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각커피 Nov 18. 2021

아직도 인생은 난리부르스


2년. 카페를 차리면서 앞으로 2년만 바라봤다. 2년 뒤에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거라 생각했다. 그냥 카페는 내 본업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림으로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거기다 두 번째 책이 나오는 달이 가게를 계약한 지 2년째 되는 시기라 출간 시장의 반응에 따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카페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얼마 후 책이 나왔고, 카페를 차린 지 2년이 됐지만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카페 운영이 힘든 상황에서 책에 내심 많은 기대를 했었는지 출간 뒤에 번아웃이 왔다. 이제 카페 운영을 어떻게 할지, 다은 일을 찾아볼지 결정 내려야 했다. 플러그가 뽑힌 듯한 내 상태에서 더 나은 방향을 판단하고 결정 내려야 하는 이 상황이 숨 막히게 다가왔다.


몇 달 전에 카페를 정리하지 않으면 리모델링이라도 할 생각으로 대출도 몇천만 원 이미 받아놨었다. 그런데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서 그 돈보다 더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더 바빠지면 다른 일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몰려왔다. 빌린 거금을 턱 하니 쉽게 쓰기도 무서웠다.


지금 준비되어 있는 게 없어도 너무 없는데 내가 정한 2년은 다가왔고, 내 나이도 이제 30대 중반이라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적으로 자리도 잡아야 하고 독립도 해야 하는데 마음이 덜컥 급해지고 초초해져 우울했다. 난 이 기분을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심하게 앓았었다. 지금보다 감정이 더 깊어져 절대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세 달 넘게 심리상담을 하며 다시 나를 돌아봤다.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건, 심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에 뛰어드는 건 내게 설렘과 도전이 아니라 스트레스고 불안이다. 심리검사도 하고 상담사와 함께 지금 내 이야기를 하며 잊고 있던 것도 떠올랐다. 2년 전 과거의 나는 전력을 다해 머리를 굴려 내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했었다. 카페 매출이나 출간 흥행 성적이 내가 기대하고 바라던 성과가 아닌 것에 함몰되어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경제적인 상황, 쉽게 무기력해지는 성격, 꿈을 놓치고 싶지 않으면서도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까지 다 따져보고 고심해서 나에게 적합한 모드 걸 조합해 선택한 게 지금 이 카페였는데, 여기서 또 다른 걸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픈 거였다.



계속 시간에 쫓기며 막연한 목표인 '그림으로 성공하기', '유명한 작가 되기', '카페로 수입 내기'에 집착했다.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지, 유명의 기준은 또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은 얼마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막연히 제일 높은 이상만 꿈꿨으니 어떤 결과에도 실망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나를 알았으니, 높은 목표와 이상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현실적인 방법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뭘 해도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경제적인 부분도 구체적인 금액을 목표로 모으고 있다. 적금을 하나 더 늘렸고, 그림과 책 작업으로 들어온 수익은 따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금액을 모으기 전까지는 카페를 잘 유지할 것이다. 욕심내지 말고 갚을 수 있는 선까지만 돈을 써서 리모델링을 하고 겨울 신메뉴를 개발 중이다.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내가 만들어둔 지금 상황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봐야 후회가 적을 것이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나눠서 잡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니 전보다 더 버틸 힘이 솟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새로운 목표가 뚜렷이 그려지는 순간이, 또 다른 선택을 향해 거침없이 한 발짝 내딛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 카페로 출근하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틈나는 대로 그림 작업을 하고, 손님 없는 저녁엔 글을 쓰는 이 생활을 더 잘 해쳐나가고 싶다.






이전 10화 매출이 0원인 어느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