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방암 수술 전 기록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
했던가?
이 문장이 내게로 침투한다.
크리스마스를 끼고 우리과 외래 휴가일정에 따라 제주행을 계획했었다. 처음 예약했던 에*****항공에서 갑자기 운항취소결정을 통보했다. 숙소가 예약되어 있던지라 미사여구 없이 취소하고, 부랴부랴 다시 잡았던 제*항공 티켓인데 수술일정과 겹쳐서 두말할 수 없게 되었다. 여행일정 20일 전이라 위약금이 조금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숙소를 예약하고 동행하기로 한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는 울먹임이 나를 더욱 눈물짓게 했다.
집도예정인 교수님께 확인하니, 출근 이동 거리인 40분가량의 운전은 가능하다 하였지만 어쨌든 외과 수술을 하게 되면 당분간 팔을 쓰는 게 쉽지는 않을 테고 제일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냥빨’이라는 결론에 닿아 햇살 좋은 주말을 이용해 실행에 옮겼다.
냥빨, 고양이 목욕시키기.
집사는 세탁기가 아닌 직접 손빨래를 하듯 시행해야 한다. 기본 기마자세로 40분 이상을 버텨야 하는데 바둥거리는 냥이씨를 씻기느라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이틀째 팔다리 몸뒤판 근육이 욱신거린다.
수술 전 미리 해두어야 할 리스트를 메모장에 적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마감해야 할 평가보고서를 쓴다. 검색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유방암 수술기후기 및 치료기를 억지로 차단해 본다. 보고 있어도 그냥 있어도 머리가 어찔해진다.
많지는 않지만 암밍아웃을 했고, 큰 반응이 없는 내게 ‘내가 더 놀랐다’는 말은 헛웃음을 짓게 한다. 놀라도 당사자가 더 놀라지 당신이?
’운‘이 나빠 암에 걸렸지만, ’운‘이 좋아 빨리 찾았고 또 ’운‘이 좋아 수술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 생각하면 설사 이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 하더라도 조금 위안이 된다. 이 위안이 반응의 폭을 낮추게 도와준 거 같다.
암밍아웃을 거의 안 한다면서 공개적인 글쓰기툴에 한건 뭔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암진단 이후 대처하고 있는 나를 본다면 인지적-사회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 정서적 반응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이는 엄청난 심리적 방어기제를 쓰며 나를 꽁꽁싸매고 있다는 뜻인데, 이게 사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삶의 깊이가 생긴다고 믿는다.)
살살 다스려야 한다. 지금은 나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은 ‘나’.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쓰기 치료’이다. 심리치료 중 쓰기 치료가 있다. 종종 내담자에게 추천했던 방법인 그것을 지금 내가 실행하고 있다.
사실 소통의 장으로 여러 창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가장 내가 나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자, 글만으로 나를 말하고 싶은 아니 읊조릴 수 있는 곳.
그래! 브런치!
쓰면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이 보인다.
비록 어렴풋하지만.