었던 맛은 아니었다.

팥죽이 좀 멀겋고 면을 서로 들러붙었다.

그래도 너무도 먹고 싶었던 탓인지 꽤 잘 먹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어머님께선, 정말 맛없었다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다.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해서 좋은 일이라면 굳이 피할 것까지도 없지.

오늘 들어가는 길에 팥죽 포장해야겠다.

어머님의 당부처럼 조금씩이라도 먹여야겠다. 

원래도 팥죽은 좋아하는 나는, 어제 회사 식당서 나온 팥죽을 놓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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