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태도로
반복 속 반짝
며칠 전 브런치의 알림 배너가 떴습니다. 구독하고 있던 한 작가님의 연재글의 “인간으로 산다는 것 : 반복을 견디는 것”…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에 비해 생각과 걱정이 많은 동물이라 어떤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깨나 어려운 일이죠. 때문에 요새는 명상이나 요가처럼 순간에 집중하고 심신을 정화하는 수련법을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 수천년간 전해지던 종교의 여러 수행법이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는 걸까요?
불과 백년 사이 우리 일상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구름과 바람의 변덕이 삶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해를 맞으며 온몸을 움직이던 농부는 이제 손가락 끝과 뇌의 운동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땀을 찾아 헬스장으로 향합니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과 개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몸‘의 관계가 어느샌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그것을 원했지만 모순적이게도 현대인들이 겪는 여러 고통의 근원이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감각상실. 우리는 일상에서 감각을 잃었습니다. 다시말해 몸에 대한 자극이 사라지는 것이죠. 흙을 만지던 손끝의 촉감과 바람의 냄새, 농기구의 쇠소리, 간신히 달랠 수 있던 허기와 갈증, 결핍과 해소의 즐거움. 현대의 일상에선 지나치게 자극적인 ‘정보’만이 넘쳐납니다.
운동과 명상법이 유행하는 이유는 아마 이런 반복을 견뎌내기 위해서이지 않을까요.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입니다. 둔해진 감각을 일깨워 반복되는 일상에서 티클같은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 감동의 역치를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모두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처럼 ‘아 요가를 하면(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구나~’로 설명할 수도 있구요. 감각에 집중하는 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일상을 지키는 수행법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출근길 군중들의 소음에 귀기울여보고 매일 마시는 커피의 향이 어제와는 어떻게 다른지 스스로를 관찰해보거나 책장을 넘길때 종이의 질감 따위을 온전히 느껴보는 겁니다. 저의 경우에는 아침에 하는 설거지가 나름의 명상입니다.
저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저역시 마찬가지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무뎌져 소중한 감각들을 흘려보내며 지냈습니다. 손끝에 닿는 반죽의 촉감, 지글지글, 짜고 달고 그런 것들이요. 해서 레시피 정리도 할겸 수행자의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영장에 회원권을 등록하는 것 처럼 약간의 장치를 걸어두는 셈이죠. 본문에서는 만드는 방법과 느껴지는 감각, 필요하다면 식재료의 효능도 함께 다룰 것이구요. 1주일에 하나씩 업로드 할 계획입니다. 두구두구두구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